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제4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탈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를 여럿 갖고 있다. 자신을 페라리나 람보리기니, 아니면 F1의 머신으로 착각한 것인지 미친 듯이 밟아대는 자동차들이 당신의 어리바리한 렌트카를 협박하는 그런 길 말이다. |

이탈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를 여럿 갖고 있다. 자신을 페라리나 람보리기니, 아니면 F1의 머신으로 착각한 것인지 미친 듯이 밟아대는 자동차들이 당신의 어리버리한 렌트카를 협박하는 그런 길 말이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도 물론 속도제한이 있고, 제 아무리 아우토반을 달리던 벤츠라고 하더라도 이탈리아의 법률은 얌전한 운행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 이방인의 눈에 보기엔 그 법률은 있으나마나 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는 거의 30톤은 될 듯한 육중한 화물트럭-틀림없이 마약이나 불법입국자를 가득 실었을 것처럼 음침한 모양의-이 쌩쌩 달리는 세단과 속도 경쟁을 하기도 한다. 1차선 추월선은 이같은 트럭들로 점령되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서 추월선이란 ‘화물트럭 전용선’을 의미하기도 하나보다. 이런 만행은 대개 이탈리아 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제일 중요한 고속도로인 A1선에서 벌어진다. 이탈리아 교통경찰은 뭘 하냐고? 간혹 그들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대개는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실 때다(덧붙여 말하건대, 이탈리아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커피도 기막힌 맛이다). 그들이 페라가모나 돌체 앤 가바나가 디자인한 듯한 가죽 옷과 부츠로 한껏 멋을 부리며, 에스프레소 잔을 홀짝일 때 길밖에는 미친 가짜 페라리들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경찰들은 휴대전화로-무전기가 아닌!-누군가와 웃으며 통화하고 있을 때가 잦다. 설마 그들이 휴대폰으로 경찰본부의 당직자와 범죄자 정보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며 웃기야 하겠는가. 사실 이렇게 융통성 많은 교통경찰은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저승사자가 아닌, 자상한 조언자가 되어주니 더할 나위없이 좋기는 하다. 한번은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던 후배와 우리도 페라리 흉내를 내며 미친 듯이 달리다가 제지를 받았다. 면허증을 달리는 요구에 후배는 상당히 불안에 떨며-내 눈에는 그의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보였다-요구에 응했다. 문제는 그의 국제운전면허증은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었다. 다시 말해, 후배는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술 더 떠 그는 유효기간을 슬쩍 지우고 고쳐 썼다. 그 어설픈 위조의 흔적에는 커피를 흘려 부었다. 마치, 실수로 떨어뜨린 것처럼 말이다(커피는 오래된 고문서 위조에 여전히 유효하게 쓰이는 원료이기는 하다). 실베스타 스탈론을 닮은 그 교통경찰은 면허증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면허증을 옆에 두고 커피 같은 건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안전벨트도 매 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그러니까, 우리는 안전벨트미착용이 포함된 공문서위조죄를 가볍게 사면받고 오히려 면허증을 오래 깨끗하게 간수하며, 목숨도 오래 보전할 수 있는 카운슬링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늘 이탈리아의 교통경찰이 그대들에게 아량을 베풀 것이라는 착각하지 말라. 반드시 교통경찰의 관상을 잘 살펴보도록. 그가 실베스타 스탈론처럼 약간 멍하며, 착해보이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까. 자가운전으로 이탈리아를 누빈다면, 훨씬 많은 걸 보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교통경찰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무단횡단으로 딱지를 끊었을 때를 빼면. 몇 해 전인가, 딸의 성화에 할 수 없이 면허 시험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담당 감독은 나를 힐끗 보더니 안됐다는 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언제 취소되셨나요. 음주셨던가요?”이 늙수그레한 40대가 초짜 면허 신청자라고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음주를 한 것처럼 엉터리 주행으로 보기 좋게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운전에 소질이 없는 것도 아닌 게 확실한데 도로주행에서 속도를 내라는 감독의 말에 시속 80킬로쯤을 팍팍, 밟았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버스와 기차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대중교통을 타면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멋진 추억도 선사한다. 