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에 35, 2000에 50, 3000에 45….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 30대 초반의 직장인이 되기까지, 내가 사는 공간의 가격은 크기와 숫자만 조금씩 바뀔 뿐이었다. 아무도 내게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내 명의의 집 한 채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뉴스에 따르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려면 15년 동안 먹지도 쓰지도 않고 살아야 했으므로 일찌감치 꿈을 접었다. ‘금리가 물가 상승률도 못 따라간다면  쓰는 게 남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문자 그대로 버는 족족 다 쓰기를 9년쯤 했을까. 현실을 직시했다. 나는 아마도 별일 없이 평균수명까지 살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돈,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아주 끔찍한) 말이다! 돈에 얽매이지 않는 게 내 자랑이었는데, 그 결과 나는 일도 쉴 수 없고 마음 쓰이는 집안일에 떡하니 돈을 내놓지도 못하며, 건사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아프기라도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유스러운 사람이 돼 있었다. 월급 몇 백과 카드값 몇 백, 보증금 몇 천과 마이너스 통장 한도 몇 천의 단위에서 오가던 나의 숫자 관념은 마침 같은 해에 큰 전환을 겪었다. 바로 낡은 소형 아파트 전세를 발견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사건이다. ‘억’ 이라니! 유학 비용이나 결혼 자금같이 큰돈을 만져본 경험도, 전설의 연봉 1억과도 관계없이 고만고만한 돈만 쓰던 내게 이건 코페르니쿠스급 전환이었다. 대출 과정은 내게 사회인으로서의 자신감까지 선사했다. 비록 경제관념은 엉망일지언정 꾸준히 일한 덕에 큰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신용이 쌓였고, 제도권의 혜택을 입고 상환할 능력을 입증받았다는 것. 그래서 아파트에 전세로 살 수 있다면 언젠가는 3억, 4억짜리 아파트가 내 명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새로운 포부와 목표가 생기고 1년이 흐른 지금, 내 소비 습관은 정말로 꽤 많이 바뀌었다. 지금 아쉬운 건 딱 하나. 누군가 내게 영원히 ‘욜로’로 살 수는 없다는 것, 결혼 계획이 없어도 결혼 자금 그 이상의 목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혼자서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구구절절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여성 미디어 <핀치>에 ‘서바이벌 생활경제’를 연재 중인 신한슬 기자 역시 재테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케이스다. “‘내 명의로 혼자 집과 차를 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면 결혼 안 할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친구가 한 적 있어요.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내포된 말이었죠.” 슬프지만 현실적인 판단이다. 똑같이 일해도 여성 평균임금은 남성보다 36.7%가 적은데, 여자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위치와 시설을 갖춘 방만 구하려 해도 많은 돈이 필요하니까.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지킬 수 있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재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신용카드 사용법만 봐도 양극화돼 있어요. 신용카드의 노예거나 신용카드를 아예 쓰지 않죠. 저도 성인이 된 후 오로지 ‘현금빵’으로 살았어요. 하지만 신용카드는 일정 금액 이용 시 통신비와 공과금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고, 꾸준히 사용하면 신용 등급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 과연 그게 최선일까요?” 그가 말하는 재테크는 지극히 기본에 충실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테크의 목적을 정하는 일이다. 목적 없이 막연하게 시작한 적금은 만기를 맞이하는 순간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차나 멋진 가구 등 비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부터 해외여행, 내 집 마련, 노후 대비까지. 꿈이 커도 괜찮다. “월급 통장 하나로 20대를 보냈는데, 재테크 좀 한다는 사람들의 기본은 결국 ‘통장 쪼개기’더군요. 저는 월 소비용 통장, 경조사비와 휴가비 등을 넣어두는 연간 소비용 통장, 비상금 통장으로 통장을 쪼개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하는 방법을 쓰고 있어요. 정말 기본인데, 이조차 하지 않는 이가 많아요.” 돈을 어느 정도 모으면 이제 돈으로 돈을 벌고 싶어지는 법. ELS, P2P 등 ‘적금’보다 금리는 괜찮아 보이지만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투자 상품은 좀 더 알아보는 편이 좋다. “은행 직원의 한마디에 솔깃해 투자를 결정하지 마세요. 재테크 커뮤니티를 ‘눈팅’하면서 남들의 성공과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으세요. 네이버 카페 ‘거북이마을’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카페’ ‘부자언니 유수진의 부자 재테크’ 등을 추천해요. 그러나 원금이 보장되는 금융 상품 중 적금만큼 좋은 건 별로 없다는 걸 항상 기억하세요.” 그의 당부다.  한편 <1인 가구 돈 관리>의 저자 공아연은 1인 가구에게 집을 욕심 낼 것을 거듭 강조한다. “‘집다운 집’을 마련하기 위한 1인 가구의 전략은 달라야 합니다. 분양 시장에서 1인 가구는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혼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가,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혼자 부담하기에 금액이 너무 크거든요.” 