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불멸의 아름다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빛바랜 벽호의 상형문자에서 깨어난 아름다움 위에, 칼 라거펠트와 공방의 장인들이 금빛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샤넬, CHANEL, 칼 라거펠트, 패션쇼, 런웨이, 패션위크, 패션, 엘르, elle.co.kr:: | 샤넬,CHANEL,칼 라거펠트,패션쇼,런웨이

해마다 12월이면 샤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컬렉션이 어느 도시에선가 펼쳐진다. 도쿄, 뉴욕, 몬테카를로, 런던, 모스크바, 상하이, 에든버러, 댈러스, 잘츠부르크, 로마, 파리, 함부르크 등에서 16여 년간 여정을 이어온 공방 컬렉션(Me′tiers d’Art). 샤넬의 공방 장인들의 눈부신 장인 정신과 칼 라거펠트가 이끄는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의 현대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것이 바로 공방 컬렉션으로, 쇼를 위한 베뉴 선정은 컨셉트를 규정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칼 라거펠트의 영감의 방랑벽을 충족시키기에 충만한 도시여야 함은 물론이고 그 도시의 복식사와 전통 의상의 모티프가 풍부한 곳인지 여부도 주요 선정 요건 중 하나. 2018/2019 공방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선택된 도시는 바로 뉴욕.“뉴욕은 여러 문화가 하나로 융합돼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곳이죠. 정말 흥미로운 도시예요.” 쇼의 베뉴가 최종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뉴욕 공방 컬렉션의 컨셉트를 미국적인 팝 컬처와 모더니티 혹은 스트리트적인 요소가 결합된 룩이겠거니 잠시 넘겨 짚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D-1일 초대장을 열어본 후에야 빗나갔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초대장에는 이집트의 상형문자 혹은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 그래피티 아티스트 시릴 콩고(Cyril Kongo)가 세 가지 버전으로 그린 초대장은 랜덤으로 발송돼 초대받은 이마다 다른 초대장을 모아 인증 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으로 향했다.칼 라거펠트는 시간을 초월해 다시 태어난다는 전설을 지닌 풍뎅이 모티프를 상징적으로 활용하면서 고대 이집트 문명을 현대로 소환해 냈다.아르 데코풍의 주얼리 피스는 가슴받이 장식인 플래스트런과 매치했다.샤넬 공방 컬렉션 런웨이 무대에 오른 수주. 런웨이 전체를 지배한 골드 컬러는 슈즈에도 적용됐다.공방 컬렉션의 아르데코풍 주얼 드레스를 입은 정호연.칼 라거펠트가 공방 컬렉션을 선보일 장소로 선택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덴두르 신전은 브랜드 패션쇼를 위해 대관이 허락된 것은 이번 샤넬 공방 컬렉션이 처음이란다. 신전으로 향하기까지 파라오가 잠들어 있을 것 같은 관들과 고대 이집트 벽화를 지났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명한 색채와 고대인의 디자인 감각에 새삼 놀랐다. 그제야 칼 라거펠트가 이집트가 아닌 뉴욕 속의 이집트 신전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팔림세스트(Palimpsest)라는 고대 문서 작업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팔림세스트란 양피지가 귀했던 시대, 원래 있던 글씨를 긁어내고 다시 쓰는 고대의 문서 작업 방식으로, 칼 라거펠트는 빛바랜 이집트 벽화와 그 안에 잠들어 있는 화려한 문명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모던 룩을 재창조해 낸 것이다.“이집트 문명은 항상 저를 매료시켰어요. 거기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구체화시켰죠.” 과연 칼 라거펠트가 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첫 번째 룩을 입은 모델이 걸어 나오는 모습에서 타임슬립했다. 마치 고대 이집트 신전에 들어선 듯한 것. 런웨이 중반에 신전 안쪽에서 금빛 니트와 골드 레더 팬츠를 입고 걸어 나오는 퍼렐 윌리엄스는 흡사 람세스 2세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런웨이에서 가장 지배적이었던 컬러는 골드. 가브리엘 샤넬이 무한 애정을 쏟았던 태양과 같은 컬러인 골드는 한낮의 태양빛 골드, 스파클링 골드, 은은한 골드, 디스코처럼 현란한 골드, 황혼의 태양빛과 같은 브론즈 골드 등, 시간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윤색되는 골드 컬러를 선보였다. 골드를 중심으로 베이지, 화이트, 블랙, 터쿠아즈, 라피스 라줄리 블루, 코럴 오렌지, 오커 옐로, 다크 퍼플, 코럴린 레드 등의 컬러들이 절묘한 빛을 발산하며 어우러졌다.