아말피 해안가를 정신 나간 운전사가 모는 시외버스를 타고 달리지 않으면, 어떻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선뜻 맛볼 수 있다고 하겠는가. 나는 이탈리아의 모든 버스 기사의 휴대전화를 압수해버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이럴 때 움베르토 에코가 유력한 언론 칼럼에 강력한 주장을 펼치기를 바라는 바이다-어떻게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우고 어제 동네 단골식당의 저녁 메뉴에 대해 친구와 토론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그 기사는 버스가 바닷가의 가드레일을 향해 돌진해서 막 바다로 뛰어들 때가 되면 핸들을 홱, 꺾었다. 승객들은 두 손으로 앞좌석의 머리받이를 붙들고 불시착하는 비행기의 승객들처럼 몸을 움츠렸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 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아주머니들은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 ‘오 디오(오 주님)’ 라거나 ‘마돈나(성모 마리아여)’ 같은 최상급의 호소를 터뜨렸다. ‘하느님 맙소사’의 다양한 버전이었다. 아말피 해안길은 까마득한 단애를 내려다보며 라면발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버스는 끊임없이 승객의 좌우 평형감각을 단련시키려고 애를 썼다. 나폴리 사투리의 기사는 메뉴 이야기를 마치고, 누군가의 흉을 보느라고 또 새로운 천일야화를 시작했고, 나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알피엠을 높여갈 수밖에 없었다. 알려진대로 아말피 해안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물론 제주도의 남쪽 남원 바닷가나 애월쪽의 해안도로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이만한 그림도 세계에 별로 없다. 게다가 정신 나간 기사를 만나면 졸지에 영화 를 찍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체험도 하게 된다. 네가 딱 그짝이었는데, 별로 권장할 건 못된다. 어제 마신 술이 겨우 가라앉았다 싶었지만 청룡열차처럼 뒤흔드는 핸들질에 몇 번씩 구역질을 참느라 이를 악물어야 했다. 듣자니, 절벽 길의 절묘한 버스 여행은 히말라야를 최고로 치는 모양이다. 지난 여름에 히말라야의 도시 라싸에 다녀온 친구는 입에 거품을 물고 그 광경을 묘사했다. “생각해보라구, 친구. 진작 폐차장에 갔어야 할 버스에 사람을 짐짝처럼 가득 싣고 버스가 달린다네, 버스 지붕에는 각종 화물이 사람만큼 실려 있고. 평지를 달릴 때도 갸르릉거리며 엔진이 꺼질 듯 이어지는데, 해발고도 4~5천미터의 구절양장을 달린다고 상상해보라고. 한국에도 비행기재라고 있지? 그건 애들 장난이야. 정말 절벽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인다고. 절벽쪽에 앉아 있으면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야. 항문이 저릿저릿해지지. 아마 오줌을 지리는 사람도 꽤 있을 거야. 정말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사람들이 생사를 초월한 듯 도를 깨쳐 보이는 건 순전히 버스여행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네.”나는 아직 히말라야를 가보지 못했다. 약간의 공황장애를 앓는 나는 고공이나 호흡곤란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폐쇄공포도 있다. 한번은 지하철 승강기를 타고 폐쇄공포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승강기는 탈 때와 내릴 때의 문이 달랐던 것뿐이었다. 열리지 않는 문을 열려고 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뒤쪽 문이 스르륵 열리고 어떤 할머니가 탔다. “아저씨, 괜찮아요?”이런 판국에 히말라야라니. 특히 고소장애의 공포가 나를 애초에 포기하게 만든다. 해발 3천이 넘으면 나타난다는 고소장애는 신체 건강과는 별로 관련도 없다. 희박해진 산소 때문에 뇌의 산소부족이 이어지고 두통과 호흡곤란, 의식 이상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유명한 엄홍길 대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가혹하게 단련된 고산 등반대원들도 어쩔 수 없이 고소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그가 겪은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고소장애 일화는 사람들을 꽤 웃긴다. 그는 걸쭉하고 따스한 화술을 가지고 있다. “한번은 아침에 내 텐트문을 열고 후배가 그러는 거예요. ‘대장님! 아침에 신문 안 왔어요?’. 이럴 때 뭐라고 야단치면 안돼요. 고소를 먹은 상태니까요. 차분히 응답해줘야 해요. ‘야 임마, 신문 끊었잖아’라구요. 텐트에서 그러면 그나마 다행인데 정상 공격 중에도 종종 그럽니다. 정상 반대 뱡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리 야단쳐도 못 알아듣습니다. 지상의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고소를 겪어본 사람들은 다 뼈저리게 느낍니다, 하하.” 