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것> 사랑이란 이름으로
좋은 사랑은 뭘까?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모든 것>을 본 이후 이 질문이 거머리처럼 붙어 있다. 스무 살에 만난 사람은 내게 “너의 이런 면들이 좋아. 이렇고 그런 면이 좋은 게 아니라 ‘너’가 이렇고 저래서 좋은 거야. 그러니까 네가 너라서”라는 궤변으로 나를 설레게 했다. 이젠 입에 담기도 활자로 쓰기도 간지러운 단어가 주는 감정(러브 말이다. 러브)을 생전 처음 느꼈다. 처음 느낀 이 감정을 다룰 줄도 몰라서 굉장히 서툴렀다. 가장 지우고 싶은 흑역사는 실습 과제로 쓴 희곡을 그에게 보여준 일이다. 거기엔 이상한 여자가 나온다. 사랑하는 남자를 밀랍으로 뜬 여자. 헤어질 때 나는 그에게 이런 말로 사죄했다. “네가 아니라 내 감정을 사랑했던 것 같아.”
<너의 모든 것>의 남자 주인공, 조 골드버그가 연인 귀네비어 벡과 이별한 지 10년쯤 되면, 이런 회상을 할지도 모른다. ‘사랑이었나?’ 둘의 러브 스토리는 이렇다. 뉴욕의 한 서점에서 일하는 조. 어느 날 햇살 가득 품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벡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를 연인으로 만들겠다고 즉시 결심한다. 구애는 요즘 방식이다. 벡의 SNS를 염탐한다. 위치 태그가 친절히 알려주는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간다. 모든 걸 본다. 남자친구와의 잠자리, 취향, 심지어 벡이 혼자서 즐기는 은밀한 모습까지. 관음욕 충족과 정보 수집을 마친 조는 벡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방해가 되는 요소는 모두 제거한다. 그녀를 ‘몸친’으로 이용하는 전 남친, 그녀를 ‘몸종’으로 여기는 베프는 조에게도 벡에게도, 그리고 세계에도 해롭다. 그래서 저세상으로 보낸다. ‘이런 나쁜 인간은 죽어도 싸.’ 이것이 조의 명분이었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갈팡질팡하던 벡은 제자리를 찾는다. 그토록 원하던 좋은 글도 쓰고 책도 낸다. 공은 물론 안정적으로 보살펴준 그에게 있다. 10편으로 구성된 시즌 1의 9화쯤, 예상대로 벡이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절규하는 벡을 밀실에 가둔 조는 “벡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못 넘을 선이 없어요”라고 울부짖는다. 그녀는 결국 조의 손에 죽는(것으로 암시된)다. 조가 그녀의 습작을 모아낸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됨으로써 죽은 벡은 자신의 꿈을 이룬다. 책을 어루만지며 조는 말한다. “최선을 다해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원하던 걸 줬으니 거기에 만족해요.” 이 백마 탄 소시오패스의 사랑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살인 빼곤 조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관음이 좀 찝찝하긴 한데, 좋아하는 사람을 훔쳐보는 일에서 자유로운 이가 있나?). 조는 그녀를 진짜로 사랑했고, 벡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전 남친과 베프는 그저 남을 이용한 것뿐이다. 세상은 전자를 ‘범죄자’라고 하고, 후자는 ‘옛사랑’과 ‘우정’으로 기억한다. 좋은 사랑은 뭘까? 다시 질문해 보지만 답은 여전히 답보다. 그게 있긴 한가? -류진(프리랜스 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