음악 마니아 6인에게 얽힌 사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별하면 이별 노래가 다 내 얘기. 그 가수는 나를 언제 봤다고 내 마음을 이리 잘 아는 걸까. 한때 나를 흔들었던 노래, 그 구구절절한 가사. 음악 마니아 6인이 얽힌 사연을 불러본다.::이민기,언니네 이발관,패닉,플라스틱 피플,다이나믹 듀오,오! 부라더스,엘르,엣진,elle.co.kr:: | ::이민기,언니네 이발관,패닉,플라스틱 피플,다이나믹 듀오

화려한 무대 위 시간은 지나고. 사랑은 떠나고 미움도 지우고. 바람이 부는 곳 . 시작된 순간들. 그곳엔 아마 다시 영원한 여름.이민기의 ‘영원한 여름’ 내 생애 최고의 가요 가사라…. 명색이 음반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재기 발랄한 가사를 뽑아서 ‘이것 보시게나! 이런 가요, 이런 가사, 당신들은 생각 못했지?’ 라고 큰소리 치며 흐뭇한 미소 짓고 싶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영화 로 ‘천만 배우’가 된 이민기의 첫 번째 미니 앨범 이 발매된 2009년 8월의 여름.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가장 값지고 가장 흥미롭고 가장 바쁜, 그의 노래 ‘영원한 여름’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계절이었다. 당시 나는 이민기의 앨범을 위해 되지도 않은 영어로 외국의 프로듀서들과 연락하고, 작업된 곡을 주고받으며 힘들게 의사소통하고 있었다. 산고의 고통만큼이나(경험은 없지만 아마 이 정도 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한다) 혹독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앨범을 발매, 부산에서 성공적인 쇼케이스도 마쳤다. ‘영원한 여름’에서 ‘화려한 무대 위 시간은 지나고/ 사랑은 떠나고 미움도 지우고/ 바람이 부는 곳 시작된 순간들/ 그곳엔 아마 다시 영원한 여름’은 나의 2009년 여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앨범 뒷면에 수줍게 들어간 내 이름이 자랑스러워 앨범 20장을 덜컥 구입해버린, ‘아티스트=제작자’ 물아일체 감정이입의 말도 안 되는 충동구매도 서슴지 않은 바로 그 앨범. 사랑과 열정, 미움과 증오가 공존한 나의 2009년 여름은 그렇게 막이 내렸고 어느덧 2010년 여름이다. 올여름은 또 누구의 앨범을 위해 웃고 울고 소리치고 호소하며 또다시 영원한 여름을 맞이하게 될지 벌써부터 두려운 기대가 몰려온다. 하유선·락스미스 뮤직 PR 매니저 생각지도 못했던 허전함을 느끼네.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 누군가를 생각해 함께 있는 너에게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순 없겠지.언니네 이발관의 ‘보여줄 순 없겠지’ 한국에는 여성 취향으로 묶이는 음악들이 있다. 포크나 모던 록이 보통 그렇다. 그런 류의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대개 이렇다. 말랑말랑한 멜로디, 말랑말랑한 사운드 그리고 말랑말랑한 가사. 말랑말랑한 가사란 무엇인가. 일상에 대한 이야기나 내면의 단상들을 너무 유치하거나 과격하지 않게, 섬세하게 표현하는 가사다. 살짝 시적이고 은유적이지만 진솔한 고백의 내용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 가사는 작업녀에게 마음을 전하기 적절한 수단이 된다. 지나치게 유행하지 않으면서도 과도하게 마니악하지 않은 접점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던가. 고백의 순간이 다가왔다. 음악을 골랐다. 언니네 이발관의 1집에 담겨 있는 ‘보여줄 순 없겠지’가 적절한 상대였다. 제목과 멜로디의 분위기만을 보건대 그랬다. 근데 웬걸, 가사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허전함을 느끼네/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 여기까진 좋았다. 바로 그 다음. “누군가를 생각해/ 함께 있는 너에게/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 순 없겠지” 뭐야, 이거. 결국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옮겨가고 있다는 내용이잖아. 아직 시작도 안 한 사람에게 이런 노래 들려줬다가는 ‘그 고백’이 아닌 ‘다른 고백’을 하게 될 터였다. 부랴부랴 다른 노래를 골라 전했다. 그 후로도 이발관의 노래는 대부분 그랬다. 그 아름다운 멜로디에 숨겨진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애초에 없다. 그것이 인간을 향해서건 음악을 향해서건 마찬가지다. 변심의 순간이나 회의의 시점에 선 이들의 마음을 이발관은 꽤 많이 노래해왔다. 그런 가사들로 그리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니, 우리는 허세 없는 노랫말에 많이 굶주려 있나 보다. 