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관한 에디터의 진솔한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나는 왜 내 가슴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가.::가슴,에세이,#SaggyBoobsMatter,보디포지티브,엘르,elle.co.kr:: | 가슴,에세이,,SaggyBoobsMatter,보디포지티브,엘르,elle.co.kr

그렇다. 남들은 목욕탕에서 훌러덩 벗은 채 잘도 돌아다니는데 나는 그런 상황이 영 불편하다. 다른 여자들이 내 가슴을 보고 혹시 의아해하거나 놀랄까 봐서다. ‘저 여자는 뭐 저리 가슴이 납작해….’ ‘딱히 마른 체형도 아닌데 유독 가슴만 저리 작네….’ 어이없는 이유인 거 알지만 사실이다. 대중목욕탕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안 나고, 헬스장에서 운동한 뒤에도 웬만하면 집에 와서 샤워한다. 1년에 한 번 유방 X선 검사를 받을 때도 고역이 따로 없다. X선 촬영 패널 사이에 어떻게든 가슴을, 아니 ‘가슴 주변의 살’을 끼워넣기 위해 내 가슴 살을 조물락거려야 하는 방사선사의 처지도 참…. 시선을 회피하며 늘 속으로 이렇게 곱씹곤 한다. ‘제가 볼륨 있는 여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서로 민망할 일은 없을 텐데 미안해요.’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며 ‘역시 납작한 가슴이 옷발은 더 잘 받지’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면서도 정작 ‘나’의 가슴을 향한 감정은 이토록 복잡미묘하다. 이 와중에 발견한 <엘르> 호주 3월호에 실린 저널리스트 판도라 사이케스의 에세이. 볼륨 있는 서양 여성이라면 나처럼 이런 민망함이나 불필요한 미안함 따위는 느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 역시 자신의 가슴에 복잡한 감정을 느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모든 여성에게 ‘가슴’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내 가슴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녀의 글을 요약, 소개한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마 이런 외침이 들려올 것이다. “슴가? 이게 내 ‘가슴’이다, 이게 내 ‘유두’다, 왜 말을 못하냐고!”Whatever Their Size, Shape or Nickname10대 때는 체구에 비해 무겁게 느껴지는 E컵의 가슴을 증오했다. 수년간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사이즈의 브라를 착용했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다닌 끝에, 스무 살이 되던 해 결국 가슴축소술을 받았다. 수술은 가슴 크기뿐 아니라 가슴에 대한 감정까지 바꿔놓았다. 부끄러움과 분노, 반감이 줄어들었고,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면서부터는 생각지도 못했던 가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속이 비어 처진 가방(Funbags), 로켓포(Bazookas), 문고리(Knockers), 경적(Honkers), 멜론(Melons), 주전자(Jugs), 모닝빵(Baps) 등 가슴을 뜻하는 속어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하나같이 가슴의 기능이나 모양, 사이즈를 희화화한 것이라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건 없다. 패션계에서 종종 여성의 가슴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잘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봉긋 솟아 아찔한 클리비지를 형성하는 이상적인 모양새의 가슴! 하지만 정작 ‘내’ 가슴은 처지고, 양옆으로 벌어지고, 모양도 제각각. 그러니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이미지만 들이대며 열등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지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슬럼플라워(The Slumflower)’라는 이름의 블로거이자 <What a Time to Be Alone>의 저자 치데라 에저루(Chidera Eggerue)는 2017년 ‘#SaggyBoob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가슴을 부끄럽게 여기는 여성들의 집단의식을 꼬집었다. ‘더 대담하고 아찔한 옷 고르기’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걸 기억하기’ ‘최우선 순위는 오로지 나 자신’ 등 그녀의 인스타그램(@theslumflower)에는 가슴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에 대항하고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촌철살인으로 가득하다. 이 해시태그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전 세계 여성들이 자신의 처진 ‘평범한’ 가슴을 스스로 찍어 올린 사진들이 무려 1만2000여 장에 달할 정도다.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사회문화적 화두와 함께 치데라에게 주목이 쏠린 것도 당연한 결과.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싫증이 났어요. 없는 이유조차 만들어 비난하는 꼴이었죠. 이미 19세에 브라를 착용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어요. 더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내자고 생각했죠.” 지난 2014년,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였던 ‘#FreeTheNipple’ 캠페인(여자의 가슴, 특히 유두 노출 사진을 삭제하는 인스타그램의 검열 정책에 반대하며 일어난 운동)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치데라의 해시태그 캠페인은 그 대상이 모델 몸매의 백인 여성들에서 살집 있는 흑인 여성들로까지 확장됐다는 면에서 좀 더 포괄적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가슴을 보는 미적 기준과 편견을 깨뜨리는 또 한 명의 여성을 소개하자면, 28세 세라믹 아티스트 엠마 로(Emma Low)가 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potyertitsawayluv)에는 가슴 모양의 화분과 컵 사진으로 가득하다. 별생각 없이 그녀의 남자친구를 위해 만든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국적, 나이, 피부색, 가슴 형태를 불문하고 수많은 여성이, 심지어 유방절제술을 받은 여성들까지 엠마에게 자신의 토플리스 사진을 보내며 컵이나 화분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해 온다고. 나 역시 70달러를 보내고 한 달가량 기다린 끝에 나만의 가슴 화분을 받아볼 수 있었다. 어땠냐고?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듯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한 가슴으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 내 가슴 주변에 흩어진 4개의 점까지 정확히 복제한 가슴 화분을 보고 있자니 그간 가슴으로 고민하고 속앓이를 했던 시간들이 가치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슴은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과 무관하게 그냥 그 자체로 완벽하게 정상적인 내 몸의 일부다. 오늘도 난 수많은 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을 바라보며 내 가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되뇐다. 지난 2016년 브래지어를 벗어 던진 수백 명의 여성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뉴욕 거리를 활보한 <그로스 아나토미 Gross Anatomy: My Curious Relationship with the Female Body>의 저자 마라 알트만(Mara Altman)의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가슴이란 학창 시절엔 남자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내보이고 싶은 것. 의사들 앞에서는 단지 진단의 대상이자 수치스러운 내 몸의 일부. 자식들에겐 식량의 원천. 패션 업계에선 남들의 시선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액세서리. 속옷을 벗어 던지고 토플리스 차림으로 나서니 비로소 내 몸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간 답답하게 가려져 있던 피부에 와닿는 바람결과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800만 명이 사는 도시에 내 몸을 노출시켰을 때, 가슴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내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