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린 셔츠와 플리츠 스커트, 레더 코르셋은 모두 Dior. 실버 후크 이어링은 Jennifer Fisher. 메이크업은 모두 Maybelline New York 제품을 사용했다.
오프라 윈프리(이하: OW)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겠어요. 저는 좋은 책을 읽으며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거든요. <비커밍>은 다정하면서도 설득력 있고 강력하고 생생해요.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미셸 오바마(이하: MO) 솔직히 말해 그렇진 않았어요. 사람들은 저한테 자주 이런 질문을 해요.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세요?” “어쩌면 그렇게 친화력이 좋으세요?” 그건 아마도 내가 나를 좋아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간의 험한 역경이나 상처, 실수까지도요. 덕분에 내가 그 누구와도 다른 나 자신이 된 거니까요. 함께 일하는 직원이나 젊은이, 친구를 대할 때도 마음을 활짝 터놓는 편이에요. 또 한 가지는 좋든 싫든 버락과 나는 우리가 ‘롤모델’이란 걸 알고 있어요.
OW 물론이죠
MO 저는 대중의 시야에 노출된 사람들, 심지어 대중의 시선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한 발 물러서서 “뭐, 나는 롤모델이 아닙니다. 그런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게 싫어요. 너무 늦었어요. 이미 롤모델이 돼버렸거든요. 아이들과 청년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자리에 선 나를 보고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여자는 험한 일을 겪어본 적 없잖아. 걱정하거나 두려울 일도 없고, 뭘 알겠어.’
OW 이 책을 읽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리 없어요. 많은 이들이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새로운 삶에 잘 적응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어요. ‘토스트 이야기’가 가장 좋은 예 같아요. 그 얘기 좀 해주겠어요
MO 네, 임기를 마치고 워싱턴의 새 집으로 이사온 직후의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했어요. 현관문과 초인종이 있는 평범한 집에 사는 게 8년 만이었죠. 토스트 일화는 집에서 혼자서 지낸 처음 며칠 밤에 대한 얘기죠. 아이들은 집에 없고, 남편은 여행 중이었던 것 같아요. 퍼스트레이디 시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언제나 집안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경호원과 특수부대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죠. 창문도 맘대로 못 열고 밖에 나가 잠깐 산책만 하려 해도 난리가 나요.
OW 창문도 못 여나요
MO 하나도 열면 안 돼요. 사샤(둘째 딸)가 열려고 한 적 있어요. 금세 전화가 왔어요. “창문을 닫으십시오.”
OW 하하하(웃음)
MO 새 집에서 ‘보’ 하고 ‘서니’(백악관에서부터 키우던 반려견들이다), 셋만 있을 때였어요. 아래층에 내려가서 주방의 찬장을 열었어요. 사실 백악관에서는 이렇게도 못해요. 꼭 누가 “제가 꺼내드릴게요. 뭐가 필요하세요?” 그러니까요. 치즈 토스트를 구워 뒤뜰로 걸어 나갔어요. 계단에 앉아 있으려니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보와 서니한테는 이웃집에 사는 개들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둘 다 얼떨떨한 표정이길래 제가 말했죠. “그래, 얘들아, 우리는 이제 진짜 세상에 사는 거야.” 새로운 삶에 착지하는 바로 그순간이었죠. 지난 8년간 있었던 일을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 거예요. 백악관에서는 성찰의 시간이란 게 없어요. 그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버락과 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여야 했거든요. 어찌나 바빴는지 화요일이 되면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지도 않았죠. 어딜 갔는지도 까맣게 잊어요. 내 전담 팀장과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언젠가 프라하에 가보고 싶어.” “이미 다녀오셨잖아요.”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급기야 프라하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고서야 겨우 기억이 났죠.
