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는지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거다. 단숨에 10여 년 전의 기억으로 데려가는가 하면 한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특별한 순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한껏 멋 부린 스타일링의 화룡점정 또한 향수의 몫이다. 고작 손바닥만 한 향수병은 어쩌면 동시대가 원하고 바라는 오감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그 향수가 가진 이미지를 구입한다. 미니멀에 열광하던 90년대엔 중성적이고 ‘쿨’(유독 향수 이름에 ‘쿨’이란 이름이 많이 들어간 시기였다)한 향수가, 2000년대 초반엔 새로운 세기의 낙천주의로 가득한 밝고 달콤한 향수가 전성기를 누렸다. 그렇기에 향수 광고는 유독 ‘고퀄’이자 시대를 풍미하는 트렌드이기도 했다. 반 누드 상태로 무심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델의 흑백 필름, 따뜻한 동산에서 해맑게 웃음을 퍼뜨리는 소녀들 혹은 남자를 유혹하곤 유유히 자리를 뜨는 도발적인 여성…. 30ml 작은 향수병엔 향기뿐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이 투영돼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막 공개된 구찌의 이 필름은 우리의 마음을 잘 꿰뚫고 있다.젊은 여성 셋이 함께 꽃이 만발한 거리에서 차를 마시고, 초록 식물이 우거진 아파트를 거닌다. 이윽고 도시 배경은 환상적인 영국식 정원으로 바뀌고 몽환적인 무드가 연출되며 이들은 호수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즐긴다. 친구로 보이는 셋은 닮은 듯하지만 무척 다르다. 배우 다코타 존슨(Dakota Johnson)과 배우이자 모델인 하리 네프(Hari Nef), 아티스트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 영상 속에서 여신처럼 아름답지도, 모델처럼 섹시하지도 않게 그려진 그들은 어쩌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각자의 커리어를 가진,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여자친구일 뿐.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면 그들이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베프’란 것. 출시와 함께 아이코닉해진 그의 첫 향수 ‘구찌 블룸’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블룸 아쿠아 디 피오리’를 위해 뭉친 셋은 미켈레의 비전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단 한 명의 특정 여성을 위한 향수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여성의 세계는 실로 어마어마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잖아요. 이처럼 다양한 여성의 삶을 친밀하게 표현하는 향수죠.” 세 여성은 영상 속에서만 연기할 수 있는 특별한 캐릭터를 부여받은 건 아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구찌의 여성이며 롤 모델이다. 배우 집안이라는(멜라니 그리피스가 엄마) 금수저 백그라운드를 가뿐히 뛰어넘은 다코타 존슨, 페미니스트 포토그래퍼이자 패션 모델이며 아트 디렉터 등 다재다능한 페트라 콜린스 그리고 최초의 트랜스젠더 모델이자 작가인 하리 네프는 자주적이고 자기애로 가득 찬 지금의 젊은 여성을 대변한다.“미켈레는 내게 낙천적이고 즐거우며 활력 넘치는 향을 만들어달라고 했죠. 맡으면 누구나 기분 좋아질 향이요.” 구찌 블룸에 이어 아쿠아 디 피오리를 만든 조향사 알베르토 모릴라스(Alberto Morillas)가 말한다. ‘전혀 인공적이지 않고 모든 이들이 이전에 경험했을 법한 자연스러운 무언가, 꼭 지적일 필요도 없으며 즐길 수 있으면 된다’는 향에 대한 표현은 동시대를 사는 젊은 여성의 삶에 대한 태도와 일맥상통한다.이 삶의 환희를 표현하기 위해 알베르토 모릴라스는 그린 갈바눔과 사랑스러운 카시스 버드로 톱 노트를 워터리하게 완성했다. 여기에 기존 오리지널 블룸의 재스민 버드, 랑군 크리퍼, 튜베로즈가 사용됐고, 머스크와 샌달우드 베이스는 따뜻함과 깊이를 전달한다. 기존 구찌 블룸의 팬이라면 이 향이 무척이나 궁금할 터, 블룸과의 차이점은 뭘까? “누군가 내게 ‘블룸은 너무 플로럴 향이라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다면 틀림없이 아쿠아 디 피오리를 좋아할 겁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블룸이 풍성한 꽃다발 같다면 아쿠아 디 피오리는 물 안에 있는 꽃의 향기로 묘사할 수 있죠.”지난 10여 년간 향수 광고 속의 여성들은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끈적한 눈빛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꿈속의 동화 같은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지금, 우정으로 똘똘 뭉친 세 여성이 보내오는 메시지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조향사 알베르토 모릴라스는 “이 향수를 뿌리기로 선택한 순간 에너지와 즐거움, 햇빛을 떠올리며 목가적인 순간에 들어서길 바란다”고 했다. 미켈레는 “자유롭게 꿈꾸고 모험할 줄 아는 여성들의 삶과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향기를 통해 무한 여행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언제나 향수병은 지니의 램프처럼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가 막힌 스토리텔러지만 이토록 주체적인 여성들이 스리 톱 주인공인 적이 또 있었을까? 어쩌면 가장 진보적인 필름, 가장 시대적인 향기로 남을지도! 그린 톤의 허베리움 패턴이 프린트된 보틀은 향기가 주는 에너지와 상쾌함을 상징한다. 블룸 아쿠아 디 피오리, 30ml 9만4천원, 50ml 11만9천원, 100ml 16만5천원, Gucci.INTERVIEW with HARI NEF구찌 블룸 아쿠아 디 피오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하리 네프를 <엘르> 코리아가 단독으로 만났다. 햇빛과 긍정주의로 가득 찬 LA에서 나눈 인터뷰.당신의 어떤 점이 구찌 블룸 아쿠아 디 피오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나 미켈레는 흔한 예쁜 얼굴이나 잘 다듬어진 유명인을 찾는 사람은 아니죠. 뭔가 ‘진짜’를 찾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발탁 소식을 듣고 더욱 자랑스럽다고 느꼈죠.당신에게 향기란 10대 때 한 나이트클럽 드래그 퀸이 얘기했어요. ‘향수는 여성의 첫 번째 취향’이라고. 마치 악수와 같은 거죠. 상대에게 자신을 즉각적으로 소개시켜 주는,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의상이나 메이크업, 헤어 같은 시각적 요소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첫 만남에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의사표현.가장 좋아하는 향 , 상상해 보세요. 친구들과 클럽에 가기 전, 예쁘게 꾸미고 향수를 뿌리겠죠? 그리고 광란의 밤을 보낸 뒤 땀 냄새와 술, 담배 냄새가 뒤섞이면 어떤 특정한 향이 되죠. 전 그 향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좀 이상할 수 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하하.영상에서 여성들의 우정과 꿈, 희망을 표현했는데,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모든 메시지를 다 무시하라는 게 제 메시지에요! 행복해지렴, 상냥하지만 강해져라,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모순된 메시지들 말이죠. 그냥 우리 모습 그대로 충분해요. 스스로를 더욱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외부적인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향수를 뿌렸을 때 자신감이 생긴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좋은 향을 내고 싶다는 이유로 향수를 구입하지는 마세요. 당신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나를 간섭하는 목소리들을 걸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무엇이 여러분을 만족시키는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