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자주빛 노을이 지는 곳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나는 이렇게 부암동 주민이 되었다. '김소이의 부암일기' 첫 번째 이야기. | 부암일기,김소이,부암동,소이,서울

 ━  <김소이의 부암일기>      #1 2016년 여름, 매미 소리가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옥수동은 여전히 좋은 동네였지만 처음 반했던 그 곳의 소담함이 많이 사라졌다 느끼고 있었고 때마침 집주인이 집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통보를 해왔다.   새로운 동네를 찾기 전에 다시금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정했다. 독립 후 옥수동으로 이사를 온 이유이기도 한 “옛 동네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 1순위였다.   여름 한낮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 부채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동네.   편의점이 아닌 동네 슈퍼가 있는 동네. 계절의 흐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는 동네. 동네라는 단어의 어감이 어울리는 동네.   90년대로 이사를 가라는 누군가의 농담처럼 쉽지 않은 기준이었다.   몇 날 며칠을 서울의 지도를 바라보며 고민을 하고 마음에 들 법한 동네들을 추천 받아 찾아 가 보기도 하고 심지어 어느 집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 계약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Not enough 충분하지 않아”라는 문구가 적힌 반기가 도무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S양과 그녀의 남자친구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사를 가야하는데 과정이 녹록치 않다는 투정과 그냥 변해버린 옥수동에 계속 살아야하나 한탄을 하다가 문득 그들에게 물어봤다.   “너네 동네가 어디지?” “부암동.” “부암동?” 내 속에 스위치가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기간 기억 못 해낸 노래의 제목을 누군가 우연히 알려 줬을 때의 느낌,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에 적합한 단어를 새로이 발견했을 때의 느낌, 잃어버린 반쪽을 기어이 찾아냈을 때의 느낌, 은 아직 느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S양에게 부암동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날 저녁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집을 알아봤다. 해질녘 도착한 부암동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 해주는 듯 고즈넉하고 따듯했다. 초록의 녹음으로 가득한 곳에 자주빛 노을이 지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앞서 세워 놓은 기준에 모두 들어맞는 곳이었다. 결국 홀린 듯 그 날 두번째 본 집에 살기로 결정하고 계약금을 걸고 돌아왔다.    그날 밤, 아버지와 통화 하면서 부암동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잊지 못할 말씀을 해주셨다.   부암동은 조선시대부터 문인들의 도시였어. 문인들이 창의문을 왜 자하문이라고 부른 줄 아니? 자주빛 자, 노을 하, 자주빛 노을이 지는 곳이라는 거야. 그렇게 낭만적인 동네에 우리 작은 딸이 이사 가니 아빠는 참 기쁘다.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Not enough”라고 적힌 반기가 내려가고 “More than enough 넘치도록 충분해”라는 깃발이 꽂힌 순간이었다.    그 해 11월 15일 나는 부암동 주민이 되었다.    '김소이의 부암일기'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