샤틴 셔츠와 퀼로트 팬츠는 모두 Sally LaPointe. 보디수트는 Ann Demeulemeester. 다이아몬드 이어링은 Djula. 실버 커프스는 Jennifer Fisher. 다이아몬드 링은 Kallati. 샌들은 Gianvito Rossi.
OW 책을 읽다 보면, 과거의 경험이 이후에 닥칠 일을 준비하는 과정이 된 걸 알 수 있어요
MO 그런 믿음을 가졌을 때 그렇게 되는 거죠. 하나하나 결정이 모여 훗날의 나를 만드는 거라고.
OW 맞아요, 바로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겠어요. 태도점수 A++++ 우등생으로요
MO 돌이켜보면, 맥락을 이해하는 재주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저와 오빠에게 아주 이른 나이부터 독자적으로 생각할 자유를 주셨거든요.
OW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해줬다는 말이죠
MO 네, 그때 깨달은 게 학업적 성취가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이른 나이부터 뭔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특히 사우스 사이드(시카고 흑인 밀집구역) 노동계급 출신의 흑인 아이라면, 사람들이 애초부터 편견을 갖고 대하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렇고 그런 아이’ 취급받는 게 싫었어요. 소위 ‘나쁜 애들’ 말이에요. 사실 나쁜 애들은 없어요. 나쁜 주변 상황만 있을 뿐이에요.
OW 책에서 언급한 구절 중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게 있어요. 티셔츠에 써서 입고 다니고 싶어요. ‘실패는 실제 결과로 드러나기 오래전부터 감정으로 느껴진다.’ 언제 이런 사실을 깨달았나요
MO 아, 1학년 때였어요. 동네 주변이 좋지 않게 변하는 게 눈에 보였죠. 우리 식구들은 1970년대에 그곳으로 이사했어요. 고모할머니가 소유한 집 건너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고모할머니는 교사였고, 고모할아버지는 풀먼 호텔의 포터로 일하셨죠. 덕분에 당시 백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우리 아파트는 어찌나 비좁았는지 거실 하나만한 공간을 방 셋으로 쪼개 놓은 것 같았어요. 두 개는 저와 크레이그 오빠(미셸 오바마의 오빠 크레이그 로빈슨은 미국의 농구감독이자 방송인이다)가 썼는데, 침대 하나가 딱 맞게 들어갈 만큼 좁은데다 나무 판자로 칸막이를 대신해서 서로 하는 말이 다 들렸어요. “크레이그 오빠?” “응?” “난 아직 안 자. 오빠도 안 자?” 그런 거죠. 칸막이 위로 양말을 던지며 놀았어요.
OW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을 정말 아름답게 그리고 있어요. 오빠와 부모님까지 네 가족이 꼭짓점을 이루는 사각형 같다고 표현했죠
MO 정말 그랬어요. 우리는 소박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사 왔을 때는 백인이 주를 이루던 동네가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다수가 됐어요. 그 여파가 지역 사회와 학교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할 수 있었죠. 환경이나 교육에 투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모른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다 느낄 수 있다는 걸요.
OW 부모님이 교육에 많은 걸 투자했다고요. 집을 사지도 않고, 휴가도 가지 않고
MO 네,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바치셨어요. 어머니는 미용실에도 가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교대로 근무하는 노동자였고요. 부모님의 희생을 보고 자랐어요.
OW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고 그 다음에 하버드 법대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시카고의 저명한 로펌에 취직했죠. 자, 이 대목에서 제가 동그라미를 세 개 치고 별을 두 개나 그렸거든요. ‘변호사 일이 끔찍하게 싫었다’고 썼어요
MO 아, 맙소사. 미안해요, 변호사님들.
