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주 겨울의 푸르름에 관하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겨울의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나요? ‘커플의소리’ 김모아 작가의 감성 깊은 제주일기 두 번째::제주, 겨울, 제주도, 커플의소리, 김모아, 여행, travel, jeju, 엘르, elle, elle.co.kr:: | 제주,겨울,제주도,커플의소리,김모아

겨울이 오면 제주에 머물러도 제주 생각을 한다. 2017년 겨울,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이 그렇게 천국 같았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행복하고 즐거웠다. 몇 년 만의 폭설로 동쪽에서 꼼짝 못하고 이틀을 갇혔었고, 한 번은 심한 오르막길이 아닌데 미끄러져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제주의 절제된 색감에 쌓여 보낸 한 달은 짙었다. 별스럽지 않아 별스럽게 남아있다. 육지로 나오는 배를 타던 마지막 날의 눈보라가 그 기억의 마지막 장면이다.올해 제주의 겨울은 작년보다 눈이 적다. 아직까지는. 그래서인지 올해 제주의 겨울은 유독 푸르다. 그렇게 내리던 눈이 아직 북쪽에서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눈이 게으름을 피우는 건지 오는 걸 까먹은 건지…우리가 지내는 어라운드 폴리는 동쪽 아래에 있다. 공항에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면 구좌리와 송당 어귀까지는 당근밭이 주를 이루고 송당 부근부터는 무밭이 눈에 띈다(어귀와 부근의 차이가 분명 있다). 초겨울부터 초록 잎을 빳빳하게 위로 내며 쑥쑥 자라는 무 덕분에 제주의 겨울은 푸르다. 초록의 무밭은 바람결에 파도를 만들고 쉬쉬 소리를 낸다. 가끔 덩어리진 구름이 밭 위에 그림자를 새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 그림, 향, 소리 속에 파묻힌다. 제주로 이민 (이사가 아닌 이민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온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다. 제주 겨울이 오면 마음이 황량한데 저 무밭이 있어 초록 초록한 게 너무 좋다고.봄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제주 초록의 주연은 단연 삼나무다. 작년 늦여름 비자림로 4차로 장을 위해 잘려나간 아름드리나무들이 바로 삼나무이다. 줄기나 잎이 상해 땅에 떨어져도 여전한 운치를 가지는 매력적인 삼나무는 그 곁에 서기만 해도 청량한 기운이 돈다. 예상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미세먼지가 밀려오면 곧게 뻗은 삼나무 대열 어딘가에 서고 싶어진다.겨울 오름은 최선을 다해 노오란 빛을 내며 봉긋하게 솟아있다. 용눈이 오름 능선을 따라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이제 여기저기 무를 재배하는 중이다. 올해는 무가 풍년 중에 풍년이라 미처 다 뽑지 않고 밭에 그대로 둔 무들이 많다. 누구든 뽑아가도 된다는 신호다. 다음 제주에는 무 하나 뽑아 깨끗하게 씻어 한 입 베어 물어야지. 색, 그림, 향, 소리, 끝으로 맛까지 오감을 다 뻗쳐 겨울을 만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