그렇기에 사회 초년생이라면 행복주택과 공공임대, 국민임대 같은 공공 주거 프로그램에 일찌감치 도전하는 것이 좋다. 월세와 보증금이 저렴해 저축 속도를 낼 수 있는 데다가, LH공사가 계약 주체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집주인을 상대하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 영구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재계약을 통해 최대 8~10년 정도까지 살 수 있으니 내 집 마련의 준비 단계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공고는 ‘마이홈(www.myhome.go.kr)’을 통해 올라오며, 내가 대상자인지 확인할 수도 있다. 곧바로 자가 진단을 해보니 나는 신당역 근방 ‘뉴스테이’라는 718 세대의 임대주택에 신청이 가능했다. 아쉽게도 지난해 10월에 신청이 종료됐지만, 예상치 못한 가능성에 마음이 들떴다. 반드시 혼자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비혼 동지들과 함께 집을 구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보는 것도 좋다. “운용 자금이 몇 배로 커져 집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정서적 안정감도 생깁니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의 경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줄어들겠죠.” 이토록 중요한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 공부는 필수다. 부동산은 환불이 불가능한, 아주 비싼 물건이니까! “네이버 부동산보다는 ‘호갱노노’라는 앱을 추천해요. 원하는 조건을 필터로 설정해 물건을 추려내고, 거주자들의 솔직한 후기도 볼 수 있는 데다가, 실거래 매물이 많거든요. 관심 가는 물건이 생겼다면 해당 동네의 ‘맘카페’에 가입하는 것도 권합니다. 저도 관심 있는 단지에 저렴한 저층 매물이 나와 계약하기 직전, 맘카페를 통해 같은 층에 사는 분의 경험담을 듣고 매매를 포기한 적 있어요. 심각한 하자가 있더군요. 하마터면 문제가 있는 집을 빚까지 내며 살 뻔한 셈이죠.” 공아연 작가의 등골 서늘한 조언이다. 1인 가구라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부동산을 고르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부동산은 그 어떤 ‘물건’보다 조건에 따른 가격이 철저히 반영된다. 비싼 집은 다 이유가 있다는 말. 그러나 ‘유자녀 기혼 가정’이 선호할 조건이 가격에 반영되기에 오히려 이런 조건에서 벗어난 매물을 찾는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매물을 찾을 수 있다고 공아연 작가는 귀띔한다. “평수가 작고 주차 시설이 부족하거나 놀이터를 비롯한 보육 및 교육 시설이 떨어져 있는 곳, 근방에 유흥가가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되팔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실거주 목적이라면 관계없지요.” 그뿐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은퇴 없이 꾸준한 수입원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대다수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은 그 자체로 가장 현실적인 노후 대책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을 자동 납부하는 직장인의 경우 노후에 대해 더 방심하기 쉬워요.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미 여러 문제를 지적받고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연금보험, IRP(개인형 퇴직연금) 등 간접투자 상품은 세제 혜택 외의 실질적 혜택은 미미한 상황이죠. 내 집을 담보로 연금을 지급받는 주택연금이 훨씬 안정적으로 노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상에, 노후 대책이라니! 그러나 어쩌면 1인 가구에게 가장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나이 든 이후의 삶이다. 평균 퇴직 연령이 49.1세로 집계되고, OECD 국가 중 65세 이상 여성 노인 빈곤율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한국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삶의 방향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나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같이 살 수도 있고(엄마아빠가 날 받아준다면), 결혼을 원하는 새 남자를 만날 수도 있으며, 역시나 서울에서 1인 가구의 삶을 영위 중인 여동생 혹은 맘 맞는 친구와 신도시 어딘가에서 살 수도 있다. 다만 비혼의 삶이 크게 거론되지 않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지금의 1인 가구 여성들 역시 자신의 상황을 경제적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유예’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1인 가구를 소비 시장의 신대륙 취급하는 미디어의 달콤한 말에 속아 돈 관리에 지나치게 무심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많은 여성이 그렇게 살았거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팝의 여신 셰어의 한 인터뷰가 떠올라요. 어머니가 부자와 결혼해 정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기에 ‘엄마, 내가 부자야’라고 답했다더군요. 셰어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부자가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가 버는 한도 내에서 미래를 대비하고 결정할 힘은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한슬 기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