OW ‘나는 기본적으로 삶을 원했다.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느낌을 원했다.’ 어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외치고 싶은 대목이에요. 왜냐하면 정말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그런 결론에 다다랐나요
MO 저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힘들었어요. 책에서 저는 열심히 별을 따는 꼬마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그 여정으로 독자를 초대해요. 목적의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은 결국 네모 칸에 체크를 하는 인생을 살게 되거든요. 좋은 성적을 받는다: 체크. 최고의 학교에 지원한다: 체크. 법대를 나온다: 체크. 나는 일탈을 몰랐어요.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죠. 그래서 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협소한 인간형에 나를 끼워 맞췄던 거예요. 살면서 상실을 여러 번 겪고 난 후에 생각하게 됐어요. 정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여유를 갖고 깊게 생각해 본 적 있나? 그런 적이 없더군요. 오피스 빌딩 47층에 앉아 판례를 뒤지며 메모를 쓰던 때였어요.
OW 제가 정말 좋았던 점은 모든 독자에게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해준다는 거예요. 겁이 났나요
MO 죽도록 무서웠어요. 어머니는 저희 결정에 간섭하거나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았어요.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었죠. 어느 날 워싱턴 DC에서 업무를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나를 데리러 온 어머니 차를 탔는데, 그때 말했어요.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지는 못하겠어요. 방 안에 앉아 서류만 보고 살 수는 없어요.”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어머니에게 털어놨어요. 그냥 행복하지 않다고요. 열정을 느낄 수 없다고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어요. “돈을 벌어라, 행복은 나중에 걱정하고.” 어머니가 듣기에 얼마나 팔자 좋은 소리로 들렸겠어요. “아, 알았어요”라고 대답했죠. 그래요. 힘들었어요. 그때 버락 오바마라는 남자를 만났죠. 그 사람은 네모 칸에 체크하면서 사는 모범생과는 정반대였어요. 진로를 벗어나 사방으로 일탈하는 사람이었죠.
OW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썼죠. ‘그때까지 나는 내 존재를 세심하게 구축해왔다. 반듯하고 빈틈없는 종이접기 작품을 만들듯이, 훅 풀어지거나 어지러운 부분이 있으면 기어코 쑤셔 넣고 단정하게 접었다…(중략)… 그는 내 모든 것을 헝클어뜨릴지도 모르는 바람이었다.’ 흔들리는 게 불안했던 거죠
MO 아휴, 당연하죠.
OW 이 장면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렸어요. ‘하루는 자다가 깨어보니 버락이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새어든 불빛이 그의 옆 얼굴을 비추었다. 고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약간 심란한 표정이었다. 우리 관계 때문일까?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일까? “무슨 생각 해요?” 내가 속삭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 멋쩍은 듯 웃었다. “아. 소득 불균형에 관해서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MO 우리 남편이 그래요.
OW 하하(웃음). 정말 자세하게 두 사람의 연애를 묘사했어요. 청혼을 비롯한 모든 과정을요. 신혼 시절에 여러모로 달라서 서로 부딪혔던 일에 대해서도 썼어요. ‘남편이 “지금 가고 있어!”라든가 “집에 거의 다 왔어!”라고 말할 때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걸 잘 안다. 한동안은 그 말을 믿었다. 밤마다 딸들을 목욕시키고 나서 아빠가 안아줄 수 있게 자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점점 기다림에 지치는 장면들이 나와요. 계속 ‘지금 가고 있어, 가고 있어’라고 말하지만 버락은 오지 않죠. 그래서 불을 껐어요. 글에서 찰칵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느낌이었죠. 스위치가 꺼지는 소리, 침대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모습. 화가 난 거죠
MO 정말 화가 났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평생의 계획이 다 어그러져요. 특히 모든 걸 다 집어삼키는 일을 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두말할 것 없죠. 정치가 그렇거든요. 버락은 내게 일탈을 가르쳐줬지만, 그가 일으킨 바람에 저는 휘청거리는 거예요. 이제 아이가 둘이나 생겼는데, 그래서 그이가 워싱턴에서 스프링필드를 왔다갔다하는 동안 모든 걸 붙들어 놓고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데 말이에요. 그이는 시간에 관한 한 정말 기가 막힌 낙관주의자에요(웃음). 실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끝없이 그 시간을 채우는 거예요. 접시 돌리기를 하는 곡예사처럼요. 부부로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생겼고,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OW 상담 얘기 좀 해주세요
MO 글쎄요, 상대방한테 내 마음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길 기대하고 상담을 받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편에게 본인의 생각을 직접 말해 보겠어요?”
