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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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리스> 뻔뻔한 당신을 사랑해요<셰임리스 Shameless> 시즌 9를 조금씩 아껴보고 있다. 미국이라는 기이하고 우스운 사회를 그려내는 각본가 존 웰스의 풍자와 유머도 훌륭하지만, 나를 가장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건 좀처럼 미워할 수 없는 갤러거 패밀리다. 빈민가에 모여 사는, 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은 누구 하나 평면적이지 않다. 상식을 뛰어넘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조울증,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등 온갖 병을 앓고 있으며, 심지어 모두 아버지가 다른 사생아들이다. 무뚝뚝할지언정 등 뒤에선 말없이 서로를 위하고 이해하며, 모난 면도 부정하지 않고 떠안는다. 그중에도 가장 유심히 지켜보고 응원해 온 이는 장녀 피오나다. 피부색도, 취향도 다른 다섯 식구를 억척스럽게 돌보는 가장.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그녀를 캔디형 캐릭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람을 피운 연인 앞에서 보란 듯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투기를 위해 이혼한 남편의 보석까지 파는 그녀는 오히려 안티 캔디에 가깝다. 아홉 개 시즌을 거치는 동안 피오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남자를 만난다. 대개 나쁜 남자들이었지만, 헤어지는 게 아쉬울 만큼 괜찮은 이도 있었다. 션이 그랬다. 이 사연 많은 남자와 함께 있을 때 피오나는 가장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인다. 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전부 근사하지만, 결혼반지를 맞추는 에피소드가 단연 최고다. 반지를 고르기 위해 션과 피오나는 함께 전당포에 간다. 그들이 고른 반지는 안쪽에 ‘클라이드’와 ‘릴리안’이라는 레터링과 결혼날짜가 새겨진 골동품이다. 오래전 그들처럼 시작을 약조했을 부부의 물건을 션과 피오나는 유심히 바라본다.  “세공사에게 이야기하면 레터링을 깔끔하게 긁어내 줄 거예요.” 반지를 새것처럼 세공해 준다는 직원을 향해 피오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니. 절대 안 되죠.”  그런 다음, 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묻는다. “그렇지, 클라이드?” 션은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릴리안.”영원히 사랑할 것 같던 그들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정키였던 션이 남모르게 약을 하고 있단 사실을 피오나가 알게 되면서다. 피오나는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식장을 뛰쳐나간다. 보호감찰을 어겨 감옥에 갔을 때도 멀쩡했던 그녀는 사랑이 무너지자 함께 무너진다.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보다 스무 배는 강한 사람. 동정 따윈 집어치우라는 듯 금세 눈물을 거두고, 웨딩 슈즈 밑창에 담배를 비벼 끈 뒤, 다시 살아가고 사랑한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뻔뻔하게. “너 없인 죽을 것 같다”고 피오나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소리친다. 뻔뻔하지만, 뻔하지는 않은 사랑이다. 이런 인물을 그리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더 살고, 더 써야 할까. -성해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