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장으로 향하는 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2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성황리에 개최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2> 파이널 쇼에 Y와 K가 스페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됐습니다. 신진 디자이너의 치열한 경쟁을 바라보면서 Y와 K가 한마디하려는 것 같군요. 늘 그렇듯 한 차례 폭풍을 겪어온 선배의 조언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요. :: 패션,인터뷰,열정적인,개성있는,신선한,새로운,엘르,엣진,elle.co.kr :: | :: 패션,인터뷰,열정적인,개성있는,신선한

처음 맞이하는 코넬대학의 겨울은 춥고 길었다. 때마침 찾아온 짧은 봄방학을 맞아 잠시 서울에 들렀는데 그 어느 때보다 패션 열기로 뜨거웠다. 서울시와 패션협회의 공동 주최로 진행된 서울컬렉션 때문이었다. 그 중 우리가 가장 관심 있게 본 쇼는 서울컬렉션의 대미를 장식한 파이널이었다. 마지막 우승자 한 명을 선정하는 최종회 스페셜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한국 패션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쇼장으로 향하는 길, 최종 후보 세 명만큼 우리도 긴장하고 있었다. K 우리가 누군가와 경쟁해서 꼭 이기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였지? K 세계패션그룹(FGI)의 라이징 스타 어워드(Rising Star Award) 후보에 우리 이름이 올랐을 때! Y 맞아. 그때 경쟁 후보자들이 자크 포센과 피터 섬 등 쟁쟁했잖아. K 뉴욕 패션의 샛별 자크 포센이나 캘빈 클라인에서 경력을 쌓은 피터 섬이 탈 거라고 생각해서 우린 아예 시상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지. Y 그런데 예상을 깨고 Y&Kei가 라이징 스타 어워드 수상자로 호명되자 당연히 자신이 수상할 줄 알았던 자크 포센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 웃었지. 게다가 턱시도 차림에 어머니까지 모시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니. K 그래. 우리에게는 일종의 사건이었지. 그렇지만 경쟁에서 졌어도 이후 자크 포센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면서 디자인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의 절대적인 의미나 기준은 없다고 생각했어. 오늘 떨어지게 될 두 명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위로가 될까? Y 16년 전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중앙디자인 컨테스트에 참가했던 것도 생각나. 같은 해에 K가 2등, 내가 3등을 했잖아. 1등을 했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뭘 할까? 가끔은 경쟁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결국 발전하는 거잖아. K 그래. 이제는 더 이상 Y가 디자인하지 않지만 브랜드 하니와이(Hanii Y.)는 뉴욕에서 론칭하자마자 당시 신진이었던 필립 림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어. 세계 각국의 편집 숍과 백화점에서 언제나 나란히 자리 잡고 서로를 견제했지. Y 그래. 그랬었어. 필립 림을 비롯해 뉴욕의 많은 디자이너나 브랜드들과 경쟁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 그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었고. 경쟁이란 그렇게 서로를 자극하며 더 노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 패션쇼장에 도착하니 이미 현장은 패션쇼를 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고 패션 코리아를 대표하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수준 높은 옷들을 선보이며 매주 피 말리는 경쟁을 뚫고 결승전에 올라온 그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눈에 가늠할 수 있었다. 1차 패션쇼장에서 세 후보의 아름다운 쇼가 끝난 후 2차 프레젠테이션 장소로 이동한 뒤 최종 심사는 시작됐다. Y 입장하면서 세 명 얼굴 봤지? 이미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잤을 거고, 여러 인터뷰나 준비로 녹초가 돼버렸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한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눈빛 말이야. K 그래. 일등을 뽑아야 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 같아. 최종 후보자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고 이어지는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심사평에 세 명의 후보자들은 웃고 그리고 울었다. 드디어 심사위원 개개인의 순위 선정과 집계 그리고 결과! 이소라 씨의 발표로 최종 우승자가 호명됐다. “우승자는 (한참을 뜸을 들이며) 정고은 씨입니다. 축하합니다.” K 2003년인가? 브라이언 파크에서 열렸던 Y&Kei 쇼장 백스테이지에서 갸날픈 몸매, 긴 머리, 수줍고 설레인 듯하지만 또렷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헬퍼 기억 나? Y 아, 알렉산더 왕! K “너는 누구니?”라고 물었더니 자기 이름은 알렉산더 왕이며 파슨스를 다니고 있고, 수업으로 바쁘지만 Y & Kei 옷이 좋아 헬퍼로 왔다고 했지. Y 백스테이지 구석에서 자기가 책임져야 할 모델의 의상을 반듯하게 모셔놓고 신발이며 액세서리를 꼼꼼히 살피는 그의 신중한 애티튜드가 놀라웠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집으며 “저는 이 옷이 너~무 너~~무 좋아요”라며 과장된 몸짓으로 귀엽게 진저리를 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K졸업 후 데뷔하자마자 단시간에 뉴욕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됐잖아. 우승자나 최종 후보들, 아니 최종 3인에 포함되지 못한 참가자들 중에서 한국의 알렉산더 왕이 탄생할 수 있을까? Y 뉴욕에서 충분히 경험했잖아. 디자이너 자신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게 전부일 수 없는 거 말야. 패션쇼를 통해 디자이너가 뜨고 난 다음, 전략적인 마케팅과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데다가 미디어, 유통, PR, 컨설턴트, 심지어 졸업한 학교까지 나서서 협력하고 지원하며 스타 디자이너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K 최종 후보 세 명뿐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이 치밀한 관심과 꾸준한 지원이 있어야 앞으로 한국 패션을 책임질 인재로 성장할 텐데. Y 그래. 조금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오늘 우리가 쇼를 본 세 명의 경우도 외국에 나가서 경쟁하려면 더 노력해야 해. 외국 에디터나 바이어의 시각에서는 디자이너 고유의 분명한 아이덴티티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새롭지도 유니크하지 않다고 지적당할 수도 있어. 마케팅이나 매니지먼트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실력을 갖춰야 해. 준비도 안 된 채 너무 서두르면 안 되는 거지. 외국 디자이너들은 실력 이전에 분명한 개성을 갖고 있잖아. K그렇지. 잘 만든 카피를 죄악시하는 분위기지. 개성적이면서 유니크해야 하고, 새로워야 하고. 휴…. 정말 디자이너는 힘들어. Dear 디자이너를 꿈꾸는 여러분, 요지 야마모토가 디자이너로 데뷔하는 그의 딸 리미에게 “행복한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지요. 여러분이 디자이너라는 길을 선택한 이상 때때로 느끼게 될 이 지옥 같은 고통에 익숙해져야 할 거예요. 저희가 겪어본 디자이너의 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 고통을 받아들일 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괴롭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좌절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여러분이 좋은 디자이너가 돼가는 성장통이라 생각하십시오.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을 즐기며! 진심으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디자이너로서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s 혹시 너무 외롭다고 느끼거나 고통스러우면 연락주세요. 아무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 그냥 같이 술 마셔요.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5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