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그 이름, 칼 라거펠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화려하게 빛나고 명멸하는 패션계에서 대체 불가한 인물이 됐지만, 때론 누구보다 패션 밖에서 철저히 아웃사이더이길 바랐던 칼 라거펠트::칼 라거펠트,샤넬,디자이너,패션,엘르,elle.co.kr:: | 칼 라거펠트,샤넬,디자이너,패션,엘르

1979년 끌로에 디자이너 시절, 드로잉을 하던 그의 모습.“내 삶에 대해 글을 쓰는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받은 적 있어요. 하지만 ‘예스’라 하지 않았죠. 지난 과거는 잊고 현재를 직시해야 하니까요. 현재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해야 합니다. 천국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잘 알려졌다시피 칼 라거펠트는 철저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이성적인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이미 지난 과거와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는 일은 쓸데없는 행동이라 단언한다. 추억은 잊어야만 한다는 칼 라거펠트. 그랬던 그가 살아 숨 쉬던 시간이 너무도 생생해 지난 2월 19일 이 위대한 디자이너가 타계했다는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정확한 나이도, 과거 이야기도 알려지길 원치 않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미스터리하고 유니크한 인물이었으니 타계 소식조차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뉴스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칼 라거펠트가 68년 동안 자신의 삶을 온전히 패션에 바쳤다는 사실이다. 국제울단체가 주최한 어워즈에서 코트 부문을 수상한 이래로 말이다. 그 시절 드레스 부문을 수상했던 수줍은 청년 이브 생 로랑은 크리스찬 디올로 향했고 의지와 열정에 불타던 젊은 칼은 피에르 발망에 발을 들였다. 패션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열정이 그를 이끌었고, 끌로에(1963)와 펜디(1965)에서 일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라벨 ‘KL’ 역시 부지런히 구상했다. 그 후 1983년 샤넬에 합류하며 패션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나는 패션계의 나비가 되길 원해요. 가능하면 많은 곳을 떠돌고 싶습니다. 다양한 분야와 호흡하며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이죠.” 스스로 발자취를 선명하게 남기기보다 경계를 불분명하게 어지럽히길 원했던 칼 라거펠트. 그에게 “과거에 디자인했던 드레스들을 아직 간직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하나도 간직하지 않아요. 기존 것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편이 나아요. 마거릿 듀라의 책 <파괴하라, 그녀가 말했다>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인생에 좌우명이 하나 있어야 한다면 이 책의 제목을 쓰고 싶네요. 나는 과거의 어떤 순간도 추억하거나 간직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는 지나간 삶의 시간을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내세우는 위인이 아니다. 유명인에겐 확실히 모순적인 모습일지라도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람이니까. 2017 F/W 컬렉션을 마친 후,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과 기념 촬영. 1993년 샤넬 백스테이지에서 존 갈리아노와 함께. 1984년에 포착한 칼 라거펠트와 모델들. 칼의 총애를 받으며 샤넬의 뮤즈가 된 카라 델레바인과 릴리로즈 뎁. 2017년 쿠튀르 컬렉션 피날레에서 릴리로즈 뎁과 함께 등장했다.그는 아마 언급되길 원하지 않겠지만, 칼에게도 후광처럼 빛나는 유년 시절이 있다. 위키디피아에는 칼이 ‘아마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생 연도도 확실하지 않다. 1933년, 1935년 혹은 1938년일 수 있다고 애매하게 쓰여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과거가 이토록 비밀스러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가! 하지만 알리시아 드레이크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그의 출생 연도를 1933년으로 밝히면서 칼 라거펠트의 노여움을 산다. 그는 2009년 라루스(Larousse) 사전에 공식적인 연도를 1938년이라고 올리며 논쟁을 종결시켰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양한 세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합니다. 내 나이는 내가 결정합니다”라고 언급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그의 모호하고 비밀스러운 어린 시절에서 그의 어머니는 꽤 선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아버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가혹함과 동시에 애정을 지닌 존재로 회상한다. 매사에 꼼꼼하고 엄격했던 어머니로부터 업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성격이 급한 어머니는 항상 ‘네가 원하는 말을 더 빨리, 정확히 말하라’고 가르쳤죠.” 그는 자신의 언변술 역시 어머니 덕분이라 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제 삶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죠. 저의 쇼를 한 번도 보신 적 없어요. 당신의 생활이 바쁘기도 했고, 아침잠이 중요한 분이라 아침 일찍 열리는 패션쇼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또 우리는 그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서도 아주 사소한 부분만 알고 있다(자크 드 바셰가 그의 단 하나뿐인 사랑이었다고 회자된다). “그는 완벽한 매력을 가졌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도발적 아름다움이 넘쳤어요.” 