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보다 현실적인 옷을 입는 사람들, 장인 정신보다 참신한 애티튜드, 독특한 창의력보다는 착한 이념으로 가득한 2019 S/S 시즌이 시작된다. 4대 도시를 통틀어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에디 슬리먼이 전개하는 뉴 셀린과 17년 만에 새로운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를 영입한 버버리다. 먼저 런던에서 무려 134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의상을 내놓은 티시는 버버리의 아카이브를 무기로 클래식하고 우아한 룩부터 지방시 시절에 인기를 모은 스트리트 스타일까지 ‘다다익선’을 표방했다. 한편 파리의 에디 슬리먼은 생 로랑이나 디올 옴므를 연상시키는 시그너처 스타일을 고수해 올드 셀린을 그리워하는 이에겐 탄식을 자아냈지만 패션 시장의 소비 실세로 떠오른 Z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어필하며 연일 이슈의 중심에 섰다. 이제 그 첫 시즌의 결과가 어떨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스웨트셔츠와 스니커즈 등의 스트리트 컬처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패션위크 곳곳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취향을 아우르며 ‘판매’를 의식한 움직임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제 그 결과치는 올봄 거리 곳곳에서 관측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틸리티 백과 카고 팬츠를 앞세워 스트리트 대열에 합류한 펜디를 비롯해 발렌시아가는 조깅 수트처럼 편안하지만 날씬하고 우아한 형태의 수트를 내놓았다. 스니커즈와 바이커 쇼츠가 등장한 컬렉션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미학이 폭발하는 예술성은 줄었지만 그 반면 다문화주의, 여권 신장, 친환경 소재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가 늘어났다. 50주년을 맞이한 랄프 로렌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모델로 내세운 100여 벌의 옷을 선보였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흑인 모델을 피날레 무대에 세운 요지 야마모토, 배 부분에 둥글게 부풀린 패드를 덧대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모델을 등장시킨 꼼 데 가르송 등 인종과 체형, 나이를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트렌드가 지배할 전망이다.
여성 인권을 향한 목소리도 여전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강인한 여성상을 녹여낸 루이 비통, ‘여성의 삶’이란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은 알렉산더 맥퀸이 그 예. 한편 공식적으로 모피 사용을 금지한 런던 패션위크까지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려는 진취적인 목소리가 형성됐다. 아티스트와 협업해 볼거리 넘치는 런웨이를 구현하며 눈을 즐겁게 한 브랜드도 많았다. 무용가 새런 에얄의 드라마틱한 안무를 접목한 디올, 미디어 아티스트 존 래프맨과 협업한 멀티 컬러 LED 터널을 선보인 발렌시아가, 호주 출신 아티스트 크리스티나 짐펠의 생동감 넘치는 컬러로 완성한 마이클 코어스가 대표 주자. 2019 S/S 패션위크는 옷 자체가 지닌 디자인의 힘과 창의력은 다소 아쉬웠지만 세련된 여성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모더니스트들은 즐비했다. 실시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SNS 평가와 매출 지수에서 탈피해 하이패션의 권위와 예술적 갈망, DNA를 고수하는 브랜드가 다음 시즌에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