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문제의식을 솜씨 좋게 풀어내는 이야기꾼, 김은희 작가. 그녀가 신작 <킹덤>으로 돌아왔다::김은희, 작가, 킹덤, 좀비, 싸인, 유령, 쓰리 데이즈, 시그널, 드라마, 인터뷰, 엘르, elle.co.kr:: | 김은희,작가,킹덤,좀비,싸인

코트는 Nouvmaree. 이너로 입은 가죽 재킷은 Wnderkammer. 셔츠는 Low Classic. 팬츠는 COS.  안경은 Stealer.수트는 Ava Molli. 셔츠는 Wnderkammer. 풀오버는 COS. 앵클부츠는 Stuart Weitzman. 안경은 Muzik.<조선왕조실록>의 ‘이름 모를 괴질에 걸려 수천수만 명의 백성이 숨졌다’는 구절에서 <킹덤>의 세계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이야기를 이끈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원래 좀비물을 좋아했어요. 좀비는 주로 공포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도구로 쓰이는데, 저는 좀비 떼가 몰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슬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좀비는 식욕만 남은 크리처잖아요. 굶주림이라는 슬픔이 조선의 불평등한 시대상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고, 그 이야기에 살이 붙기 시작했어요. 이름 모를 괴질이 좀비처럼 죽은 사람이 죽지 않는 병이라면? 만약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 <28일 후>에서 좀비의 기원이 바이러스였다면, <킹덤>에선 배고픔과 탐욕이에요. 기존 좀비물과의 변별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현시대의 약자와 소외된 진실, 거대 권력의 부조리를 풀어낸 작품을 써온 작가가 사극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어요. 의문의 역병을 매개로 백성의 굶주림과 권력자의 탐욕을 그린 <킹덤>의 근원적인 주제도 전작들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시그널>의 기획 단계 때부터 꼭 쓰고 싶은 대사가 있었어요.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시대는 더 나아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변치 않는다고 생각해요. 가진 자들이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은 늘 존재해 왔어요.사극에 좀비물이라니, 이전 작품들보다 완전히 새로운 변화 혹은 진화이기도 해요 작가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결국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고민하게 되죠.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노력하다 보니 <킹덤>이 나오게 됐어요.어쩌다 좀비물에 빠지게 됐나요 평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왜 장르물을 쓰세요?” 저는 긴장감이 있어서 좋더라고요. 멜로물도 ‘그 남자가 진짜 그녀를 사랑할까?’라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좋아요. 좀비물은 극적 긴장감이 연이어 구현될 수 있는 장르예요. 평범한 사회가 좀비의 출몰로 혼란에 빠지고,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쳐오면서 긴장감이 더 커져요. 그 속에서 사람들은 변해가죠. 어떤 이는 좀비가 되어 잔인함이 극대화되고, 또 어떤 이는 남을 배려해요. 그런 이야기들이 무척 재미있어요.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역병의 비밀을 파헤치는 왕세자 역의 주지훈과 왕보다 더한 권력을 탐하는 야욕가 역의 류승룡은 모두 사극 경험이 있어 비주얼이 어느 정도 예상되지만, 의녀 역할을 맡아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 배두나는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킹덤>의 이야기는 지금의 부산 지역인 동래에서 시작해 한양에서 마무리돼요. 의문의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 땅끝에 온 왕세자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가난한 무사, 천민 출신 의녀, 양민, 탐관오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해요. 두나 씨가 맡은 의녀는 역병을 해결하려는 인물로 드라마의 키를 쥐고 있어요. 사실 두나 씨가 출연 제안을 수락해 줄지 반신반의했어요. 이 역할을 맡아준 것도 고마운데 진정성 있는 눈빛과 말투로 대본을 너무 잘 살려 연기해 줬어요. 편집본을 보고 두나 씨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죠(웃음). 저도 처음에는 두나 씨의 비주얼이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됐어요.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귀여워요. 사극이다 보니 이마를 드러냈는데, 커다란 눈이 더 커 보여요.몇 달 전 <엘르>와의 커버 인터뷰에서 배두나는 창작자들에게 넷플릭스는 최고의 플랫폼이라며, “김은희 작가님도 원 없이 죽이고 싶은 만큼 쓰셨다”고 했어요 맞아요(웃음). 얼마나, 어떻게 죽이든 넷플릭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진짜 개입이 없었나요 정말 그랬어요. 넷플릭스 본사에서 한국어를 몰라 제재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어요. 서로 합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기획 의도에 대한 공감대를 확실하게 가졌던 것 같아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려면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중요해요. 저는 청사진을 보여줄 뿐이고 감독, 배우, 제작자, 투자자 모두와 잘 맞아야 해요. 타이밍도 굉장히 중요하죠. <킹덤>은 2011년에 처음 기획했어요. 그 당시 영화계에서도 좀비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장르였고, 흥행 코드도 아니었어요. 넷플릭스에서 작품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왔을 때 <킹덤>과 잘 맞겠다 싶었어요.