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신을 잡아 먹은 #먹스타그램 | 엘르코리아 (ELLE KOREA)

7000만 개에 달하는 먹스타그램 해시태그가 다이닝 신을 그야말로 잡아먹었다. | 먹스타그램,인스타그램,푸드,먹방,시각적 완성도

  2010년 등장한 인스타그램은 지난 10년간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안겼다.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달하고 또 습득한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신간 디자인을 결정할 때 실물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더 신뢰한다는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책을 서점이나 도서관보다 인스타그램에서 더 빠르고 빈번히 접하고 있으니. 인스타그램용 미술 전시까지 등장하는 판국에 가장 보편적인 소비재인 식음료는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받겠는가. 인스타그램은 식음료 시장의 판도를 아예 바꿔놨다. “촬영 시안으로 참고하던 해외 잡지 속 이미지들이 국내 식탁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요.” 푸드 스타일링 스튜디오 ‘101레시피’ 문인영 실장은 최근 들어 국내 다이닝은 물론 가정집 식탁까지 스타일링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이는 인스타그램의 유행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미각적 완성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시각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풍토가 영향을 미친 결과일 터. “화보를 촬영할 때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스타일링한 결과물만큼 시각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완성도를 매번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 놀랍죠. 그런데 문제는 미각적 완성도는 영 떨어진다는 점이에요.” 문 실장은 밀레니얼 세대가 음식 맛보다 모양을 더 중시한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레스토랑을 기획, 구성할 때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인스타그램을 염두에 두어요.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거예요.”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다이닝 ‘이타카’ 김병일 헤드 셰프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이나 파워 블로거, 매체 등을 통해 맛집을 선별했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인지도 높은 파워 블로거, 매체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니 말 다 했다. “레스토랑 전면에 통유리를 설치했을 뿐 아니라 몇 걸음 물러서서 사진을 찍었을 때 오픈 키친까지 레스토랑 전체가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도록 설계했어요. 들어오자마자 인증 샷을 찍도록 바닥에 로고가 새겨진 동판을 박았고요. 한쪽 벽면에 거울을 설치한 것도 넓어 보이는 효과와 함께 맞은편에 앉은 손님들이 기념 촬영했을 때 재미있는 효과를 주기 위해서예요. 테이블마다 핀 조명을 설치해 음식에 바로 빛이 떨어지도록 하는 동시에 위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레스토랑 구석구석에 간접조명을 세심하게 설치했어요.” 인스타그램의 문법을 따른 결과 이타카는 문을 연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미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으로 인정받았다.   먹스타그램이 우리 식탁에 미친 영향은 식재료 하나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매 운동이 일고 있는 아보카도가 바로 그것. 물론 과일 중에서 가장 영양가가 높아 ‘숲속의 버터’라는 아보카도는 아무 잘못이 없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 녹색 황금을 독점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문제다. 아보카도의 대표 산지인 멕시코에서는 ‘아보카도 마피아’라 불리는 폭력 조직이 농민들을 납치, 살해하는가 하면, 원시림 절반이 아보카도 재배로 파괴됐다는 살벌한 뉴스들이 연일 들려온다. 비단 멕시코의 문제만은 아니다. 칠레는 강줄기가 말라가고, 뉴질랜드는 때아닌 강도와 암시장이 기승을 부린다. 아보카도가 생태계와 인간의 안위를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끈 배경에는 슈퍼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먹스타그램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랗고 푸른 빛깔에 도톰한 부피감을 지닌 아보카도는 먹스타그램 공식대로 음식이 화면에 꽉 차게 클로즈업했을 때 접시에 화사한 색감과 묵직한 존재감을 안겨준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음식을 내는 카페나 레스토랑 열에 아홉이 아보카도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이유다. ‘아보카도 토스트 먹을 돈을 아껴 집을 사라’ ‘아보카도 토스트값 아껴봤자 집 사지 못한다’는 세대간 논쟁에서 아보카도는 먹스타그램을 등에 업고 밀레니얼 세대를 상징하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먹스타그램은 한 가지 식재료를 지나치게 선호하는 쏠림 현상만큼 음료와 음식의 형태가 점점 기이하게 변하는 이상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음료에 올린 가루나 소스, 크림 등이 컵 밖으로 줄줄 흘러넘치는가 하면, 빵들은 부재료를 과하게 넣어 옆구리가 터질 듯하고, 그저 평범한 음식들은 산더미를 이루더라도 시선을 붙들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렇듯 양을 배로 늘리다 보니 질 좋은 재료를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문 실장은 먹스타그램으로 화제가 된 집을 찾았다가 시판용 소스와 반조리 식품을 조합한 맛에 숟가락을 내려놓은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음식을 공들여 만든 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이나 사진으로 봐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니 오히려 맛집을 선별하는 데 더 큰 혼돈을 겪는 것 같아요.” 김 셰프의 생각도 같다. “인테리어나 음식의 디테일이 떨어져도 사진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요. 시각적 아름다움을 좇느라 손님과 직원의 편의, 동선은 고려하지 않는 등 디테일이 떨어지는 식당을 볼 때면 답답하죠. 반대로 다이닝의 본질인 음식과 서비스에 충실하며, 처음부터 고객의 니즈를 고려해 기획하고 이를 잘 구현했음에도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예쁘게 담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곳을 보면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김 셰프는 먹스타그램이 다이닝에 미친 긍정적 효과도 크다고 귀띔한다. “지금처럼 손님들의 피드백을 빠르게, 또 많이 받은 적이 없어요. 심지어 식사 중에도 사진을 올리잖아요. 매 순간 서비스는 물론 미각과 시각적 부분까지 긴장해서 챙겨야 하니 만족도나 완성도가 확실히 높아지는 것 같아요. 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레스토랑을 평가해 볼 수도 있고요.” 이타카는 환경을 생각한 올바른 식소비, 지속 가능한 정신을 음식에 담고 있다. 대중에게 다소 생소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의식한 독창적 인테리어와 플레이팅을 통해 꽤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눈치다. 예부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전 세계 셰프들이 조명과 식기구, 플레이팅에 유례없이 힘주며 고객들이 잘 ‘찍게끔’ 신경 쓰는 데는 다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물론 맛있는 떡을 만드는 건 기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