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디자인하는 여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자유롭고 강인하고 명랑한 여성의 모습을 창조해 온 여성 디자이너들이 입 모아 한 이야기. 오직 자신을 위해 입으라!::여성,아카이브,여성디자이너,디자이너스토리,엘르,elle.co.kr:: | 여성,아카이브,여성디자이너,디자이너스토리,엘르

Miuccia Prada, 1998 격식이 없고 자유롭다. 대담하고 비판적인데 언제나 적절한 유머가 섞인다. 정치학도 출신으로 여권 운동에 참여했던 미우치아 프라다가 창조하는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세련된 미니멀리즘에 언제나 반항적인 취향을 담는다. 밀리터리 요소를 즐겨 사용하고 팝아트적 그림을 그려넣는가 하면, 하이힐에 두꺼운 양말을 매치하고 실크 드레스에 털모자를 매치한다. 미의 기준을 마구 뒤흔들며 동시대 여성에게 전하는 그녀의 메시지! 그녀의 옷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이 프라다를 입는다는 것을.Maria Grazia Chiuri, 2017 디올의 7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아티스틱 디렉터가 된 그녀는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을 적은 티셔츠로 자신의 신념을 직설했다. 그것은 디올의 새로운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뉴 룩’을 빼입은 숙녀들이 아닌, 이 시대를 사는 활동가들을 위한 패션. 펜싱에서 영감을 받은 첫 쇼(2017 S/S)에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테일러드 작업복과 견고한 데님 소재의 강인한 룩(2017 F/W), 68혁명(2018 F/W), 그리고 로데오 경기(2019 크루즈 컬렉션)를 거쳐 50년대 테디 걸스(2019 F/W)로 이어졌다. 수많은 컬렉션을 통해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우아한 동시에 강인한, 두려움 없이 당당한 여성!Gabrielle Chanel, 1960 ‘단순함’이 우아함의 핵심이라고 믿었던 가브리엘 샤넬은 내내 고정관념과 사투했다. 남성용 운동복에 쓰이던 저지를 사용했고, 선원의 스트라이프 패턴과 에스파드리유를 디자인에 접목했다. 플래퍼 드레스, 배기 팬츠, 카디건 수트, 그리고 리틀 블랙 드레스까지. 그녀의 옷은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순종과 정절을 강요받던 이들에게 자유와 명랑한 자신감을 선사한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창조한 불꽃은 칼 라거펠트의 손을 거쳐 버지니 비아르에게 전달됐다. 새 여정을 떠나는 불꽃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던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Diane Von Furstenberg, 1987 독일 왕자와의 결혼으로 공주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다이앤이 원하는 삶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저지 소재에 매료됐고, 몸을 휘감아 묶는 옷을 만들었다. 그것이 일과 육아로 아침마다 전쟁하는 여성들을 해방시킨 아이템, 랩 드레스의 시작이었다. 다이앤은 전쟁 포로 생활을 견딘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여성의 내면에는 그렇게 강한 힘이 있음을 믿는다고. 여성의 삶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비영리단체 여성 대표들을 후원하기 위해 ‘DVF 어워즈’를 설립한 것 역시 이 시대 여성들이 가진 강한 힘을 응원하는 활동이다.Stella mccartney + Phoebe Philo, 1999 뉴욕 끌로에 부티크 오프닝 행사에 나타난 앳된 얼굴의 아가씨들은 누굴까. 당시 끌로에를 이끌던 스텔라 매카트니, 그리고 그녀의 어시스턴트 피비 파일로. 끌로에를 맡게 된 25세의 스텔라를 사람들은 의심했지만, 그녀는 보란 듯 하우스에 새바람을 일으켰으며, 비건 패션을 알리고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패션계의 신데렐라’ 스텔라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피비는 2001년, 끌로에의 수장이 된 후 비로소 날개를 펼쳤다. ‘잇’ 백의 시대를 열고 4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성공을 거머쥔 뒤 그녀는 돌연 패션계를 떠났고, 3년 뒤 셀린으로 돌아왔다. 이후 10년 동안 피비의 셀린은 그야말로 승승장구. 두 여성의 공통점은 뭘까. 과시하는 패션이 아닌, 여성을 진정 아름답게 만드는 섬세한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 그리하여 동시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Sonia Rykiel, 1981 1963년 12월,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몸에 꼭 맞는 스웨터를 입고 <엘르> 프랑스 표지에 등장했다. 소니아 리키엘의 ‘푸어 보이’ 스웨터는 격식을 중요시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리고 4년 뒤인 1968년, 그녀는 자신의 첫 컬렉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른바 68혁명이 일어난 바로 그해. 평등과 해방을 갈구하던 여성들을 위한 리키엘의 의상은 강인하면서 섹시했고, 입는 사람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2016년, 파리에는 소니아 리키엘 거리가 생겼다. 일요일이면 오가닉 마켓이 열리고, 리키엘도 즐겨 찾던 작은 길.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붉은 머리의 그녀를 기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