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섬 속의 섬, 우도에서 머무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섬 속의 섬, 우도에서 ‘머무름’도 여행이란 걸 알게 됐다. ‘커플의소리’ 김모아 작가의 감성 깊은 제주 이야기 다섯 번째 ::제주, 겨울, 제주도, 커플의소리, 김모아, 허남훈, 밴라이프, 여행, travel, jeju, 엘르, elle, elle.co.kr | 제주,겨울,제주도,커플의소리,김모아

어딘가를 가야 하고, 무언가를 봐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여행 속에서 스스로를 가둔다. 한 달의 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행운 속에서도 갇힐 때가 있다. 어딘가를 가야 하고, 무언가를 봐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무엇과 만나야만 여행이 되는 걸까. 무엇을 발견해야만 삶이 되는 걸까. 생각의 우물을 파고 파면 그 질문에 닿는다. 무엇이어야 되는 걸까…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다면 집에 있어도 여행이 될 수 있다. 물론 낯선 공기와 공간에 놓인다면 그 머무름은, 다른 집과 다른 일상과 여행이 될 수 있겠지.그래서 움직였다. 제주라는 섬 속의 섬, 우도로.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한 섬인 우도로 가는 날은 바람이 무척 거셌다. 배가 뜰 수 있을까? 제주 지인들은 다시 그들 곁으로 돌아오라 말했다. 배가 안 뜨길 바랐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배는 떴다. 새우깡 맛에 익숙해진 갈매기떼들이 배를 호위했다. 10여 분의 울렁임 만에 우도에 닿았다. 하늘은 맑았다. 좁은 길을 따라 우도라는 섬 속의 섬, ‘스테이 소도’라는 공간으로 향했다. ***마트를 들려 컵라면과 제주 유산균 생막걸리 4병, 각종 과자와 2리터 생수를 샀다. 장바구니를 무겁게 하고 걸음마 운전으로 도착지에 다다랐다. 4년 전 겨울, 아이슬란드의 바람만큼이나 거친 바람을 헤치고. 주차를 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다. 하룻밤의 집인 소도에 들어섰다. 바람과 헤어졌다. 나와 허 감독은 안전했다. 머리는 산발이었다. 통창 밖으로 바람이 보였다. 주변에 만발한 유채꽃은 뽑히지 않는 게 대견할 정도였다. 바로 앞의 바다는 우리를 통째로 잡아먹을 것처럼 크게 입을 벌린, 다른 모양의 파도를 자꾸 만들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나 보다. 하지만 안전했다. 출출했다. 바로 옆 치킨집에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을 사 먹었다. 너무 고운 여사장님이 치킨을 튀겨 주셨다. “원래 이렇게 바람이 센가요?” “아니 바람이 세긴 한데 오늘은 너무 세네. 기다리는 동안 믹스 커피 한잔 드릴까요?”믹스커피로 당을 충천하고 머리를 휘날리며 다시 안전한 곳으로. 치킨과 막걸리로 허기를 충전했다. 그리고 여행이 시작됐다. 서성였다. 각기 다른 위치의 창문 너머의 돌담, 정원, 마을, 바다, 하늘을 보았다. 침대 발끝에 난 낮은 창문 너머의 마을은 한없이 평온했다. 그들의 삶에 불안과 두려움, 경계와 결핍 따위는 없는 것처럼. 집과 다른 구조라 동선이 달라지면 생각과 행동의 길도 달라진다. 구비되어 있는 LP 중 끌리는 판을 무작정 집었다. 플레이어에 올렸다. ‘Sunday Morning- Richie Beirach’그날은 금요일 오후였는데 바로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구비되어 있는 책들 중 끌리는 책을 무작정 집었다. 한 권을 읽고 또 다른 한 권을 읽고 나니 해가 많이 기울었다. 비스듬히 해가 들었고 소파 다리가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아련한 시간을 바라봤다. 해가 뜨는 하늘과 지는 하늘은 많이 닮았다. 그리고 모든 엄마의 청춘처럼 조금 서글프다. 금세 저녁이 되었다. 바다는 어둠이 되었다. 어둠 속에 등불을 켠 배들이 가로로 길게 정렬할 때쯤 허 감독이 커피콩을 갈았다. 노란 불빛 아래 콩을 갈고 커피를 내렸다. 텀블러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미리 준비했다. 샤워를 마치고 시화집 한 권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다 읽고는 또 다른 시화집 한 권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바람 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하지만 안전했다. 사각거리는 이불 속에 들어가 다 읽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도 파도는 우리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빛이 달라 표정이 다른 공간의 아침을 맞고 여행을 마쳤다. 10여 분의 걸음마 운전으로 제주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갈매기 호위대는 없었다. 배와 파도가 부딪히는 알알의 바다가 하루의 우도를 아쉬워했다. 그 하루는 바람, 파도, 유채꽃, 치킨, 일요일 아침, 책 5권, 긴 그림자, 커피 등으로 그린 잔상을 남겼다. 섬 속의 섬, 또 다시 섬 속의 섬인 곳의 하루. 채워야 한다는 욕심을 놓고 머무름 만으로 여행이 되었던 하루. 무엇을 만나고 해야 한다는 강박은 때때로 여행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머무름 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김모아 작가의 ‘제주에서 살아보기’는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