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영감의 근원에 대해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매시즌 창작의 고통을 쏟아내는 디자이너들을 위로해주는 찬란한 기쁨의 대상이 있습니다. 네, 그들을 뮤즈라고 하지요. 천재라 불리는 마크 제이콥스도 그의 뮤즈인 조셉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오늘은 디자이너와 영감의 근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마크제이콥스,엘르,엣진,elle.co.kr:: | ::마크제이콥스,엘르,엣진,elle.co.kr::

2007년쯤일까요? 매년 2월에 열리는 뉴욕 F/W 컬렉션은 살을 에일 것처럼 파고 드는 칼바람 때문에 늘 추위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너무 좋아 밖으로 뛰쳐나가 컬렉션 걱정도 잊은 채 소호 여기저기를 산책하던 우리는 동시에 “Oh, my god!”을 외쳤습니다. 바로 눈앞에 마크 제이콥스가 앉아 있는 겁니다. 뉴욕 컬렉션 기간 내내 마크는 작업실과 가까운 머서 호텔에 머문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었는데 앞서 쇼를 끝낸 그는 2월의 햇살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궁금하시죠? 그는 대단히 잘생겼습니다. 게다가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던 그의 패인 볼과 지그시 눈을 감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처럼 약간은 삐딱하고 도전적이기도 하고, 자유분방해 보였습니다. 길을 걷던 많은 사람들도 우리처럼 웅성거리며 지나가자 그런 모습까지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 눈에 쏘옥 들어오게 아름다웠던 건 마크를 병풍처럼 둘러싼 채 유쾌하게 수다를 떨던 그의 스태프들이었습니다.Y 케이. 어떡해! 마크 제이콥스 아냐? K 햇살받으며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보니 이번 쇼 반응이 좋았나 보네. Y 어머, 사인이라도 받아야 되는 거 아냐? K 마크를 둘러싼 저 아름다운 사람들 좀 봐. Y 언젠가 인터뷰에서 디자인 영감의 근원이 오로지 주변 친구들이라고 했을 때 소피아 코폴라만 떠올렸는데 그게 아닌걸. 자기 스태프들이었나 봐.루이 비통을 훌륭하게 디렉션하면서도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까지 훌륭하게 치러내는 데는 하나하나 아티스트처럼 보이는 그의 스태프 덕일 것이라며 우리끼리 예찬론을 주고받는 사이 작업실에 도착했고, Y&K 스태프들이 쇼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Y&K 얘들아, 빨리 뛰어가서 머서 호텔 앞 마크 제이콥스 스태프들의 아름다운 미모를 보고 오너라! 헐레벌떡 뛰어 다녀온 Y&K 스태프들 “정말 대단해요. 무슨 화보의 한 장면 같아요.” Y&K 그렇지(농담 섞인 어조로). 너희는 뭐니? 우리에게 대체 어떤 영감을 주니? 좀 노력해야 되지 않겠니? 우리의 계속되는 공격에 샐쭉해진 스태프들의 항변 “선생님도 마크 제이콥스가 아니시잖아요?” 쇼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뒤 프랑스의 한 방송사에서 제작했다는 마크 제이콥스의 다큐멘터리를 텔레비전에서 보게 됐습니다. 를 본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가 컬렉션을 준비하는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Where is Joseph?” “ Is Joseph here?” “Joseph! Joseph! Joseph!”을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런 것처럼 패션쇼를 앞두고 몸도 머리도 하얗게 돼갈 때는 무엇에든 의지하게 되는데 마크에게는 조셉이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Y 머서 호텔 앞 그 아름다운 스태프들 중 하나가 그의 오른팔이자 어시스턴트 디자이너인 조셉이었나 봐. K 그러게. 제발 조셉은 마크 옆에 좀 붙어 있지. 도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길래 마크가 하루 종일 저렇게 찾아다니는 거야? Y 인터뷰할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디자인 영감을 어디서 받느냐 하는 거잖아. 사실 대부분은 내 삶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 마크에게 조셉이 미친 영향은 컬렉션마다 표현했던 수많은 아티스트들로부터 받은 영감보다 더 엄청났던 것 같아. K 뉴욕 진출 후 내가 생각하는 여성상은 자유롭고, 영혼이 살아 있는 다운타운의 느낌을 가진 사람이었지. 그러면서도 엘리강스하고 고급스러운 애티튜드를 가진. Y 아, 그래서 케이가 언제나 디자인 회의 때마다 언급했던 사람이 기네스 팰트로였지. 영화 속 도나 카란의 그린색 드레스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캘빈 클라인의 패일 핑크 드레스를 모던하게 소화해낸 그녀를 디자인 회의 때마다 언급했지. 아름다운 사람과 옷의 연관성 그리고 문화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까지 하면서 말야. K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즌에 기네스 팰트로가 우리 옷을 입었잖아. Y 응. 내가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시작했을 때 보여주려 했던 이미지가 바로 모던 빈티지였지. 뮤즈로 키얼스틴 던스트, 매기 질렌할, 클로에 셰비니를 자연스럽게 나의 인스피레이션 보드에 올렸던 그 시즌, 그녀들이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파파라치 사진에 종종 올라오는 걸 보는 건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어. 디자이너와 뮤즈는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걸까? K 2년 전 추운 겨울 웨스트빌리지 식당에서 배우 이나영과의 저녁 식사 생각나? 너무 구석져서 주소 가지고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외진, 예약도 제대로 안 되고 전화도 잘 안 받던 그곳 말야. Y 응.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잘 차려입은 뉴요커들이 금요일 밤 그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는데도 그 중 이나영의 미모가 단연 돋보였잖아? 잘난 뉴요커들의 눈에도 이나영이 예뻤는지 연신 뒤돌아보곤 했어. 만약 그곳에 뉴욕 디자이너 중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날 배우 이나영을 영감의 시작으로 동서양이 묘하게 믹스된 근사한 컬렉션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테지. K 그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모델 카렌 엘슨이 뮤즈가 됐지. Y 맞아. 그녀의 빨간 머리에 도자기같이 매끈한 피부 그리고 누드 컬러 시폰 드레스에 살짝 걸친 세이블 퍼 코트의 잔상이 그해 컬렉션의 테마가 됐지. 오프닝 모델로 세우고 싶어 연락했는데 베스트 프렌드인 마크 제이콥스나 안나 수이 외에 다른 쇼는 못한다고 해서 너무 서운했지.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현실 같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눈물 나. K 우리가 매 시즌 창작의 고통에서 괴로워할 때 운명처럼 나타나 반짝이는 영감을 전해주던 우리의 뮤즈들이 오늘 간절히 그립다. 그치? Dear 아름다운 사람들, 우리의 뮤즈들, 그리고 Y&K의 조셉이었던 나의 사랑하는 스태프들에게 창작의 고통에 빠져 있던 우리에게 당신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커다란 구원이었는지 모릅니다. 당신들로부터 느꼈던 영감에서 시작된 디자인이 그동안 많은 분들께 감동을 주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옆에 있어서, 당신들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감사의 마음을 멀리 뉴욕에서 전합니다.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나중에 만나게 되면 뜨거운 포옹을 나눕시다. Y&K PS. 이 자리를 빌어 Y&K 스태프들에게 그 동안 장난삼아 “영감은 안 되고 열심히 일만 하는 너희들이 싫다!”고 했던 것은 진심이 아니었으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언제나 당신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