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각미술관 설치 전경.
물성에 반응하다 WO103, 120cm×160cm, 2018
물성에 반응하다 WA105, 145cm×193cm, 2018
내가 아는 가장 탁월한 심미안을 가진 남자를 꼽자면 <엘르>의 포토 디렉터 우창원이 첫 줄에 오를 것이다. 남다른 취향으로 정돈된 공간에서 홀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그 앞에 어떤 물건을 던져두든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구도를 찾아내는 사진가. 때론 그 모습이 절대미를 좇는 예술가거나 진리를 찾는 구도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알면서도 궁금했던 그가 ‘작가’로서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내 그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확인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썼다는 도록의 글을 빌어 이번 전시를 설명하면 ‘물질이 지닌 물성과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지는 의식의 세계를 시각 이미지로 구현한 작업’. 실제로 작업실에서 마주한 대형 프린트 속의 작품들은 언뜻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용암처럼 끈적한 무언가가 장대하게 흘러내리고 쏟아지는 듯한 이미지, 우주의 풍경 혹은 외계의 물질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형상들…. 그것이 잡지 촬영에서 흔히 접하는 크림이나 립스틱 같은 화장품의 제형이란 걸 보통의 관람자가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실제와 관념 사이, 그가 지각하고 경험한 물성을 그만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변화시킨 것이다. “화장 크림이라 하면 다들 부드럽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모니터로 크게 보니까 혐오스럽기도 하고 숨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기존의 문화나 역사에 근거해 어떤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이 규정되잖아요. 그걸 바꾸거나 다르게 틀어서 던져둔 거죠.” 헬멧이나 접시 같은 익숙한 사물의 단면, 촬영 중에 에러가 나서 뜬 붉은 화면도 다른 시각에서는 또 다르게 보였다.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작업이 그에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 궁금했다. “물성에 반응한다는 게 결국 살면서 자신에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인생이란 게 결국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는 거잖아요. 그냥 돈 벌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예전에는 사진을 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됐어요. 조물락 조물락 혼자 깊게 파고드는 작업들이 있었거든요. 마치 도를 닦는다고 할까요? 그런데 요즘은 광고 시장이나 매체 환경이 바뀌면서 점점 그런 걸 느끼기 어려워요. 자연스럽게 미술 쪽에 관심이 가던 차에, 이런 기회를 빌어 마음속에 있던 걸 시도하게 됐어요.” 나이가 들면서 사진이란 결국 내 생각, 내 태도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는 그에게 카메라는 이미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일단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풀어서 던져 봤는데, 어떻게 작용할지 전혀 감이 없어요.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는 자체가 낯설고 궁금하기도 해요. 다만 이게 진짜가 되면 좋겠어요. 이 안에서 내가 찾는 게 나오길 기대해요.” 전시는 3월 16일부터 5월 28일까지 천안에 있는 리각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