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타원형으로 뚫린 창문 너머 육지와 남해의 여러 섬을 쓰다듬는 구름 그림자를 본다. 구름을 내려다보는 50분 남짓의 시간 속에서 새를 닮은 형상으로 이 무거운 물체가 하늘을 난다는 사실에 매번 감탄하며.나는 ‘하늘 덕후’다. 하늘을 정말 좋아한다. 하늘을 이루는 구름, 바람, 해, 달, 별 등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 눈, 천둥, 번개, 오로라 등 어떤 것이든, 하늘의 구성원과 하늘이 짓는 모든 표정들을 사랑한다. 발음까지도 ‘하’ ‘늘’. 때문에 허 감독과 함께 하는 짧거나 긴 여행 끝엔 온통 얼핏 똑같아 보이는 비슷하지만 다른 하늘 사진들이 가득하다 (내가 든 카메라 속에). 하늘보다 그를 더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뇌리에 자주 스친다.이토록 하늘을 사랑하다 보니 제주에서도 하늘을 채집한다. 우리가 머무는 곳에서부터 ‘나알하’(나만 알고 싶은 하늘)를 찾기 시작했고, 맘을 먹자마자 우리가 명명하는 ‘비밀의 산책길’이 생겼다. 영주산과 한라산 능선이 노을과 함께 담기는 풍경을 매일 만날수 있는 곳.(영주산 : 제주의 오름 중 몇 안 되는 오름에 산이라는 이름을붙인다. 영주산은 제주 성산에 있는 신성한 오름으로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성산 일출봉과 바다를 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마치 끝없이 펼쳐질 초원 같다.) 걸어가는 길 양옆으로는 억새가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검은 땅 초록 잎의 무밭이 우릴 조용히 안내한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걸어가요.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요.’ 아침 밭일로 또는 재배로 오가는 일이 아니면 이 길에서 사람을 만날 확률은 0.00001%에 가깝다. 아무도 없이 바람소리와 걷거나 기울어진 해에 그림자를 위엄 있게 길게 뽑으며 걸을 수 있다. 어느 시간이든 좋지만 나는,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노을 질 녘 그곳을 자주 걷는다.색깔 옷을 입는 걸 두려워한다. 서울 집에 자리한 물건들 중 책표지를 제외한 그 어떤 곳에서도 여러 색을 접하기가 힘들다. 절제된 색감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하지만 노을의 오묘한 그라데이션과 주위와의 조화를 보면 틀에 박힌 안정을 벗어 던지고 싶다. 요란하지 않은 다채로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한라산 능선 뒤로 해는 점점 사라진다. 하늘은 하루의 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 제 몸을 빌어 아름다운 해의 마지막을 만천하에 알린다. 보라, 보아, 봐주세요. 요란하지 않은 마지막 축제. 하루 해의 탄생과 많이 닮은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빛낸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다 타고 남은 재처럼 사라지고 난 해는 여전히 온기와 빛을 한참 동안 지닌다. 뒤로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하늘에는 낮과 밤의 경계가 어슴푸레 남아있다. 그 경계를 지나면 짙은 밤이 온다.나만 알고 싶은 산책길에 서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한 다짐이 선다.제주에 머물러도 제주가 그리운 이유다.*김모아 작가의 ‘제주에서 살아보기’ 새 이야기는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