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에게 남은 것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인싸와 셀럽파이브, 미투운동 등 2018년 우리의 삶을 강타한 키워드를 모았다::평창올림픽, 금메달, 인싸, 인싸언어, 셀럽파이브, 난민, 아파트, 평양냉면, 핑거 스냅, 어벤져스, 미투, 문화, 컬쳐, 엘르, elle.co.kr:: | 평창올림픽,금메달,인싸,인싸언어,셀럽파이브

금메달평창동계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이란 단어에 얼마나 많은 드라마가 담겨 있는지를 보여줬다. 기록을 매개로 한 자신과의 싸움, 승부를 넘어선 우정, 순도 100%의 땀과 투혼. 금메달은 자판기처럼 아무나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단련된 육체와 정신을 통해 한계를 넘어선 능력자들의 경쟁에서 챔피언이라는 지위는 더욱 가치가 있다. 수술대에 일곱 번 오른 끝에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선 스케이터 임효준,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승자가 된 윤성빈은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이고 인정하게 된다. 변방이었던 한국 여자 복싱 최초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성취한 오연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카누 용선 여자 남북 단일팀의 금메달이 시대의 상징성을 지닌다면, 승자의 자격을 되짚어보게 한 금메달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남자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은 병역 특례 논란으로 얼룩지며 찝찝함을 남겼다. 과연 받아야 할 선수가 받았을까? 확실한 건, 보는 사람들이 다 고마울 정도로 진심이 와닿았던 이상화의 은메달과 무게를 저울질했을 때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알 것 같다. 부당한 처우 속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여자 컬링 대표팀의 은메달은 또 어떤가. 모두의 욕망이 좇는 금메달의 명암이 어느 때보다 선명한 그림을 남긴 해다.평양냉면평양냉면이 ‘인싸’의 음식으로 통한 건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미식가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와 평양냉면을 미식가를 가르는 척도라며 찬양했다. 대중들은 인싸가 되기 위해 앞장서 평양냉면을 먹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평냉힙스터들이 음식 취향에까지 위계를 세운다며 그들의 ‘평냉부심’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도 생겼다. 그 과정에서 신흥 세력에 속하는 냉면집들도 여럿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4월 평냉힙스터는 물론 반대 세력까지 평양냉면 앞에 줄 서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이 진짜 평양냉면 맛을 보여주겠다며 제면기를 이고 온 것이다. 또 ‘멀리서 온 평양냉면’이라고 입을 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며 자신의 말을 주워 담은 농담 한마디에 사람들은 열광하며 그날 점심 평양냉면집으로 향했다. 때 이른 평양냉면 열풍은 성수기인 여름을 거쳐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때 기업 총수와 연예인들의 옥류관 먹방이 생생히 전파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한에서 인싸의 음식으로 변질될 뻔한 평양냉면은 남북을 아우르는 관용의 음식으로 거듭나며 인기를 쭉 이어갈 전망이다.인싸2018년은 만인의 인싸를 위한 투쟁의 해였다.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가 되기 위해 줄임말을 배우고, 트렌드를 익혔다. 숫자로도 확연하다. ‘인싸’로 검색되는 총 879건의 기사 중 약 850건이 2018년에 쏟아졌다. 사실 인싸가 있기 전에 아싸(아웃사이더)가 있었다. 2006년부터 언론은 혼자 강의실을 배회하고, 혼자 밥을 먹고, 그러면서도 소통에 메말라 PC 앞에 앉아 각종 커뮤니티를 모니터하는 대학생에 주목했다. ‘아싸’는 아웃사이더와 달랐다. 90년대의 아웃사이더가 무법자(Outlaw), 고독한 사람(Loner)이라는 뜻을 품은 낭만의 말이었다면 21세기의 ‘아싸’는 냉소의 단어다. 지금의 아싸는 그저 돈 없고, 멋없고, 돈 없어서 멋없다고 생각하는 ‘외톨이’가 자신을 일컫는 자조의 말일 뿐이다. ‘인싸’는 아싸가 다수인 가상세계의 소수자다. 소수자는 놀림받는다. 원래는 현실세계에서 주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현실세계에서나 즐거움을 찾는다는 의미로 ‘리얼충’의 개념이 붙었다.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 워터파크를 가본 사람은 모두 ‘리얼충’이고 곧 ‘인싸’다. 