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익숙한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주방이 사방에서 반짝이는 곳에서, 평생을 들락날락했던 주방에 대한 지식과 상념이 송두리째 다시 쓰였다. 팬케이크를 뒤집듯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곳은 2월 19일부터 사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KBIS(The Kitchen & Bath Industry Show) 2019’.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주방·욕실 설비 전시회로, 매일 아침 하루를 여는 공간에 대한 트렌드와 비전을 볼 수 있다. 이곳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가장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장소, 특히 ‘주방’이란 단어 안에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낯선 풍경의 향연이 펼쳐질 줄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는 시트콤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내로라하는 가전, 인테리어 브랜드들이 자사의 신제품과 최신 기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주방을 통째로 옮겨놓았다. 배우와 카메라만 있으면 <모던 패밀리> <위기의 주부들>의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이곳에서 첫인상이 가장 특별한 브랜드를 꼽으라면 삼성전자일 것이다. 약 315평 규모의 부스 한복판에 붉은 잎의 단풍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아래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미술 작품을 대하듯 삼성전자의 새로운 가전제품을 감상했다. 널찍한 부스 한쪽에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장면도 펼쳐졌다. 와이드 스크린을 배경으로 누군가 일인극을 하고 있었다. 영상 속 상황에 맞춰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냉장고 ‘패밀리허브’의 기능을 시연하는 중이었다. 기술과 스토리텔링, 유머가 어우러진 참신한 무대였다. 자연과 테크놀로지. 삼성전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두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도 주방이라는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본격적인 부스 탐방에 나서기 전,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이질적인 장르의 조합일수록 융합의 짜릿함은 큰 법이니까.주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삼성전자의 전시 공간.부스의 정중앙에 설치된 단풍나무는 올해의 KBIS에서 가장 인상적인 정경이다.브라운 계열의 감성적인 색상으로 메탈 소재의 차가움을 덜어낸 ‘투스칸 스테인리스’ 주방 가전 패키지.투스칸 스테인리스, 자연이 주는 위안생전의 칼 라거펠트가 패션쇼를 위해 파리 그랑 팔레에 수백 톤의 낙엽을 뿌리고 참나무를 심은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단풍나무는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가 몰아친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가장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금속 재료와 석재로 만든 제품으로 가득한 전시장 곳곳을 누비다 지치면 나무 아래로 이끌리듯 돌아와 소파에 몸을 맡겼다. 잠시 쉴 수 있는 시설들이 여럿 있었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그때마다 바로 앞에 전시된 냉장고, 오븐 같은 빌트인 가전제품이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의 존재와 조화를 이뤘다. 삼성전자가 새롭게 선보인 ‘투스칸 스테인리스(Tuscan Stainless)’ 주방 가전 패키지는 메탈 소재 특유의 무겁거나 차가운 인상이 감돌지 않았다. 가을낯을 떠올리게 하는 구릿빛이 실루엣을 따라 은은하게 빛났다. 풍요로운 자연과 흙이 지닌 감성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색상으로, 표면은 반무광으로 마감해 차가운 느낌을 힘껏 덜어냈다. “주방의 속성이 바뀌고 있어요. 전에는 실용성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거실에서 하던 일들이 주방으로 이어지는 중이에요. 스마트 가전으로 뭔가 보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죠. 그래서 주방에서도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브라운 계열의 감성적인 색상을 개발했어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팀 부민혁 상무의 설명이다. ‘밥심’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삶의 동력을 채우는 곳이자 식구들이 얼굴을 맞대고 앉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며, #요리스타그램의 배경인 주방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 있는 시간의 60%를 주방에서 보낸다고 한다. 잠재적 구매력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도 투스칸 스테인리스 탄생의 단초가 됐다. 정서적 안정을 선호하고 자연친화적 삶을 중시하면서 가전의 색상이 화이트, 그레이, 블랙 계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의 감성을 담게 된 것. 그 의도가 적중한다면 투스칸 스테인리스의 스펙에 컬러 테라피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날 함께 선보인 드럼세탁기 신제품은 기존 세탁기에서 볼 수 없던 샴페인 컬러로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이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넷플릭스 시리즈 <돈 버는 리모델링 Stay Here>의 진행자 제네비에브 고더는 말했다. “많은 사람이 집 안을 색깔로 채우기를 원하고 있어요. 올해는 그 흐름이 주방으로 이어지면서 일상에 더 많은 재미를 줄 거예요.”가구와 일체형으로 설계된 프리미엄 빌트인 냉장고.가족과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꾸민 데이코의 ‘팜 투 테이블’.데이코의 ‘더 스피크이지 & 시크릿 룸’은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바를 닮았다.스마트 가전과 주방 인테리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셰프컬렉션 빌트인’ 시리즈.셰프컬렉션, 아름다운 질서가전과 가구를 하나의 형태로 끌어안은 빌트인 가전. 전 세계 생활 가전 시장에서 그 존재감은 도드라진다. 지난 몇 년간 또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글로벌 규모는 약 450달러(약 51조 원). 빌트인 가전의 원류인 유럽과 단일 국가로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상대적으로 빌트인 가전에 관심이 적었던 국내 시장도 긍정적 흐름을 타고 보폭을 넓히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체감하기 어려웠던 빌트인 가전의 위상을 KBIS에서 여러 번 목격했다. 삼성전자는 ‘셰프컬렉션 빌트인’ 시리즈를 선보였다. 