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 고양이들의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40년이 가까운 시간, 수많은 이야기가 누적된 둔촌동 주공 아파트. 재건축이 결정된 이후 주민들은 떠났지만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았던 고양이들과 그 고양이들을 지켜본 사람들이 있다.::고양이,집사,재건축,둔촌냥이,고양이들의아파트,엘르,elle.co.kr:: | 고양이,집사,재건축,둔촌냥이,고양이들의아파트

사람이 떠난 아파트는 급격히 황폐해져 간다. 다가오는 철거를 앞두고 단지 내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의 모습.아파트는 우리 세대의 고향이다. 놀이터도, 친구들도, 인사를 나누던 상가 어른들도, 우리 가족의 첫 차가 세워진 주차장도. 모두 그곳에 있다. 올해 6월 완전 철거가 예정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단일 규모로는 국내 사상 최대의 재건축 단지로 불린다. 1980년 지어진 5층 높이의 아파트만큼 훌쩍 자란 나무들이 우거졌던 이곳은 최고 35층, 85개 동, 총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거듭나 올해 가을부터 분양을 앞둔 상태다. 책으로, 동화로, 다큐멘터리로 집과 함께 기록으로 남은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이 완전히 떠난 뒤, 다른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주민과 함께 살았던 200여 마리 고양이들의 이사를 돕는 ‘둔촌냥이(dunchoncat)’도 그중 하나다. 구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활동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생활하며, 낯선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떠나며 급속도로 황폐해진 건물에서 덩달아 말라가는 고양이들을 성공적으로 이사시키는 것이 ‘둔촌냥이’의 목표. 입양, 원거리 이주, 근거리 이주 세 가지 방식으로 이사를 시도한 결과 2017년부터 지금까지 20여 마리가 ‘집냥이’가 됐다. 포획한 고양이들을 특별히 제작한 계류장에 넣어 강동구 내의 다른 동네에 차츰 적응하게 하는 원거리 이주, 급식소를 조금씩 옮기면서 이사를 유도하는 근거리 이주는 그보다 조심스럽다. 기껏 새 지역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고양이가 방사 후 아파트로 돌아가기도 하고, 이주 방식에 따른 지역 캣맘들과의 갈등, 주민들의 민원도 걸림돌이다. 다행히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바로 서울시. 2018년 박원순 시장 캠프에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의 생태적 이주에 대한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9월에는 국회에서 문제를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토론회가 열린 것이 계기가 되어 올해 3월, 서울시는 정비산업추진단지의 경우 철거 전에 야생동물 현황을 실태 조사하고 승인 절차 단계에서 시에 통보하는 ‘동물과 함께하는 도시’를 선포했다.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재건축을 앞둔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지금, 이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선언일 수밖에 없다. 마침 사진가 표기식은 정재은 감독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촬영으로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들을 만났다. 10회 차 정도의 꾸준하고 부지런한 발걸음 덕에 우리는 시대 최초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함께 살았던 고양이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게 됐다. 거주민만이 가질 수 있는 애정 어린 눈길과 만듦새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시리즈를 펴낸 이인규는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가정방문> 맺음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재건축으로 이곳에 더 머무르지 못하게 되는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곳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 모두 다시 잘 적응할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라고. 이 다정한 안부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들의 안녕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