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이 열리는 매장은 따로 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빈손으로 나와도 아쉬울 것 없는 매장. 반면 뭐라도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은 매장. 대체 무슨 차이일까? | 글로시어,매장,인스타그래머블,뷰티,화장품

LA 멜로즈에 있는 글로시어 매장. 얼마 전 신제품 론칭 취재차 찾은 LA. 공식 일정을 끝내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글로시어’ 매장이었다. 전 세계 글로시어 마니아들의 ‘직접 발라보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으로 뉴욕과 LA에 오프라인 매장이 생겼고, 현재 마이애미와 시애틀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며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게 뭔지 그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글로시어! 뷰티 에디터로 일하며 화장품이란 화장품은 원 없이 써봤고, 그러는 사이 화장품을 평가하는 기준마저 높아져 웬만한 제품 앞에서도 크게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나에게도 글로시어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제품력이 미치고 팔짝 뛸 만큼 탁월했냐고? 노(No). 오히려 네이밍, 라카, 힌스 등 국내 인디 메이크업 브랜드가 한국 정서에 더 맞는 텍스처와 컬러감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패키지 디자인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냐고? 그것 역시 노(No)! 그럼에도 ‘뭐 살 거 없나’ 두리번거리며 자그마한 매장을 하이에나처럼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걸 살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제품을 집어 계산대로 가려는데, 어라? 매대 위엔 테스트용 제품뿐 새 제품이 아예 진열돼 있지 않다?! 베이비 핑크색 점프수트를 입은 매장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쿨’한 애티튜드로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원하는 제품과 수량을 기입하고 자그마한 단말기를 꺼내 카드 결제를 한다. “저 앞에서 조금만 기다려!” 멀뚱멀뚱 기다리는 동안 눈에 들어온 건 글로시어 매장의 ‘셀피 스폿’으로 유명한 일명 ‘You Look Good’ 거울. 홀린 듯 아이폰을 꺼내 셀피를 몇 장 찍고 있으니 누군가 “윤~쥐~”라고 부르며 구입한 제품과 샘플 사셰를 담은 에코백을 고이 건네준다. 직접 손으로 쓴 귀여운 핑크색 네임 태그와 함께! 그제야 글로시어만이 지닌 ‘바이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Younji Jung’이라 적힌 핑크색 네임 태그가 시선강탈! 뭐든 바르고 싶게 만드는 제품들. 글로시어 매장 직원들은 그냥 ‘나’ 같았다. 물론 스트리트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 ‘멋’이 넘쳐흐르는 건 나와 차원이 달랐지만! 최소한 화장품을 구경하고 발라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면에서는 같았던 것. 내가 눈짓을 보내거나 손을 들어 사인을 보내기 전까진 말도 건네지 않는다.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는 것조차 없다. 자유롭게 글로시어 제품을 바르며 메이크업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고객 요청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등 그저 웃고 즐길 뿐이다. 매장 벽면의 대부분이 거울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 포토숍 작업을 거친 완벽한 연예인의 광고 컷으로 도배된 채, 45˚로 살짝 누운 손바닥만 한 거울이 달린 매대가 3~4열 종대를 이루고 있는 한국 매장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그 제품을 바른 네 모습만 봐. 연예인이랑 왜 자꾸 비교하려고 해’라는 메시지가 들릴 정도였다면 너무 과장 같나? 아니, 참으로 오랜만에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이라 하나라도 더 발라보고 그로 인해 달라진 내 모습을 사방에 붙은 거울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게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무엇보다 사진을 부르는 스폿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글로시어의 인기에 한몫한다. 쇼핑하는 친구를 기다리며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소파가 있는가 하면, ‘앤털로프 캐니언’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룸에서 새로 출시한 향을 느끼며 마음껏 셀피를 찍을 수 있는 스페셜 포토 존도 마련돼 있었다. 화장품 매장에 왔다는 느낌보다 모두 행복해 하며 마음껏 즐기는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았다. 자꾸만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무언의 구매 압박을 주는 매장 직원의 따가운 시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제품을 테스트하는 사이 나만의 개성과 예쁨을 발견하게 만드는, 작지만 알찬 뷰티 테마파크.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주인공 르네가 이런 말을 한다. “버그도프나 블루밍데일스 같은 전통적인 뷰티 매장에 있는 직원들 때문에 오히려 구매를 주저하게 돼요. 완벽한 조각처럼 아름다운 그녀들이 뾰루지 있고 완벽하지 않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걸 느끼는 순간 주눅이 들거든요. 그래서 평범한 여자들이 대형 드럭스토어 매대로 향하는 거예요. 내가 아름답지 않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누군가가 아예 없는 곳으로요.” 결국 지갑을 열게 하는 비밀은 그런 게 아닐까. 브랜드가 ‘You look good!’이라고 말하면, 고객이 ‘I feel pretty!’라고 외치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