김작가·음악평론가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패닉의 ‘달팽이’ 1985년 들국화의 전설적인 데뷔작에 실린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전인권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격렬한 사자후로 터뜨린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로부터 딱 10년 뒤, 들국화의 최성원이 프로듀서로 나선 패닉의 데뷔 음반에서 이적은 똑 부러지는 창법으로 달팽이를 노래한다. 전자와 후자 모두 ‘청춘의 방황’을 다룬다. 그리고 그 방황에 정답이란 없음을 받아들인다. 길은 떠나야 하지만 목적지는 분명치 않으며, 그리하여 여행 그 자체가 대답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둘의 공통점은 거기까지가 아닐까? 길을 떠남으로써 길 위의 세상이 ‘내 것’임을 주장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 비해 ‘달팽이’의 화자는 집으로 돌아와 ‘언젠가 먼 훗날에 갈 길’을 꿈꾸며 잠이 들 뿐이다(그래서 그는 ‘달팽이’다). 길을 떠나면 동료를 만날 테고, 그럼으로써 연대가 가능하지만 욕조 속에서 갈 길에 대한 꿈을(만) 꾸는 이를 달래주는 건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달팽이(어쩌면 애완동물)뿐이다. 간결하지만 명료한 묘사를 통해, 이적은 1990년대의 젊은이들을 지배했던 어떤 정서를 적절하게 포착하고 있다. 외로움과 고립을 세상으로부터의 퇴각(즉 부적응)이 아니라 지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정서 말이다. 오늘날 이런 정서가 ‘중2병’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는 동시대 청년들의 관심사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해서 그것을 설득력 있는 멜로디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드문 예 중 하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보통 ‘청춘의 송가’라고 부른다. 최민우·음악평론가 숯공장 마을에 아이들이 사네. 검정 시냇물과 손이 얼어붙어도 숯공장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 헐벗은 나무와 발끝이 얼어붙어도 겨울이 오는 소리. 지상에 흐르던 선율.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겨울이 오는 소리. 지상에 흐르던 선율. 하늘로 올라가 아이들이 웃네. 숯공장 마을에 아이들이 사네. 무덤가 잔디와 귀가 에어진대도.플라스틱 피플의 ‘흑백사진’ 겨울이 오는 소리를 본 적 있는가? 맡아본 적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눈 안에 그림을 그리고 살갗에 소릿결을 남기는 음악에선 가능하다.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서술이 가능한 영화처럼 음악에도 말이 필수는 아니지만 그 힘을 증명한 노래들이 있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라는 가사로 행동을 동반한 영상의 위력을 지니게 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쓴 이가 동물원의 김창기다. 그는 한대수를 알고 있었다. 해물찜을 앞에 두고 ‘창문을 열어라’ 노래했던, ‘행복의 나라로’를 썼던 한대수다. 지난 봄에 떨어진 벚꽃을 다 세지 못하는 것처럼 이런 성공 사례들을 다 적을 수는 없다. 그 후 다소곳한 두 남녀인 플라스틱 피플이 걸음을 더 내딛었다. ‘숯 공장 마을’과 ‘검정 시냇물’이 펼쳐내는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런 곡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이 오는 소리…’가 흐르는 순간, 그림은 소리가 되고 소리는 다시 그림이 되었다. 이 노랫말과 선율, 감정을 움직이는 코드와 사운드의 전환이 맞물리며 눈 맑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흑백사진’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뛰어내린 물방울들이 마당에 파놓았던 홈은 옛 지붕을 걷어내면서 함께 사라졌다. 많은 것이 잊히고 있다. 짧은 가사를 아무리 훑어봐도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라’는 말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사진으로만 남겨진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피어난다. 무엇보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비스듬한 겨울 햇살과 찬 공기를 담아온 종이 봉투가 열린다. 봄과 여름에 아래로 향했던 시선은 뿌리 모양이 된 가지로 겨울을 빨아들이는 나무와 눈 내리는 깊은 하늘을 떠올리며 높은 곳을 향한다. 