OW 하하(웃음)
MO 정말 놀랍게도, 상담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 마음을 탐색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드레스는 Cushnie. 드롭 이어링은 Jenny Bird. 오른손의 반지는 Dinosaur Designs.
OW 이런 문장도 있어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이가 집에 없으면 왠지 불안했다.’ 현대 여성이, 그것도 퍼스트레이디가 이런 감정을 인정하는 글을 보니, 뭔가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MO 저는 늘 불안감에 시달려요. 그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거기서 느끼는 슬픔을 남편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어요. 버락은 거리감을 저와 다르게 이해하거든요. 아시다시피 그이는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한 날은 거의 없지만, 어머니가 깊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알아요. 저는 항상 사랑은 아주 바짝, 가까이 붙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불안감을 솔직히 터놓되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했어요. 그게 제 변화의 여정에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우리가 되는 법을 알게 된 것.
OW 제가 몹시 값지다고 생각한 점은, 사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죠.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을 뿐이에요. 그런데 훨씬 더 행복해진 거죠
MO 그래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버락을 이상적인 부부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상적인 관계)#RelationshipGoals라는 해시태그가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다들 아셔야 해요. 결혼생활은 정말 힘들거든요!
OW 심지어 말다툼할 때도 두 분이 다르다고요
MO 아, 그럼요. 저는 불 붙은 성냥 같아요. 화르륵 달아오르는 거죠. 반면 남편은 만사를 이성적으로 논해요. 그래서 그이는 내가 화날 일을 만들고 나면, 1분이든 1시간이든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고 그 다음에 내 방에 들어와야 한다는 걸 배웠죠. 화난 상태에서는 나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어요. 논리로는 내 감정을 바꿀 수 없다는 걸요.
OW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남편의 대선 출마를 허락하게 된 건가요? 책에서 보면, 누가 버락한테 그 질문을 할 때마다 “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대답했다던데요. 그 말은 “미셸의 허락이 떨어져야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MO 그런 짐을 짊어진다는 상상을 해보세요. 그이가 할 수 있을까, 해야 할까, 정말 하고 싶어 하나? 주 의회를 거쳐 국회로 진출해서 미국 의회로 진출하고 싶어 할 때도 그랬어요. 남편의 인품이야 누구보다 잘 알죠. 뭐든 해결책을 찾아낼 만큼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추하고 고약한 정치가 남편의 성정에 맞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이가 그런 환경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죠.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 세계가 맞닥뜨린 문제들이 산적하잖아요. 살아가면서 신문을 읽을수록, 이 문제들이 얼마나 크고 복잡한지 실감하게 되죠. 그러다 생각했어요. 이 남자만큼 재능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지? 인품과 재능, 공감 능력, 고도의 지성. 그거 아세요? 이 남자는 한 번 읽은 건 잊지 않아요. 게다가 달변이죠. 무엇보다 “이거야말로 내가 할 일”이라는 진심 어린 열정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아내의 모자를 벗고 시민의 모자를 쓰게 됐죠.
