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루즈 컬렉션은 4대 컬렉션의 지리적 한계에서 벗어나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상상 속 풍경이 현실로 펼쳐지는, 럭셔리 패션 여정이다. 프라다는 세 번째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이며 목적지를 뉴욕으로 정했다. 패션 하우스들이 리조트 컬렉션을 위해 이국적인 풍경이나 역사적 장소를 물색할 때 “나는 내 공간에서 쇼를 선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한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스러움’을 강조하기에 미국 본사 7층은 컬렉션장으로 완벽한 장소가 돼주었다. 쇼가 열리기 직전, 공식 인스타그램에 쇼장 주소가 적힌 스탬프 이미지와 핑크색 기둥이 등장하는 디지털 영상이 업로드됐다. 컬렉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전 힌트인 셈. AMO에 의해 탈바꿈한 미국 본사는 집으로의 초대처럼 안락한 분위기가 흘렀다. 부드러운 캐멀 컬러의 카펫 위로 핑크색 커피 테이블과 기둥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으며, 핑크빛으로 물든 네온빛이 여름밤 네온사인처럼 쇼장을 들뜨게 만들었다. 해가 지는 허드슨 강을 뒤로하고 엘르 패닝, 데인 드한, 새디 싱크를 비롯해 얼마 전 결혼한 마크 제이콥스와 찰리 디프란시스코, 프라다 인바이트에 참여한 건축가 엘리자베스 딜러, 한국 대표로 참석한 송혜교 등 다방면 인사가 쇼장에서 웃고 떠들며 컬렉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뉴욕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자, 비로소 쇼가 시작됐다. 매 시즌 미우치아 프라다는 대립되는 키워드를 치밀하게 또는 대담하게 조합해 새로운 패션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상업성과 창의성, 여성성과 남성성, 장식적 화려함과 간결함, 보편적 아름다움과 생경한 면면 등 양면성을 고루 갖춘 미감으로 디자이너의 능력을 공고히 해왔다. 이번 시즌에도 상반된 두 단어가 조합된 컨셉트, ‘반항적인 단순함(Seditious Simplicity)’이 적힌 쇼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순수함(Naive), 현실(Real), 간결함(Simple) 등의 단어가 나열된 이번 컬렉션은 재킷과 스커트, 남성 셔츠 등 친숙한 아이템을 재해석하고 재조합해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오프닝 룩은 네이비 컬러의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로 직선적인 실루엣의 클래식 스타일. 여기에 목 위에 가볍게 두른 스트라이프 머플러와 주름진 양말, 하이톱 스니커즈의 경쾌한 액세서리 매치를 통해 젊음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대로 따라 입고 싶을 만큼 실용적이고 우아하며 감각적인 룩이었다. 그 뒤로 등장한 남성적인 셔츠는 페전트 스타일의 걸리시한 플라워 자수로 장식됐고, 체크 패턴과 스트라이프 패턴의 믹스매치는 절제된 실루엣으로 모던했으며, 오버사이즈 니트와 레이스 스커트는 스쿨 룩과 페미닌 룩의 조합으로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이뿐인가. 단정한 코트에 접목한 알록달록한 실크 스커트 룩, 빈티지 월페이퍼 프린트의 팬츠 수트, 뉴트로 열풍을 이어받은 나일론 점퍼 등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 ‘리네아 로사’를 동시대 버전으로 부활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카이브를 뒤져 2000년 봄/여름 컬렉션 때 선보였던 ‘볼링 백’을 20년 만에 소환해 런웨이에 내보내기도 했다. 과거 속 아이템의 회귀는 누군가에게 추억을 상기시키고,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신선한 패션으로 인식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화된 공식을 남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미의 기준을 독창적으로 제시하는 미우치아 프라다. 동시대 여성을 매혹시킬 만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쏟아낸 디자이너의 능력이 관객의 박수 속에 다시금 증명됐다. 더불어 그녀의 손끝에서 완성된 리조트 컬렉션은 쇼장을 밝히던 핑크빛 네온처럼 로맨틱하고 짜릿한 뉴욕의 밤을 선사하는 완벽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