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팔라스에서 펼쳐진 웅장한 2019 S/S 컬렉션 피날레.“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마지막 프랑스 여정입니다.” 지난 11월, 상하이에서 열린 구찌 2019 S/S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브랜드 담당자가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를 좇아 여정을 돌이켜보면 첫 출발지는 파리의 거리였다. 1968년 5월, 파리를 요동치게 만든 68혁명 정신을 담은 2018 프리폴 캠페인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억압된 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권리를 주장하던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가 울려 펴진 지 5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 다음 구찌는 행선지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배경인 프랑스 남부 아를로 옮겨 한밤중의 ‘별이 빛나는 2019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죽음이 깃든 공동묘지가 런웨이가 되고, 활활 치솟는 불길을 따라 114벌의 드라마틱한 룩이 쏟아져 나왔으며, 엘턴 존의 공연이 함께하는 패션 판타지의 세계가 관객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지난 9월, 미켈레는 여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파리로 돌아갔다. 2019 S/S 컬렉션 무대로 낙점된 르 팔라스 영화관이 마지막 목적지. 파리의 거리→아를→르 팔라스에 걸친 여행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역사 속에 잠든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였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68혁명 정신을 상기시키고, 로마제국시대의 공동묘지인 알리스 캉이 런웨이가 됐으며, 파리의 스튜디오 54라 불렸던 르 팔라스가 다시 재조명됐으니까. 게다가 르 팔라스에서 쇼를 선보인 건 구찌가 처음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영감을 준 문화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현재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장소”라고 말한 알레산드로 마켈레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문화 향유의 중심지에 호화로운 빈티지 물결을 일으켰다.쇼는 공포영화 상영과 함께 시작됐다. 음침한 집 안에서 퀭한 눈 화장을 한 긴 머리 소녀가 초점 잃은 눈으로 기이한 연기를 펼치는 스토리. 쇼 시작 전, 감정을 최고조로 올리기 위한 장치로 이탈리아의 실험 예술가 레오 드 베라르디니스(Leo de Berardinis)와 펠라 페라갈로(Perla Peragallo)가 연출한 단편영화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들로부터 2019 S/S 컬렉션의 영감을 받았다. 두 아티스트는 극장이 권력과 인습을 타파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실험 정신이 표출되는 창조 공간이라고 여겼다. 변화가 잠재돼 있다고 믿었던 극장에서 미켈레는 프릴 원피스와 보디수트, 수트와 작스트랩, 니트와 실크 등의 패션 요소를 뒤죽박죽 섞어 이국적인 정서를 끌어냈다. 최근 레너베이션한 ‘No. 8 Bridge Space of Art’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 장에서도 미켈레가 완성한 이질적인 조합의 조화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눈 앞에 진열되어 있던 마네킹은 무대 위에서 커튼콜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으며 막을 내린 피날레를 떠올리게 했다. 과거의 관능적인 구찌를 잊게 할 만큼 자신의 시그너처를 ‘구찌 스타일’로 구축한 디자이너는 이번에도 빈티지 패션을 동시대 영역으로 회귀시켰다. 구찌의 80년대 로고가 스니커즈 안쪽에 숨겨져 있었고, 고고 춤을 추던 70년대 시절처럼 마네킹이 플레어 팬츠를 입고 있었으며, 파워 숄더는 80년대 파워 무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구찌의 다채로운 액세서 라인은 브랜드의 강점 중 하나. 미키 마우스 백과 샌들은 밀레니얼 세대 저격 아이템으로 완벽하다. 앙증맞은 위트가 담긴 딸기 프린트와 플라잉 피그 브로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구찌의 호화로운 빈티지 패션 모멘트.앙증맞은 딸기 프린트와 플라잉 피그, 앵두 장식의 액세서리는 컬렉션에 위트를 더하는 패션 장치였다. 프랑스 국기 컬러를 사용한 블루, 화이트, 레드 조합의 룩도 상하이에 도착했는데 미켈레 시선으로 재해석한 파리지앵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이 밖에 ‘코트다쥐르를 위한 투피스(Deux Pieces Pour La cote d’Azur)’라고 적힌 블루 스커트 역시 프랑스에 대한 오마주 3 시리즈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룩 중 하나. “이번 시즌 주목할 만한 특징은 테일러링입니다.” 하우스의 노하우가 집약된 테일러링 룩을 소개하며 브랜드 담당자가 강한 어조로 설명을 덧붙였다. 빈티지 그린 컬러의 플레어 팬츠 수트와 프린지나 자수 장식으로 화려함을 살린 레더 재킷 등 정통 테일러링에 감각적인 터치를 가미한 클래식의 변주가 엿보였다. 괴짜 스타일을 하이패션으로 불러낼 만큼 틀을 깨는 디자이너의 과감한 시도라 해야 할까? 그중 베이식 팬츠 위에 작스트랩(Jockstrap)을 레이어드한 파격적인 스타일은 오로지 미켈레만 밀어붙일 수 있는 룩이었다. 켜켜이 쌓인 패션 하우스의 유산에 자신의 감각을 접목시키는 데 주저하는 법이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스타일이지만 한국에서도 구매 가능하다니 거리에서 작스트랩 룩을 만날 수도 있다. 그 밖에 크리스털 탈착이 가능한 스포티 샌들부터 미키 마우스 90주년을 기념한 미키 마우스 백, 스타일 변형이 가능한 백팩, 타이거 헤드가 돋보이는 라자 백까지 새 시즌을 겨냥한 폭 넓은 스펙트럼이 프레젠테이션장을 가득 채웠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 영역을 살펴보면 그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과거에서 꺼내 올린 호화로운 빈티지 룩은 시간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그의 디자인 감각이 동시대 패션에 주는 선물과도 같다. 때문에 구찌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업주의가 팽배한 패션계에 일침을 날리듯 패션 판타지의 행보를 이어가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 철학이 침체된 파리 패션위크에 열기를 불어넣듯 상하이에서 다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