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시대는 끝났다! 이젠 '노브라'의 시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드가 가슴을 억압하던 브래지어의 시대는 끝났다. ‘노브라(No-Bra)’에 대한 목소리는 나날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가슴을 감싸는 브라렛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문을 연 지금, 당신의 가슴에 자유를 선언할 때다. | 노브라,여성,브래지어,브라렛,패션

  1 작은 가슴이 인기를 끌었던 60년대의 모델 트위기.   2 장 폴 고티에의 콘 브라를 입은 마돈나.   3 안토니오 베라르디의 착시 드레스를 입은 기네스 펠트로. 4 무대 위 파격적인 란제리 차림의 애니 레녹스. 5 20년대에 유행했던 란제리.   6 영화 <어제, 오늘 내일>속 주인공 소피아 로렌.   7 40년대의 속옷 광고 장면.   Dior Dolce & GabannaSaint Laurent 도젠 크로스, 로지 헌팅턴 휘틀리, 미란다 커 등 수많은 슈퍼모델을 발굴해 내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빅토리아 시크릿. 화려한 퍼포먼스와 거대한 날개 차림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던 ‘앤젤’들의 모습은 더 이상 TV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획일화된 모델 상으로 여성들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대중에게 외면받기 시작하면서 한 해 평균 900만 명을 자랑하던 TV 쇼 시청자 수가 330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에 상징적인 TV 생중계를 잠정 중단하고 새로운 방향 모색에 나선 것. 사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와 아이코닉한 앤젤들의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그들의 주요 아이템인 브래지어의 매출이 감소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최근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부터 벌어진 치열이나 백반증 모델 등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는 추세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맞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지난 2월 뉴욕에서 리한나가 론칭한 란제리 컬렉션 세비지×펜티는 ‘모든 사이즈를 수용하는(size-inclusive)’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트랜스젠더 여성을 비롯해 흑인, 장애우, 임산부, 레즈비언 그리고 88 사이즈의 플러스 모델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자신의 컬렉션에 내세웠다. 라인 파트너스 소속의 패션 분석가 가브리엘라 산타안니엘로는 “빅토리아 시크릿이 고객에게 전하는 ‘푸시업 형태의 브라가 여성을 섹시하고 매혹적이며 풍만하게 만들어준다’는 메시지는 식상하다. 요즘 시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의 브래지어에도 반영되고 있다. 패드가 없는 ‘브라렛’의 뜨거운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속옷은 푸시업 브래지어와는 달리 패드나 와이어가 존재하지 않으며, 스포츠 브라보다 부드럽게 가슴을 감싸 여성의 몸을 존중해 준다는 평을 얻고 있다. ‘ShopStyle.com’에 따르면, 최근 브라렛의 수요가 121% 증가했다고. 미국 시장조사 전문 기업인 NPD 리서치 결과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에게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란제리 브랜드 ‘Fruit of the Loom’에서는 패드가 없는 가벼운 형태의 브라렛 디자인이 압도적인 판매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오랜 시간 동안 패션계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존 틀에서 벗어난 란제리를 접목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브라에 대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 장 폴 고티에가 1989년에 첫선을 보인 칵테일 원피스를 시작으로 크리놀린이 달린 돌체 앤 가바나의 드레스, 기네스 팰트로가 입어 많은 화제가 됐던 안토니오 베라르디의 블랙 & 화이트 컬러의 착시 효과 드레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이 대표적인 예. 그중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신축성을 탑재한 코르셋 드레스로 보다 편안하며 여성의 신체 특성을 배려한 옷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알렉산더 맥퀸의 살아 생전 당시, 우연한 기회를 통해 누군가가 그가 만든 옷을 보여줬죠. 쉽게 설명해 가슴을 억압하는 튜브톱 형태의 옷이었죠. 저는 그게 마냥 좋은 옷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몸, 특히 가슴을 고려하는 것은 제가 디자인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에요”라고 말했다. N°21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델 아쿠아는 자신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란제리 원피스의 영감을 슬립 차림으로 다 같이 요리하던 자신의 가족들에서 얻었다고도 했다. “어릴 때부터 겁 없고 당당한 여성 사이에서 자랐어요. 그런 분위기에 있다 보니 진정한 섹시미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탈리아의 여성권리 운동가이자 작가인 로렐라 자나르도는 “패션은 그 시대의 사회적 메시지와 분위기를 반영하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가슴이 큰 여성들은 부유함과 번영을 상징했어요. 굶주리고 가난했던 60년대에는 트위기처럼 마른 여성들이 주목받았죠. 한때 잡지와 신문은 획일화된 가치관을 규정짓고 제시한다며 수많은 비난을 받아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언론은 이미 일어났던 사회적 분위기를 재구성해서 담아내는 매개체일 뿐이죠.” 또 “최근 미국, 영국 등 주요 출판사를 중심으로 ‘페렌니얼스(Perennials)’란 새로운 타깃과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발빠른 움직임이 시작됐어요(페렌니얼은 50대 이상의 여성을 중심으로 기존 사회가 제시해 온 그 나이대의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와 자유를 찾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 누구는 영원한 젊음과 성형수술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항상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남길 원하죠. 사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에요”라며 저마다 각각 미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브라렛과 노브라에 대한 수요를 사회 현상과 연관 짓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영국 시인 사바나 브라운은 “브래지어를 안 입어도 된다는 선택권이 특별한 권리나 어떤 정치적 행위는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인기 유튜버 스텔라 레는 자신이 어떤 속옷도 입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편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말처럼 브라렛의 뜨거운 인기와 노브라에 대한 수요 증가는 사회 흐름보다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맞는 것인가? UCLA 줄리아 시사 교수는 이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 “설령 완벽주의자라 해도 거울 앞에 서면 누구나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단점에 가장 먼저 집중하게 된다. 물론 단점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감은 줄어들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걸까? 인간은 항상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품고 가야만 하는 존재다. 이런 초조함은 자연스럽게 우리 신체에 반영된다. 하지만 스스로 단점에 귀 기울이며 가꾸는 일은 남을 배려하는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브라톱 없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