나도원·음악평론가 약간의 조증 폐쇄공포증. 혼자뿐인 넓은 집 냉장고엔 인스턴트 식품. 혀끝에 남은 조미료 맛이 너무 지겨워. 그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건 바로. 어어어어어어 어머니의 된장국.다이나믹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 무릇 익숙한 것들은 천대받게 마련이다. 늘 먹는 밥, 매일 마주치는 사람, 멍하니 쳐다보는 TV 등 익숙한 영역에 속하는 것들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애정의 변두리에서 기웃거리기 십상이다. 어머니, 된장국. 가까이 있기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대표적 존재. 그래서 완행버스처럼 떠난 뒤에야 손 흔들게 만드는 것들. ‘어머니의 된장국’이란 제목부터 아련한 감정들을 삭삭 긁는다. 시작부터 김이 모락모락 핀다. 대개 음식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첫 번째는 흔히들 말하는 ‘요리송’, ‘푸드송’ 이다. 최근에는 박명수·소녀시대 제시카의 ‘냉면’, 정준하·애프터스쿨의 ‘영계백숙’ 같은 노래가 인기를 얻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자두의 ‘김밥’, 윤종신의 ‘팥빙수’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가벼운 소재로 위트 있게 스토리를 이어가는 형식이다. 의미보다는 재미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고, 애절함보다는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두 번째로는 음식을 양념 삼아 추억을 상기시키는 노래들이다. 한때는 커피와 칵테일 등이 잊힌 기억을 상기키는 소재로 쓰였으나, 현실감은 떨어졌다. 필자가 꼽은 ‘어머니의 된장국’이 이 분야의 대표 곡이다. god의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보다 보편적이고(비단 어머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은 짜장면을 안 좋아하더라), 김창완 아저씨의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라는 가사보다 알아듣기 편하다.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군상들이 고스란히 보이고, 그들의 향수가 녹아 있다. 눅눅할 수 있는 주제를 보글보글 맛있게 풀어낸 솜씨도 일품이다. 녹초가 된 퇴근길에 듣기를. 마른 입술에 침이 고일 것이다. 최성욱·음악평론가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왜냐고 묻지 말아줘. 그냥 날 내버려둘래. 나 정말 미칠 것 같아. 나 이제 취직했잖아. 돈 걱정하지 말랬지 .월급이 어제였는데 왜 그제 떠나간 거니.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오! 부라더스의 ‘hidden track(눈물이 나올 듯 말 듯)’ 이 노래는 제목도 없다. 히든 트랙이라 부클릿에 곡 소개도 없다. 게다가 인디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었다. 있는지조차 모르는 노래다. 그런 노래를 좋아했다. 무척 좋아했고 오래 좋아했다. 처량하고 지랄맞아서 좋았다. 카바레사운드의 2002년 크리스마스 기념 컴필레이션 에 히든 트랙으로 수록된 이 노래는 오! 부라더스의 곡이다. 자의적으로 붙인 제목은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가사는 짧고 강렬하다. 떠나간 애인을 원망하는 남자는 이렇게 읊조린다. “나 이제 취직했잖아/ 돈 걱정하지 말랬지/ 월급이 어제였는데 왜 그제 떠나간 거니” 이 노래를 듣던 당시 나는 반 백수였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시절, 막 서른 된 내가 처량맞고 지랄맞았다. 이 노래가 꼭 내 처지 같아서 좋아했다. 단골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분위기가 오르면 이 노래를 틀었다. 그러다 이 노래를 부른 남자도 만났다. ‘쟈니’라고 했다. 우리는 낄낄대며 함께 취했다. 그 후로 그를 또 만나진 못했다. 어쩌다 취직을 했고 기다렸다는 듯 야근이 들이닥쳤다. 이 노래의 교훈은 하나다. 모 카드사의 아버지는 말하셨지 어쩌고 하는 광고 카피와도 일맥상통한다. “연애엔 돈이 든다. 많이 든다.” 요새는 처량맞고 지랄맞은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이 노래를 듣는다. 그렇다고 사정이 달라지진 않지만 기분은 좋아진다. 우리는 어쨌든, 그 지랄맞은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도 부디, 러키.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하여도 플리즈 러키. 차우진·음악평론가*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