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제작하는 첫 오리지널 드라마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책임감이 있었나요 이번뿐 아니라 매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많이 부담스럽고 떨려요. 대중적으로 잘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까? 시청률은 잘 나올까? 온갖 걱정을 하게 돼요. ‘전파 낭비’라는 말이 있는데, 1시간 남짓 시청자들의 시간을 가져가면서 절대로 가치 없는 이야기는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상업 드라마는 철학적 메시지까지 담지 않더라도 적어도 재미있어야죠.1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킹덤>이 공개되면 많은 이들이 6개의 에피소드를 ‘정주행’할 거예요. 어떤 시간이 되길 바라나요 늦은 밤에 맥주를 마시며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주말 밤 맥주와 함께 <킹덤>을 보는 것을 추천해요. 취기가 올라 덜 무서워질 즈음 좀비가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웃음). 사람들이 그렇게 하룻밤 동안 휴식 같은 시간을 보냈으면 해요.중학교 때부터 소설 같은 걸 썼는데 짝꿍이 그걸 읽기 시작해 반 전체, 전교에서 돌려봤다고 들었어요. 내가 쓴 작품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급변하는 환경에 놓인 드라마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만날 작업실에 갇혀 있는 처지라 잘 모르겠지만, 플랫폼이 무엇이 됐든 결국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봐요.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와 투자가 플랫폼을 정의하게 될 것 같아요. 얼마나 더 넓은 시선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얼마나 투자하는지가 관건인 거죠. 콘텐츠는 플랫폼에 맞춰 만들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바라는 건 재미있는 주말 드라마, 재미있는 미니 시리즈,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해요.‘한국형 수사물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싸인> <유령> <쓰리 데이즈> <시그널>은 모두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과 긴박한 전개로 돋보였어요. 모든 플롯을 생각해 두고 계획대로 작업하나요 어슴푸레 결말을 만들어놓아요. 그리고 그걸 향해 달려가죠. <시그널>은 ‘재한이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결말이 출발점이었어요. 계획을 세우고 들어가더라도 결국 중간에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감정선이 어떻게 흘러가면 좋을지 정도만 구상할 뿐 모든 내용을 미리 만들지는 않아요.시청자들은 예전보다 눈이 높아지고 똑똑해졌어요. 이를 마음에 두며 쓰나요 사실 작가가 훨씬 유리한 게임이에요. 이미 모든 내용을 알고 있고,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이 달라지거든요. 그렇지만 시청자들을 속이려고 퍼즐처럼 이야기를 어렵게 만드는 건 큰 의미는 없어요. 어차피 눈치가 빠른 사람은 금방 알아채요. 그보다는 감정선에 더 많은 신경을 쓰려고 해요. 재미를 주기 위해 반전을 만들 수 있지만, 캐릭터의 감정이 무너지면 안 돼요.<킹덤>은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또 만들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야기가 있나요 시대극도 있고 호러물도 있고 SF도 기획 중이긴 한데, 때를 잘 만나야 해요. 넷플릭스와 작업하기도 했지만 작품마다 맞는 플랫폼과 사람, 운때가 있어요. 기다리다 보면 하나씩 만들게 되지 않을까요.쓰기 어려울 것 같은 장르는 여전히 로맨스물인가요 세상에 사랑이 어디 있어요? 식고 마는 거죠(웃음). 로맨스 장르는 불가능할 거예요.국내외를 막론하고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제가 워낙 양조위 팬이에요. <중경삼림> <동사서독> <무간도> 등 작품이 나오는 족족 양조위가 너무 좋았어요. 그와 <색, 계> 같은 시대극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만나야 할 텐데.개인적으로 어떤 캐릭터에 끌리나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주인공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글을 쓸 때 지향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어요. 신념이든 꿈이든 뭔가 포기하지 않는 인물인데, 제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나 봐요.작품 속 캐릭터 중 자신을 반영한 인물도 있나요 그런 건 없지만, 비슷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밤새워 수사하느라 머리가 까치집이 됐는데도 답을 찾지 못해 고민에 빠진 수사관’일 것 같아요(웃음).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계속 회의를 하고 의견을 들어요. 소설은 혼자 열심히 써도 되지만 대본은 그럴 수 없어요. 100명 가까운 스태프가 대본 하나에 매달려 있거든요. 많은 사람의 의견에 귀를 열어놓아야 해요. 제가 40대 후반의 아줌마인데, 아무리 뉴스 기사를 많이 찾아본다고 해도 딱 저만큼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안 되는 걸 혼자서 끌어안고 있어봤자 정답은 안 나와요.창작 과정에서 이러다 내가 미치겠다 싶은 순간도 있나요 항상 그래요.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 은퇴해야 하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겨우 하나 건져요. 이런 삶이 순환하기 때문에 미쳐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한 작품이 끝나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드라마 작가로 꿈꾸는 엔딩은 무엇인가요 치매가 오기 전까지도 대본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그때까지 최대한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작가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