칼 라거펠트의 신체 변화 역시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데, 카멜레온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보디 빌더처럼 건장했던 60년대부터 혹독한 다이어트로 탄생한 2000년대의 슬림한 록 스타 같은 몸매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변화무쌍한 인생철학을 대변한다. 칼 라거펠트와 함께라면 모든 일이 근사하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언제나 스스로를 완전히 연소시키며 빈틈없이 완벽한 결과물을 선보였고, 짓궂으면서도 세련된 유머를 즐기며 예술을 사랑하는 데 온몸을 바친 인물. 18세기 예술가의 작품과 사상가를 존경해 루 드 릴(Rue de Lille)에 서점 ‘7L’을 선보이기도 했던 그는 패션과 예술 사이에서 한없이 빛나던, 이 시대의 진정한 크리에이터였다. 그의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칼은 자주, 아니 항상 퇴색하지 않는 젊고 역동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했으니까. 칼 라거펠트의 절친이자 뮤즈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샤넬에 합류한 후 1984년 선보였던 쿠튀르 컬렉션의 드로잉 앞에서.서로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칼과 퍼렐 윌리엄스.그는 끌로에와 펜디를 거쳐 대체 불가능한 샤넬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전통과 클래식을 기반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트위드 수트, 새롭고 쾌활한 네온 룩과 실용적이면서도 근사한 데님, 주도적인 분위기의 패션쇼, 쿠튀르 룩에 그래피티 패턴을 가미하는 대담함, 브랜드의 얼굴이 될 뮤즈의 지속적인 발굴 등. 이렇듯 여성들의 삶과 스타일은 샤넬이라는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오랜 시간 공존해왔다. 거대 패션 하우스의 디렉터에 안주하지 않는 칼의 대담한 행보 역시 돋보였다. H&M과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며 대중에 과감히 다가가는가 하면, 코카콜라를 디자인하거나 교통 안전을 위한 노란 조끼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나아가 그는 패션 외의 분야에도 기꺼이 몸을 던져 스스로를 연소시켰다. 영화에 배우로 등장하거나, 직접 카메라를 들고 패션사진에 뛰어드는 등 그의 활동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걸까? 몇 년 전 <외로운 왕 Un Roi Seul>이라는 제목으로 칼 라거펠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외로운 왕? 그 제목은 끔찍해요. 유명인에게 외롭다는 감정은 사치나 마찬가지에요.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야 해요. 나는 늘 그렇게 지내왔기에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혼자 있는 동안 외로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대중은 언제나 베일 속에 감춰진 그의 사생활과 속마음을 궁금해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준 남자,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위대하게 느껴졌던 인물. 평생 선글라스와 장갑을 착용하고, 3000만 권의 책에 둘러싸인 독서광이며 고양이 슈페트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애묘인…. 그를 둘러싼 스토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눈을 뜨자마자 흑빵 토스트와 무지방 요거트를 먹어요. 아침 식사를 위한 전용 토스터기가 따로 있어요. 전 세계 어딜 가든 선물로 받은 루이 비통 케이스에 늘 토스터기를 넣어 다니죠.” 철저한 완벽주의자인 칼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평범한 이에겐 범상치 않은 그의 일상은 신비주의 그 자체다. 때마침 <엘르>에 영원한 헌사로 기록될, 그가 남긴 따듯한 한 마디가 기억난다. “1952년에 파리에 처음 도착해서 소르본 가의 호텔에서 머물 때였는데, 생 미셸에 있는 뉴스 스탠드를 아직도 기억해요.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엘르>를 사러 달려갔죠. <엘르>는 외국인이었던 내게 프랑스적인 애티튜드와 정신을 습득할 수 있게 해줬죠.” 칼 라거펠트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소속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이들이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표표히 사라졌다. 칼이 떠난 후 끝없이 이어진 패션계의 찬사는 가장 생생하게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 샤넬 CEO 알랭 워데머는 “남보다 한 발 앞선 그의 이례적인 천재성과 예술성이 샤넬의 성공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으며, LVMH CEO 베르나르 아르노 역시 “샤넬과 펜디를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만든 천재적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재능과 취향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이보다 뛰어났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라고 했다. 칼 라거펠트는 이처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찬사와 경의를 표하는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맞받아칠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엔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이 언제일지 늘 궁금했지만 바로 지금이겠죠. 내 과거에 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아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하나 더, 회고전 따위는 절대 원하지 않아요.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