사실 언론에서 지금 인싸 용어라 말하는 대부분의 신조어는 아싸들이 노는 가상에서 만들어지고 퍼졌다. 어쩌면 2018년 ‘인싸 언어’의 창궐은 오히려 가상 언어가 현실을 점령하고 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셀럽파이브“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 올 한 해 여성 코미디언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셀럽파이브의 데뷔곡 ‘셀럽파이브’의 인상적인 첫 구절을 반드시 인용해야 한다. 아리아나 그란데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대로 무대 위에서 춤추고 놀고 싶다는 김신영의 소원을 들은 송은이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로 한다. 기획자로서 판을 벌이는 것.셀럽이 되고 싶어? 그러면 돼보지 뭐!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김숙과 자신의 재기의 발판으로 만들고, 그 판을 덧대 웹 예능 콘텐츠를 생산하며 사업을 확장하던 송은이에게 셀럽파이브는 재능은 있지만 뛰어놀 판이 없는 여성 후배 코미디언을 위한 판이었고, 자신이 여전히 플레이어로서 활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판이기도 했다. 그 이름이 ‘판벌려’인 것은 당연하고도 의미심장하다. 김신영과 안영미, 신봉선, 김영희가 분장(화장이 아니다)을 하고 나무랄 데 없는 K팝에 각 잡은 안무를 펼치는 무대는 곧바로 화제를 모았고, 그룹이 결성되고 곡을 선정하고 연습이 진행되는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며 더 큰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시즌2. 김영희의 명예졸업 후, 그룹명의 숫자와 멤버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포미닛, 나인뮤지스, 최근의 구구단을 생각해 보라)에서 이미 걸그룹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셀럽파이브는 컴백을 위한 합숙을 시작했다. 시상식 시즌에 컴백을 결정한 이들은 지니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저희 좀 키↘워↗주세요!” 데뷔 연도를 합치면 67년이지만 이제 발견돼 행복하다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며 어떻게 남성 중심의 예능 문화에 균열을 내는지 지켜보는 일은 연말과 연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가장 흥미로운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아파트120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아무리 소박해도 한 ‘채’ 정도는 가져야 흡족할 것 같은 게 아파트다. 그러다 지상에 내려오면 한 ‘칸’을 갖는 게 소원으로 바뀌지만. 옛날에는 하늘 신을 최고로 쳤다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신은 대지의 신이다. 땅값 신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일은 그 땅에 매여 있는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관리하기 좋다. 반대로 관리받기도 편하다. 1인 가구 거주자가 평일 낮 시간에 택배 하나만 받아봐도 알 수 있다. 전화로 집 찾는 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물건 받아줄 사람을 힘들게 찾지 않아도, 그 물건은 별탈 없이 안전하게 전달된다. 그런 편리한 것들의 리스트가 수십 가지나 되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편리한 삶의 조건을 유지하는 장치들, 특히 사람들은 그렇게 탄탄한 기반 위에 놓여 있지 않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큼직큼직하게 세워져 있던 경비실 중에는 이제 쓰지 않는 곳이 여럿이다. 관리사무소 직원보다 아파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잘 대답해 주던 경비원은 이 시대 가장 나쁜 노동조건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22세기 사람들이 사극을 찍을 때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보편적이고 특이하게 다뤄질까? 가끔은 윗집의 윗집에 아는 사람이 살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는 삶. 어쨌거나 우리 중 상당수는 올해도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로의 ‘값’을 살펴보면서.난민올여름 세계인들이 현재 제일 중요한 이슈가 난민 문제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유럽에서 개발돼 전 세계로 전파된 지금의 국제정치 체제는 인간의 직관을 배신하는 체제다. 국가 위에 세계가 있는데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없다니! 