OW 최초의 흑인 대통령 가족이라는 데 압박감이 있었나요
MO물론이지요. 출마하는 시점부터 압박감을 느꼈어요. 일단 흑인도 승리할 수 있다고 본진부터 설득해야 했어요. 심지어 아이오와에서 승리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먼저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죠. 왜냐하면 우리 조부모님 세대의 흑인 어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든요. 물론 우리 세대를 위해서는 그런 바람이 있었지만, 그간 삶의 경험으로는 “안 돼. 될 리가 없어”라고 믿어버렸어요. 그분들에게는 힐러리한테 거는 게 훨씬 안전한 내기였어요. 유명했으니까요. 미국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을 연다는 것, 그 자체가 지나치게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버락이 아이오와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야 “그래, 어쩌면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OW 그러니까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남편한테, 유일하게 기댈 어깨를 내어줄 사람이 된 거죠. 어떻게 그런 책임을 떠맡았어요? 지금도 어떻게 해내고 있나요
MO 그이가 정해진 길을 벗어날 때마다 침착해지려고 애써요. 나뭇잎이 휘날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그의 삶에서 든든한 나무줄기가 돼서 버텨야 해요. 가족과의 저녁 식사. 그게 백악관에 제가 가지고 들어간 한 가지에요. “여보, 당신도 우리 삶을 알고 따라가야 해요”라는 엄격한 규율이었죠. 그것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거였어요. 그래요, 당신은 대통령이에요.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서 잠깐 일어나서 식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있잖아요. 그때만이라도 매일 쏟아지는 문제를 잠시 잊고 호랑이를 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거죠. 그게 말리아(큰 딸)의 제일 큰 목표였어요. 그 애는 남편의 대통령 임기 내내 호랑이를 구하는 일에 매달렸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들으며 가족의 현실과 행복에 푹 젖는 거죠. 우리는 백악관에서 행복을 담당하는 쪽이 되고 싶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OW 선거 유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쳤다는 얘기도 쓰셨어요. ‘시끄럽게 허황된 암시를 던지는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리고 이 일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굳이 이런 발언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요
MO 트럼프가 제대로 알고 벌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한테 이건 게임이었어요. 하지만 국가 지도자로서 맞닥뜨리는 위협은 현실이에요. 또 아이들의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예요. 우리 아이들이, 물론 경호원이 따라다니더라도, 어쨌든 평범한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 애들은 우리와 달리 언제나 세상 속에 있어요. 어떤 미친 사람이 갑자기 우리 남편이 이 나라의 안전에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해 버리면 어떻게 해요.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에 가고, 축구 경기나 파티에 가고 여행을 해야 하잖아요. 그건 무모한 짓이었어요.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렸고, 심지어 사실도 아니었어요. 트럼프 본인도 사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고요.
OW 그렇죠
MO 백악관 재임기간 중에 옐로 오벌 룸(Yellow Oval Room; 관저 집무실)에 총탄이 날아들었어요. 어떤 미친 사람이 길 건너편에서 총을 발사한 거죠. 총탄은 유리창 왼쪽 상단을 맞췄어요. 지금까지도 눈에 선해요. 가족이 함께 앉아 있곤 했던 발코니 쪽 창문이었죠. 그곳은 우리가 바깥 공기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어요. 다행히 당시 밖에 나가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총을 쏜 범인도 체포됐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위험을 안고 사는지, 날마다 그 유리창을 보면서 떠올려야 했어요.
OW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가치에 대해 말하며 <비커밍>을 끝맺고 있는데요. ‘한편으로 나는 한 번의 선거, 한 명의 지도자, 한 건의 뉴스보다 더 크고 강한 힘을 붙들고 있으려고 애쓴다. 그 힘은 바로 낙관주의다. 내게는 일종의 신념이자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다.’
MO 그래요. 우리는 그런 낙관주의를 견지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요. 그 애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면서 나쁜 것을 줄 순 없잖아요. 희망을 물려줘야 합니다. 진보는 두려움으로 이룩할 수 없어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말이지요. 두려움은 겁쟁이들이 리더십을 거머쥐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희망과 낙관을 품고 이 세계에 태어나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아이들은 자기가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그렇게 말해줄 때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낙관주의를 지킬 책임이 있는 겁니다. 세상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해요.
OW 이 나라, 우리의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느끼나요
MO (눈물을 글썽이며) 반드시 그래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