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만 만날까.” 방금 전 평소와 다름없이 통화를 마친 그의 카톡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내게 그는 모든 게 힘들다고 했다.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잘 만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별. 처음엔 괜찮았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 내가 신기했고,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이별을 개그로 승화해 떠들고 다니기 바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 더 잘 사는 척 SNS에 사진도 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대체 왜 헤어져? 뭐가 힘든데?’ 아침에 눈떴을 때, 잠들기 전, 또 수시로 불쑥불쑥 화가 치밀었다. 심장에 돌덩이가 가득한 느낌. 답답함을 깨부수려 가슴을 때려봐도 돌덩이는 더욱 작게 쪼개져 빈틈마저 메워버리는 듯했다. 혼자 사는 집의 고요한 적막을 깨기 위해 음악이 필요했다. 우리 모두 좋은 노래로부터 행복감을 느끼지 않나! 지니 뮤직 애플리케이션에 한 곡 한 곡 담아두었던 ‘발랄음악’ 폴더를 랜덤으로 플레이했다.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주인공들이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듯 흐느적흐느적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막춤도 췄다. 하지만 기분이 나아지는 건 잠시뿐. 이내 어깨가 축 늘어졌다. ‘차라리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악을 듣자.’ 평소 좋아하던 냇 킹 콜과 에디트 피아프, 헨리 맨시니의 음악을 틀었다. 큰일이다. 기분이 더 처진다. 이러다간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 500m 암반수를 뚫을 것 같다. 차선책은 자연의 소리. 검색 창에 뜬 새소리, 파도 소리, 폭포 소리, 빗소리를 마구잡이로 담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자연 속으로 풍덩 빠지는 상상을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강 같은 평화가 찾아들었다. 호수처럼 잔잔해진 마음. ‘그래,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지 뭐.’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사운드 힐링을 경험한 것이다. 이에 탄력을 받아 명상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았다. 이름은 마음 챙김 명상 앱인 마보(마음보기의 줄임말). 먼저 한국내면검색연구소 유정은 대표의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호흡에 집중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채는 마음보기 7일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아, 내가 지금 이별 생각이 났구나.’ ‘아, 내가 지금 괴롭구나.’ 제3자처럼 머릿속 생각을 명료하게 바라보는 연습. 그리고 그것에 따라가지 않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까지. 매일 10~15분간의 명상을 진행했고 끝날 때마다 일기 쓰듯 후기도 적었다. ‘난 충분히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야’ ‘난 나를 너무 사랑해’ ‘내가 행복하기를’ ‘우리가 행복하기를…’ 같은 세션을 들은 이들이 적어둔 공개 메모를 보는 것도 위로가 됐다. 무료 체험이 끝난 1주일 뒤 1개월 이용권을 결제했고 사랑의 상처로 힘이 들 때, 마음이 너무 분주할 때 등 상황별·기분별 마음보기 훈련을 골라 했다. 아픈 마음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잠이었다. 안 그래도 심한 불면증이 뜬금포 이별로 더욱 악화된 것. 한두 시간씩 뒤척이다 잠드는 건 기본. 안대도, 귀마개도 소용이 없었고, 그와 재결합하는 꿈을 꾸는 등 머릿속은 잊으려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잠자면서도 그 생각만 했다. 문득 지인에게 추천받은 수면 유도 기기, 보스 노이즈-마스킹 슬립버드가 떠올랐고 상품소개서를 읽어봤다. ‘차 소리 등 수면에 방해되는 일상 소음의 주파수를 매치해 소음을 감추고 수면을 유도하는 소리를 재생해 사용자의 숙면을 돕습니다.’ 귀가 밝아 매일 밤 귀마개를 착용한 채 잠을 청하고 학창시절 공부할 때도 엠씨스퀘어 한 번 안 썼는데, 소리로 소리를 감춘다고? 밑져야 본전, 배송을 클릭했다. 귀 안쪽 굴곡에 꼭 맞는 이어버드를 착용하고 브라운 노이즈, 고도 등 일명 착한 소음이라 불리는 백색 소음을 작은 볼륨으로 켜둔 채 잠을 청했다. 결과는? 빨리 잠이 든 건 아니지만 확실히 조금 더 깊게 잔 느낌이 들고, 아침에 깨어나 귀에서 이어버드를 빼고서야 밖에서 공사 소리가 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기상 알람 소리로 지정해 둔 자연의 소리 덕분에 눈뜸과 동시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도 장점. 심지어 타닥타닥 장작 타는 캠프파이어 소리는 사무실에서 늘 신경 쓰이던 동료의 키보드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집중력을 높여주기까지! 신통방통했다. 퇴근 후 극한의 힐링을 맛보기 위해 찾아간 러쉬 스파. 소리로 입욕하는 사운드 배스 프로그램을 요청했고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를 적었다. 스트레스 지수 상중하 중 상을 체크한 내게 테라피스트가 이유를 물었고, 이별 고백 후 스파 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중 문득 이렇게 끝내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할 말은 하자 싶어 나를 놓친 걸 평생 후회할 거라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프길 바란다고 폭풍 카톡을 쏟아냈다. 스마트폰을 끄고 1시간 동안 이어 캔들과 소리굽쇠, 싱잉볼 등을 활용한 사운드 테라피와 페이셜, 두피 마사지가 이어졌다. 나만을 위한 1:1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신기하게도 귀가 더 잘 들리고 막혔던 코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굽쇠가 만드는 떨림(진동)이 부비동에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상처 줘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후회하며 살겠다는 답장이 도착했다. 후련했다. 스파를 나와서 평소처럼 방문한 요가 클래스. 마지막에 등을 대고 시체처럼 누워 호흡을 고르는 송장 자세 시간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아, 내가 눈물이 나는구나. 내가 치유되고 있구나!’ 감정의 폭발. 비로소 그를 용서하고 자신을 안아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잠들기 전, 언제 퍼부었냐는 듯 그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건강히 잘 지내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스스로를 그릇이 큰 대인배로 칭하며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한 달간의 사운드 힐링을 통해 얻은 가장 좋은 점은 외부 소리는 물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 이별의 상처뿐 아니라 출근길 지옥철에서 마주친 무례한 타인, 불쾌하기 짝이 없는 뉴스, 나만 빼고 죄다 행복해 보이는 SNS 피트 등 나를 우울하고 짜증 나게 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배웠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와 미래의 내 몸과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할 거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스스로 속삭인다. ‘그래, 참 잘 살았어. 잘 이겨내고 있고,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갈 거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익명을 요구한 에디터   소리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감각을 일깨워주는 명상 트리트먼트는 러쉬 스파 더 사운드 배쓰, 60분 12만원. 주의력 훈련, 수면을 위한 명상 등 일상에서 쉽게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는 명상 앱 마보. 파도 소리, 낙엽 소리 등 수면을 돕는 수딩 사운드를 제공하는 노이즈-마스킹 슬립버드, 32만9천원, B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