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질펀하게 취한 금요일 밤이었다. 성인의 술자리가 그렇듯 근황 토크로 시작한 수다는 섹스의 근황으로 변질돼 있었다. 요즘 만나는 ‘아는 동생’과 ‘틴더남’에 관한 ‘썰’을 풀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섹서사이즈’ 만 한 운동이 없는 것 같아.” ‘섹서사이즈(Sexercise)’란 섹스(Sex)와 운동(Exercise)의 합성어를 뜻한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를 서울 한복판에서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지만 당사자는 꽤 진지했다. 실제로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킴 캐트럴이 대표적인 ‘섹서사이저’로 꼽힌다며, 몸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깨트리지 않고 살을 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사실 섹스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기본적으로 섹스는 운동, 그것도 열과 성을 다하는 운동이니까 말이다. 캐나다 퀘벡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섹스를 통해 남성은 평균 101cal, 여성은 평균 69cal를 태우며(영국 왕립 에든버러 병원의 임상실험에서는 평균 200cal라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르가슴을 느끼면 옥시토닌이 분비돼 심장박동과 혈압을 상승시켜 평소보다 칼로리 소모가 2배쯤 증가한단다(재미있는 사실은 진짜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보다 느끼는 척하는 게 칼로리 소모가 더 높다는 거다). 인터넷만 대충 훑어봐도 유산소 운동을 한 후 섹스를 하면 각 기관들로 보다 많은 혈액을 보내 다이어트 효과를 높이고, 섹스 도중 분비되는 엔도르핀 호르몬이 식욕을 억제시키며 스트레스 또한 감소시켜 다이어트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등 섹스의 효능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카마수트라>에 나온 대표 체위별 칼로리 소모량을 정리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남자는 앉고 여자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후, 남자 어깨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하는 체위 ‘새의 우아한 날갯짓’은 복근운동에 탁월하며 대략 320~350cal가 소모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건 숫자이고 이론일 뿐이다. 누가 섹스를 하면서 “자, 오늘은 전신운동이 가능한 ‘활짝 핀 연꽃’ 체위를 해서 400cal를 태워볼까?” 따위의 계산을 하겠나? 무엇보다 주변에서 섹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이를 단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다. 그리고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확신한다. 사실 ‘섹스 다이어트의 놀라운 효과’는 섹스의 여러 신화 중 일부분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동안 섹스가 여러 면에서 과대평가돼 있다고 의심해 왔다. 현실에서의 섹스가 영화, 소설, 칼럼, 술자리 무용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가? 쾌락의 정도, 관계에서 섹스의 존재감이 너무 과장돼 있진 않나? ‘섹스리스’가 그토록 절망적인 단어인가? ‘속궁합’이라는 낡은 단어의 실체가 대체 뭔가?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내게 섹스는 몸이 아니라 98% 정신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지난 파트너들이여, “뚱뚱하거나 마른 건 별 문제가 안 돼”라거나 “크기는 정말 상관없어”라던 내 말은 모두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자의식 과잉을 불렀고, 그런 남자는 대개 나보다 자신에게 더 취해 있었음으로 최악의 상대에 가까웠다. 크기만 믿고 “날 평생 잊지 못하게 될 거야”라던지 의기양양하게 “어때? 좋았어?”라고 묻는 남자는 대체로 그 순간 잊힐 만큼 별로였다. 예상외로 남자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는 ‘환상적인 섹스’ ‘동물적인 몸의 대화’ 같은 걸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상대는 시시하게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다. 경험이 늘어갈수록 내가 믿게 된 건 몸은 그저 정신의 도구라는 거였다. 3년이 넘어가는 몇 번의 긴 연애 끝에 뜨거운 섹스 없이도 관계란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단순한 예지만 클리토리스보다 뇌 어딘가를 자극하는 게 훨씬 반응이 빨랐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연애와 섹스에서 ‘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하게 몸의 소리에 기반해 짝을 찾는 미국의 ‘페로몬 파티’는 또 어떤가. 여자들이 하룻밤 입고 잔 남자들의 티셔츠 냄새를 맡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하는 파티로, 커플 성사 확률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런 내가 몸을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된 건 2년여쯤 <라디오스타>에서 박수홍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그가 함께 출연한 김완선과의 궁합을 본다며 ‘오링 테스트’를 시도한 것이다. MC들과 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은 그걸 싱거운 개그쯤으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박수홍은 진지했다. “손을 잡아보면 이 사람이 나와 잘될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손 잡았을 때 따뜻하고 밥 먹을 때 소화 잘되면 내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남자친구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5년 넘게 이상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친구 A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같이 있을 때 뭘 자꾸 먹고 싶어지고 같이 먹으면 평소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남자. 그런 남자와는 예외 없이 섹스도 좋더라.” 평소 불면증을 앓는 친구 B는 영화 <연애의 목적>의 강혜정이 그랬듯 “같이 있으면 졸린 남자. 난 섹스 후에 정말 한숨도 못 자는데 가끔 숙면이 가능한 사람이 있어. 그럼 이 사람이다, 싶지”라고 털어놨다. 함께 있을 때 식욕이 오르고 잠이 오며 손발이 시리지 않다는 이유로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심장이 뛰거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아닌데?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인간 행동의 생물학적 근간을 연구한 심리학자 옌스 코르센과 크리스티아네 트라미츠는 “남녀 간의 관계는 감정과 사고뿐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 특히 적합한 면역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뇌신경 과학자인 조 디스펜자는 우리 몸 내면에 지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심장을 매일 수십만 번 뛰게 하고 세포마다 매초 수십만 개의 화학 반응을 조직하는 지성이 우리 몸속에 있다. 육체는 곧 우리의 잠재의식이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가 그 상황에 느낌이나 생각을 갖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몸은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우리 마인드의 5%가 의식이라면 나머지 95%는 잠재의식이다.” 실제 한 실험에서는 여자들이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면역체계를 지닌 남자의 체취를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철저하게 몸의 소리에 기반해 짝을 찾는 미국의 ‘페로몬 파티’는 또 어떤가. 여자들이 하룻밤 입고 잔 남자들의 티셔츠 냄새를 맡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하는 파티로, 체취를 통해 연결된 이들은 술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데 커플 성사 확률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내 경험을 털어놓자면 몸의 메시지가 맞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있었다. 그는 좋은 남자였다. 냉소적이면서도 다정했고 자기희화화가 가능한,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첫 데이트부터 완전히 반했지만 결정적으로 몸이 삐걱댔다. 섹스는 억지스러웠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있으면 제대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함께 밤을 보낼 때면 수면제가 필수였다. 순탄할 줄 알았던 관계에도 자연히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리 둘 다 아직 몸의 소리를 캐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관계는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였다. 섹스는 물론 위와 장이 불편한데 감정이라고 편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요지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메시지가 때로는 며칠을 고민한 이성적 결론보다 지성적이며 옳을 수 있다는 거다. 누군가와 잘 맞고 안 맞고는 내 감정보다 몸이 먼저 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가장 오랜 기간 연애했던 그와 함께했을 때 가장 건강하고 날씬했던 것 같다. 그게 그가 내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어려서 그런 건지, ‘섹서사이즈’가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