셰프컬렉션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셰프들의 실전 노하우와 의견을 체계적으로 반영해 만든 프리미엄 빌트인이다. 이날 고화력 버너와 대용량 오븐으로 업그레이드된 36인치 프로레인지 신제품을 비롯해 냉장고, 전기레인지 인덕션, 전기오븐, 식기세척기 등으로 구성된 라인업이 공개됐다. 크기가 맞는 액자를 골라 그림을 걸어둔 것처럼 각 가전은 주방 인테리어의 품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튀는 부분 없이 정제되고 간결한 모습에서 견고함마저 느껴졌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동선과 기능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재단해 완성한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제품의 존재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스마트 기능이 장착돼 있어 ‘화려하고 복잡한 걸작’도 무난히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삼성전자는 미국 빌트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2016년 인수한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Dacor)와 함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프리미엄 가전 패키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부민혁 상무는 “셰프컬렉션과 데이코는 비슷하면서도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요. 셰프컬렉션이 말 그대로 셰프의 가치를 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데이코는 사용자가 가장 빛나고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공간을 세팅해요. 무대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죠.” 85평 규모의 데이코 부스는 최근 트렌드인 ‘엔터테인먼트와 사교 활동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주방’을 주제로 세 가지 컨셉트의 공간을 전시했다. ‘가족’과 ‘정겨운 브런치’를 주제로 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 격식 있는 디너 파티를 표현한 ‘구르망(Gourmand)’ , 고급스러운 바를 닮은 ‘더 스피크이지 & 시크릿 룸(The Speakeasy & Secret Room)’. 풍기는 분위기와 연출된 상황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의 선구자인 로버트 몬다비가 세상에 남긴 정겹고 따뜻한 말을 되새기게 했다. “사랑하는 이들, 친구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와인을 즐겨라. 이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중 하나다.”AI와 IoT 기술을 기반으로 가족과 주방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패밀리허브’ 냉장고.영상 속 상황에 맞춰 패밀리허브의 기능을 시연하는 무대가 마련됐다.패밀리허브, 주방의 잠재력커넥티드 리빙 존(Connected Living Zone)에는 유독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곳은 삼성전자의 AI 플랫폼 ‘뉴 빅스비’를 통해 한층 강화된 홈IoT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방 가전 시장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집약된 곳이라는 점에서 방문자들의 기대감이 높았다. 커넥티드 리빙 존이라는 이름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직접 경험한 것은 차원이 달랐다. 전시장은 거실과 주방, 아이 방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TV와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출시를 앞둔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스피커 ‘갤럭시홈’을 연결해 상호 조작하는 시연을 선보였다. 이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펼쳐졌고, 연결과 연쇄의 중심에는 패밀리허브 냉장고가 있었다. 앞서 소개했듯이 업계 최초로 AI와 IoT 기술이 접목된 냉장고다.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4년 연속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밀리허브는 집 안의 여러 가전을 제어하며 주방을 모든 공간과 연결했다. 예를 들어 도어벨이 울리면 냉장고에 탑재된 대형 터치스크린으로 현관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에어컨을 켜거나 로봇 청소기를 작동할 수도 있고, 거실 TV에서 보던 콘텐츠를 냉장고에서 이어볼 수도 있다. 반대로 냉장고에 보관 중인 식품을 거실에서 TV로 확인할 수도 있다. 모든 창조적 기능을 하나로 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하루에 50번 정도 냉장고를 터치한다고 하니, 주방 경험을 확장하고 냉장고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부여한 것은 일리가 있다. 지능형 냉장고는 콘텐츠 큐레이션 매체가 될 잠재력도 갖고 있다. 패밀리허브에 탑재한 뉴 빅스비는 사용자의 취향과 사용 방법을 학습해 맞춤형 대응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홈IoT 사업 담당 구성기 상무는 “정확하게 사용자의 취향을 저격하고, 사용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예고했다. 지금은 식구들의 목소리를 인식해 개별 일정을 알려주는 정도지만, 식습관과 건강 상태를 파악해 냉장고에 보관 중인 재료로 적합한 레시피를 추천해 주거나 각각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콘텐츠와 광고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출근 전, 아침을 간단히 먹으면서 냉장고의 스크린을 통해 자기 취향에 맞는 <엘르>의 스타일링 팁을 수신하는 일상도 상상할 수 있다. 먼 미래의 일로 여겼던 기술들이 툭툭 구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전에 국어사전에 명시된 ‘주방’이란 단어의 뜻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음식을 만들거나 차리는 방’이라니.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이보다 훨씬 많고 멋진데.곧 만나게 될 가전의 미래셰프가든 소형 채소를 직접 재배할 수 있는 냉장고다. 손만 대면 식물을 시들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습도, 온도, 조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미세 수분 형태의 양분까지 제공한다. 단, 수확 시기 알림이 뜨면 잊지 말고 제때 수확해서 먹을 것.삼성봇 클린 & 에어 공간 인지 센서를 장착한 삼성봇 클린은 집 안을 구석구석 누비며 놓치는 곳 없이 청소한다. 공기 오염을 감지한 뒤 직접 이동해 정화하는 삼성봇 에어와 데이터를 공유해 오염도가 높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 건강하고 깨끗한 삶을 만들어줄 완벽한 듀오. 삼성봇 셰프 양념통을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주방 보조 로봇. 두께를 조절하며 식재료를 자르는 솜씨는 웬만한 요리 초보보다 능숙하다. 음성 제어가 가능하며, 도구를 바꿔 사용할 수 있다. 청소 도구를 쥐여주면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