메종 미셸(Maison Michel)이 제작한 모자는 심플하고도 순수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액세서리로 전체적인 룩에 모던함을 입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전체적인 라인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해서 순수함을 자아냈다. 심플하지만 모든 의상에는 캉봉가 레디 투 웨어 아틀리에에서 멋지게 창조해 낸 절묘한 디테일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장신구를 연상시키는 주얼리와 상형문자 같은 패턴에서 샤넬의 스타일 문법에서 매우 중요한 그래픽적 힘이 느껴졌다. 래진 플래스트런(가슴 장식), 비대칭적인 캐스트글래스, 크로커다일 문양 장식(샤넬은 환경을 위해 공식적으로 더 이상 엑조틱 레더를 사용하지 않는 브랜드임을 선언했다)을 통해 대담한 효과를 표현하기도 했다. 몽텍스(Montex)와 르사주(Lesage)의 자수 아틀리에에서 발휘한 기교는 여성스러움을 더했고, 르마리에(Lemarie′) 공방의 페더 마르퀘트리 기법(소재 표면에 꽃이나 자연 형태를 디자인해 상감 세공하는 기법)과 아플리케 작업은 정교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이집트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클러치, 금빛 니트, 유닉 주얼리 패스들.부드럽게 흐르는 실루엣을 완성시키는 니트웨어와 재킷에는 녹슨 골드 메탈 소재나 광택을 입히고 유색 카보숑 혹은 80년대 스타일 인조 보석 장식으로 세공한 데뤼 공방의 단추들이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 이집트가 지배적이었던 런웨이에 데님과 레더 재킷 중심의 스트리트 룩들로 80년대의 활기찬 에너지가 더해졌다. 고대 유물에서 아르 데코, 스트리트 아트를 총망라한 칼 라거펠트의 영감은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의 밤을 더욱 빛나게 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순환하는 아름다움의 상징적인 모티프로 라거펠트가 특별히 선택한 것은 바로 풍뎅이. 시간을 초월하며 순환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풍뎅이는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런웨이를 관통하며 백이나 펜던트 등으로 어우러졌다.트위드 트라페즈 드레스에 코코 크러시 이어링과 카페 소사이어티 브레이슬렛을 착용한 줄리앤 무어 그리고 그녀 곁에는 블랙 엠브로이더리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크리스티 털링턴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샤넬의 블랙 튤 드레스를 입은 마고 로비.베이지 트위드 재킷에 네크리스를 레이어드한 캐롤린 드 메그레.실버 엠브로이더리 장식의 오간자 드레스를 입은 블레이크 라이블리.블랙 헴라인이 들어간 핑크 레더 재킷을 입은 마리옹 코티아르와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들어간미드나잇 블루 시퀸 드레스를 입은 릴리 로즈 뎁.칼 라거펠트와 샤넬 공방의 협업은 끊임없는 창조적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샤넬 쇼 시작 전 7일간의 순간을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7 DAYS OUT>도 쇼 바로 다음 날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졌다. 다큐멘터리에선 라거펠트와 공방 협업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쇼를 앞둔 긴박함, 장인들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쏟는지 볼 수 있었다. 샤넬과 공방의 협업은 가브리엘 샤넬 시절부터 이어져온 오랜 씨실과 날실의 패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 금 세공 공방인 구센(Goosen)과의 협업으로 시작해, 1957년 구두 공방인 마사로(Massaro)와의 협업으로 타임리스 슈즈인 투 톤 슈즈를 선보였다. 이후 카멜리아를 빅 히트시킨 르마리에가 샤넬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3년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아트 디렉터로 영입되면서 엠브로이더리의 르사주, 플리츠 공방인 로뇽(Lognon), 엠브로이더리의 몽텍스, 모자의 메종 미셸 등 공방과의 관계는 더욱 긴밀하고 탄탄해진다. 협업하는 공방과 장인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후원하는 샤넬의 열정은 지구를 숨쉬게 하는 브라질 아마존 유역의 숲처럼, 패션계에 디자이너로서의 ‘초심’과 ‘창의성’이라는 청정 공기를 불어넣는다. 공방 장인들의 정신은 스피디한 제작 시스템과 즉각적인 판매와 매출 실적에 혈안이 된 패션계에 진정한 멋과 크리에이션이란 무엇인지 다시 되짚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