아말피를 달리는 버스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시외버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좌석이 작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버스 제작자는 아주 특이한 관념의 소유자들이다. 장거리 버스일수록 의자를 좁고 작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시내버스의 자리 간격은 키가 큰 내가 팔자로 벌려도 여유 있는데, 장거리 버스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두 다리를 바짝 끌어모아야 겨우 옆사람을 증오하지 않고 갈 수 있다. 그들은 장거리 여행과 키는 반비례한다는 걸 굳게 믿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버스 제작으로 큰돈을 벌어 리무진 뒷좌석에서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느라 자기 회사의 버스에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며 탑승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있거나.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데 있다, 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3박4일짜리 여행에 종갓집 여행용 김치 세트와 볶은 고추장(그것도 모자라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부탁해서 몇 개쯤 더 챙겨두기도 하지), 양반김과 햇반, 컵라면까지 챙겨가는 사람들은 제외하고서 말이다-다 좋은데 제발 호텔방에서 카펫에 김치국물은 쏟지 말자. 내가 아는 한 이탈리아 여관주인은 한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카펫 세탁비로 수백 유로를 더 이상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라면국물 때문에 변기나 세면기가 막혀서 드는 수리비는 애교로 봐준다고 해도….그런데 식당 찾는 일이 만만치 많다. 널린 게 밥집이요, 아무 때나 원하는 종류의 밥을 먹을 수 있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사뭇 다른 게 유럽이다. 둥그런 피자를 먹으려면 저녁 7시가 되어야 한다. 어쨌든 스파게티 한 가락을 먹으려면 꽤 신경을 써야 가능해진다. 이탈리아에서 밥을 찾아 먹으려면 문자해독력이 꽤 필요하다. 식당을 일컫는 이름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자, 시작하련다. 리스토란테, 트라토리아, 오스테리아, 호스타리아, 로칸다, 파토리아, 로스티체리아, 피체리아, 포카체리아, 비스테케리아, 파니노테카, 스파게테리아, 타볼라 칼다…. 여기에 그냥 영어로 스낵이라거나 레스토랑, 그릴이라고 써놓은 집도 있으니 이런 사정을 모르면 머릿속 전두엽과 후두엽, 대뇌피질과 해마가 마구 뒤엉키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어느 말이든 밥을 판다는 이야기인데 그 속사정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바가 있다. 그냥 피체리아를 선택하는 것이다. 달랑 피자 한 판만 시켜 먹어도 눈치 주는 이가 없고, 피자 말고도 다양한 파스타는 물론 웬만한 고기와 생선요리도 다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파스타는 열 명의 한국인 중에 일곱은 ‘맛이 없다’거나 ‘짜다’고 느낀다. 한마디로 맘에 안든다. 그렇지만 피자는 그 반대다. 열에 일곱은 맛있다고 느낀다. 솔직히 말해서 피자는 어떻게 만들어도 꽤 먹을만한 음식이다. 파스타는 솜씨가 없으면 그야말로 우웩, 후회의 쓰나미가 몰려오게 마련인데 피자는 ‘그냥그냥’ 먹을 수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피자를 먹고 싶은 욕망은 이탈리아행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시작된다. 이탈리아를 꽤 자주 다녔고, 안다고들 생각하실 필자조차도 이탈리아 여행의 강력한 희망은 맛있는 피자의 맛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장작에 후르륵 불을 붙여 뜨겁게 타오르는 가마가 있고, 그 옆에서는 얼굴이 좀 까맣고 머리카락은 기름을 바른 듯 새까만 나폴리 녀석이 토마토소스가 얼룩진 흰색 옷을 입고 연신 피자를 두들겨 대는 집의 정경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맛있는 피자집을 고르는 방법을 나는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터득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비법을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무상제공하고자 한다. 자, 이제 귀를 기울여달라. 첫째, 나폴리 스타일을 원하면 가게 안을 척 보면 안다. 장작을 때는 가마가 있고, 앞에서 말한 머리카락 까만 나폴리 사내가 피자를 펴고 있다. 나폴리식 피자는 좀 두껍고 그 대신 크기는 작은 편이다. 물론 반죽 한 덩어리의 무게는 대개 250그램으로 비슷하다. 상당히 많은 양인데, 나 같은 성인 남자가 먹어도 절대 모자라지 않는 양이다-이틸리아녀석들의 먹성은 얼마나 좋은지 피자 한 판은 1인당 기본이고, 전채요리까지 시켜먹는다, 헛 녀석들.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을 꼼짝없이 붙들어 매는 강력한 카테나치오 수비의 힘은 여기서 나오는가 보다. (다음 호에 연재가 계속됩니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11월호 NO.21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