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의 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소리에 색깔을 입힌다면 파이프오르간은 오색찬란한 빛을 발할 것이다. 놀랍도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과 화음은 듣는 이의 귀를 울리고 마음을 울린다. 이것이 김여정 오르가니스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선율의 힘이다.::김여정,엘르,엣진,elle.co.kr:: | ::김여정,엘르,엣진,elle.co.kr::

“청중들은 점점 오르간 연주자의 복음 같은 메시지를 이해했다. 아니, 저기 저 위에 있는 사람은 단순히 음악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는 냉정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진리였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갑자기 진실을 읽을 수 있었다. 가면은 녹아내렸고, 각자의 얼굴마다 신비한 정적이 감돌았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버트 슈나이더는 소설 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흔들어 놓는다고 기술했다. 악기 중에서 파이프오르간처럼 장엄하고 웅대하며 수백 가지의 음색을 낼 수 있는 건 없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속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궁무진한 화음의 울림은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고삐를 풀어놓는다. 더군다나 한 폭의 폭포를 연상시키는 높다란 파이프들의 위용은 소리의 울림에 신비롭고 장엄한 기운을 더한다. 오죽했으면 모차르트가 파이프오르간을 가리켜 ‘악기의 왕’이라 칭했을까. “파이프오르간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 알겠지만 몸집만큼이나 다양한 음색을 자랑해요. 한 사람이 여러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아요.” 김여정은 이 매머드급 악기를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다.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활발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가 오는 6월 21일 혜화동 성당에서 있을 독주회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오르가니스트를 꿈꾼 건 아니었다. 난생처음 길들이고, 길들여졌던 악기는 피아노였다. 그리고 지금의 단짝 목소리를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라디오를 통해 파이프오르간 연주곡을 처음 들었다. 전공을 옮기게 된 것은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지인의 권유가 컸다. 오르간이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건반 악기에 속하지만 배우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피아노를 치면 파이프오르간도 쉽게 연주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똑같이 건반이 있다는 점에서 피아노 연주에 능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배우기는 쉬울 수 있겠죠. 하지만 페달을 구르는 것부터가 달라요. 연주 테크닉도 그렇고요.” 파이프오르간을 단순히 피아노의 몸체에 수십 개의 금속관을 합체한 것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현을 울리는 피아노와 달리 손과 발로 누르는 건반의 움직임에 따라 파이프 밑부분에 응축된 공기가 빠져나가는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소리를 낸다. 또 계단처럼 여러 층수의 건반이 있고 페달 역시 또 하나의 건반 역할을 해 팔다리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있어 무엇보다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파이프오르간과 함께해온 그녀에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동작이 많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테크닉이 중요하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한 시간 이상 공연해도 피아노 연주할 때와 큰 차이가 없어요.” 대중음악이 도래하면서 신나고 발랄한 느낌의 재즈를 가미하거나 록 음악과의 교배를 통해 장르적 변주를 꾀하고 있다지만 파이프오르간은 전통적으로 교회음악의 상징이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와 오랜 시간 호흡하며 고전음악의 역사를 빛냈다.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인 볼프강 뤼브삼이 저명한 ‘바흐 스페셜리스트’였던 탓도 있지만 미국에서 교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여정 오르가니스트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클래식 곡들을 고집한다. “파이프오르간으로 종교음악만을 연주하는 건 아니에요. 여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파이프오르간은 교회와 성당에서 종교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이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신앙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이유죠. 때문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오르가니스트라면 청중의 영혼을 울리는 연주를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녀의 말대로 중후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만큼 성가에 걸맞은 악기는 없다. 전체적으로 엄숙하게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의 장엄하면서도 묵직한 선율은 깊은 묵상에 잠기게 한다. 김여정 오르가니스트는 파이프오르간 음악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으로 라이브 연주를 듣기를 권장한다. “파이프오르간은 장소와 공간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현장에서 들어야 해요. 같은 오르간이라도 지붕이 높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울림이 몇 배나 더 크죠. 울림에 따라 잔향을 얼마나 길게 늘릴지가 달라져요.” 이처럼 신경 써야 할 변수가 많고 쉽사리 연주하기 힘든 이 고귀한 악기가 국내에서는 낯설고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교회와 성당, 음대에 상당수의 파이프오르간이 있긴 하지만 전문 공연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만큼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열리는 것이어서 김여정 오르가니스트의 이번 연주회는 더욱 반갑다. “파이프오르간 음악이 의미하는 신앙이 특정 종교만을 포함하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연주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따스하게 보듬을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이날 공연 수익금 전액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는 ‘라파엘 클리닉’을 위해 쓰인다. 천상의 소리라 불리는 파이프오르간의 음악에 심취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영혼도 치유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who’s who김여정 오르가니스트는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 대학에서 음악학사를 받은 후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파이프오르간으로 음악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오르간협회 주관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 있으며 벤쿠버의 올페움 극장에서 열린 한국국립합창단 연주회에 초청 오르가니스트로 무대에 섰다. 현재 미국 외에도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포함한 동유럽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여우주연상, 최우수각본상 수상 ●2009년 골든글러브 TV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 에미상 최우수 프로듀서상 수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