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기(猫氣)로 사는 여자, 박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대상과의 거리를 담보한다. 거리감이 제로가 되는 순간, ‘갖고 싶다’는 욕망은 ‘같이 있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뀌는 법. 그렇게 그녀에게 뾰족한 귀와 긴 꼬리를 가진 가족이 생겼다. :: 귀여운, 특별한, 소소한, 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귀여운,특별한,소소한,엘르,엘라서울

고양이에 대한 첫 기억이 있냐고, 아니, 정확히 말해 고양이에 대한 첫 기억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럼요.” 보드카 두 병을 마시고 머리를 열 번쯤 벽에 찧다 앞으로 포복, 뒤로 포복을 30분쯤 하고서도 클리어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정도의 확신에 찬 대답. 초등학교 때 어머니의 제자가 집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가구 밑에 들어가 당최 나올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들여다보니 어둠 속에 번쩍이던, 눈 두 개.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기억. 그때 그 고양이 야니를 품에 안고 연탄불 타는 걸 구경하다 야니 수염을 꼬슬꼬슬하게 말아먹던 소녀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가 됐고, 야니 종족에 대한 넘쳐흐르는 애정을 고양이와 관련된 온갖 소품들을 모으는 데 쏟아부었다. 고양이가 조각된 오르골, 고양이 모양의 잔, 브로치, 향수병, 책, 촬영 날 하고 나온 귀고리까지. 대부분 외국 여행에서 구하거나 선물 받은 것들이다. 1 지인의 선물. 고양이 캔에 천을 씌우고 뚜껑을 만든 뒤 피규어를 붙였다. “고양이가 미치도록 예쁘고 좋았어요. 진짜 영물인가. 길고양이들도 더러우면 더러워서 예쁘고 애꾸눈이면 애꾸눈이라 예쁘고. 눈에 들어오는 게 고양이밖에 없었죠. 고양이가 있는 물건은 보이면 일단 샀어요. 못 사면 사진을 찍고요. 말도 안 되게 못생긴 고양이가 그려진 간판 사진 이런 것도. 하하.”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양이와 같이 산 지 10년. 진짜 고양이의 사삭거리는 움직임, 말랑한 몸과 따뜻한 체온을 그 시간만큼 느꼈다. 그런데도 왜 형상만 있고 생명은 없는 고양이가 필요한 걸까. “집에 있는 고양이만으로 되겠어요? 하하. 농담이고, 밖에서도 그 녀석들이 계속 눈에 밟히는 거에요. 엄마가 억지로 아기 떨어뜨려놓고 나온 것처럼.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더 생각나고 집에 있는 내 고양이 같아서 자꾸 사게 되더라고요.” ‘박사=고양이’ 공식의 성립. 지인들마저 여행지에서 ‘고양이 OO’을 발견하면 사다주곤 했다. ‘싼 것을 모으는’ 이의 특권이랄까. ‘아라키 노부요시의 고양이 사진집도 그렇게 생겼다.2 파리의 강변 노점에서 구입한 미니어처 고양이 교실.3 책장을 후르륵 넘기면 고양이가 움직이는 작은 그림책 지금껏 모은 고양이 소품들이 집을 잠식해가도 관심은 잘 끊어지지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요즘은 수집과 소유에 집착은 하지 않는다는 것. 고양이라는 동물은 이미 ‘예쁜 것’,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삶의 동반자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제가 어릴 때 좀 불안정했거든요. 고양이랑 살면서 책임감도 생기고 안정이 됐어요. 정말 가족이에요. 집밖에 있으면 걱정되고 같이 있으면 편하고. 이제 고양이가 예쁘고 안 예쁘고 고양이 소품을 갖고 안 갖고가 예전만한 의미는 없는 듯해요.” 야니 얘기로 돌아가서, 아무래도 그때 야니는 동그란 눈으로 주문이나 마법, 하다 못해 최면이라도 걸었던 게 틀림없다. 부암동 집에서 방금 사온 잼 뚜껑을 열자마자 한 가닥 털을 끄집어내는 소소한 일상을 선사하는, 조금 특별한 가족들과 사는 그녀. 그야말로 ‘묘기猫氣(‘고양이의 기운이나 매력’을 말하는 그녀의 단어)’에 제대로 ‘말렸’다4 카를로비바리에서 산 잔. 체코 풍습에 따라 온천 물을 담아 마시는 용도. 머리에 물을 붓고 꼬리로 빨아 마신다.5 그녀가 입던 옷으로 친언니가 만든 고양이 인형6 어항에 머리를 밀어넣은 고양이. 얼마 전 뉴욕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브로치*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5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