세상의 지배자 없이 무슨 수로 세계를 통치한단 말인가! 지구인들이 택한 해법은 개별 국가들이, 특히 조금 큰 나라에 속하는 국가들이 지구인 모두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나눠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국적이 다르고 우리 정부에 세금을 낸 적 없는 인간을 왜 보호해야 하느냐는 물음은 꽤 직관적이지만, 세상의 왕 없이 세상을 통치하는 이상한 체제 아래에서 이 직관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내가 책임자는 아니라 해도, 난민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꽤 큰 나라에 사는 지구인이라는 점은 사실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꽤 큰 나라는 어떤 인간을 보호해야 할까? 우방국 국민? 성실한 약자? 냉전시대 적대국들 사이에서 맺어진 우주조약에는 각국이 보호해야 할 인간의 범위가 이렇게 나와 있다. 우주에 나와 있는 모든 인간을 인류의 대표로 간주해서 보호할 것. 지상은 우주만큼 위험하지 않다지만, 지구도 생각만큼 안전한 행성은 아니다.핑거 스냅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우주의 절반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타노스의 엄청나고도 충격적인 ‘핑거 스냅’ 앞에서 속으로 외쳤더랬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거나 말거나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동안 마블은 흥행 주판을 튕겼을 것이고, 경제학자들은 인류 절반이 소멸해야만 우주가 균형을 이루어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타노스의 소신 앞에 맬서스의 ‘인구론’을 다시금 튕겼을 것이며, 팬들은 마블 개국공신들의 계약기간을 머리로 튕겼을 것이다. 마블의 10주년 기념작이자, 마블 유니버스의 첫 번째 챕터를 종결 짓는 <인피니티 워>는 그렇게 거대한 ‘떡밥’을 투척하며 마블 성공 신화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꿈이 현실화되는 기막힌 순간들을 목격해 왔다. 바로 히어로들이 서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가 되는 과정을 말이다. 무엇보다 차기 작품에 대한 단서를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흘려대는 마블의 전략은 실로 놀라웠다. 이 모든 것들이 치밀한 전략에 따라 끈기 있고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마블의 사업 수완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마블이 바꾼 건 단순히 히어로 세계의 균형만이 아니다. 그들은 할리우드 산업의 지형도 자체를 흔들어버렸다. 쫄쫄이를 입은 히어로들이 할리우드 산업 노른자위에 군림하게 되리란 건 10년 전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개국공신과도 같은 몇몇 히어로와 작별할 기로에 서 있는 마블의 다음은 어디로 향할까. 타노스라는 매력적인 빌런 이후, 마블은 허약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악당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아, 마블의 ‘떡밥’은 너무 맛있어서 상상만으로도 즐겁다.여자라는 문제올해 여자들은 자각했고 분노했고 서로 위로했다. JTBC <뉴스룸>에서 서지현 검사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증언한 이후, 여기저기서 용기를 낸 여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미투’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같고도 다른 사연들은 ‘여자라는 문제’가 내 인생과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성들의 서늘한 자각을 이끌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던 불편함과 불공정함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특정 이슈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연대의 움직임도 생겨났다. 그래서 이 세상은 좀 더 나아졌을까? 모든 것을 걸고 용기를 낸 여성들은 2차 피해로 고통받고, 정작 가해자들은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 숨거나 면죄부를 얻고 있다. 여전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전달되는 언론 보도, 편협한 논리로 남녀 대결을 조장하는 발언이 SNS를 떠다닌다. 적어도 세상이 ‘여자 때문에’ 시끄러워진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위해 나섰던 모 중학교 학생회의 입장문(올해 읽은 최고의 명문이었다)에서 귀한 문장을 인용할 수 있겠다.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