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부터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사용된 공동묘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알리스캉.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영상 한 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랑이, 코끼리, 타조, 양, 라마 등 동물들이 구찌의 고딕풍 크루즈 의상을 입은 인물들과 함께 대거 출현해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배에 오르는 영상이었다. 뒤이어 배 위에 올라탄 사람과 동물들 위로 폭우가 퍼붓는 가운데 항해를 떠나는 내용의 이 영상은 글렌 루치포드가 만든 또 다른 역작. 이 영상은 에디터의 기억 속(지난여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펼쳐진 크루즈 컬렉션 현장)의 감동을 환기시켰다. 마르세유 공항에서 출발해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 연안 길을 차로 3시간 동안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마르세유의 요란함과는 달리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시골 마을 분위기가 감도는 아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풍경이 된 곳이자 세잔에게 풍요로운 영감을 준 아를의 ‘알리스캉(Alyscamps)’이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택한 구찌 크루즈 컬렉션 장소였다. 알리스캉은 4세기부터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였던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서 깊은 명소. “알리스캉은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이지만 단순히 묘지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700년대에는 산책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두 가지 의미가 결합된, 공동묘지인 동시에 공동묘지가 아닌 곳입니다. 저는 이처럼 무언가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엘르> 코리아와 함께 이날 한국 대표로 참석한 엑소의 카이는 빈티지 체크 재킷과 팬츠, 스트라이프 셔츠, 니트를 입었고, 뉴욕 양키즈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카신과 크리스털 장식의 헤드피스로 팬들의 시선과 포토그래퍼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이곳으로 전 세계의 프레스와 패션 피플을 초대했다. 이끼로 뒤덮인 고대의 석관이 줄지어 서 있는 오솔길을 따라 촛농이 괴기스러운 형태로 녹아내린 고딕풍 촛대들이 길 양옆에 배치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내리자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런웨이 주변을 에워싸며 피어오른 작은 불꽃이 산책로 끝의 생토노레 교회에서부터 거대한 불길을 만들며 어둠을 쫓아냈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드디어 구찌 크루즈 컬렉션의 룩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테의 장편 서사시를 금빛 자수로 수놓은 벨벳 드레스에 케이프를 걸치고 부케를 든 19세기 미망인부터 호랑이 무늬 프린트의 스키니 팬츠와 네온 컬러 벨트 백을 매치한 80년대 펑크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고대 묘지에서부터 기원한 다양한 시대의 영감과 하우스 코드들이 폭발하듯 펼쳐졌다. 중세의 고딕 룩과 빅토리언 시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부터 펑크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핼러윈데이 퍼레이드 같은 런웨이에서 미켈레가 선보인 룩의 수는 무려 114벌. 예상을 벗어나는, 경계가 없는 스타일링은 화려한 액세서리 매치로 더욱 파워플해졌다. 기괴하면서도 유니크한 액세서리들과 중세부터 현대의 스트리트 신의 모티프에 이르는 방대한 요소들을 명민하게 믹스매치한 미켈레의 구찌 크루즈 컬렉션.룩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신화 속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가득 펼쳐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꼬리를 삼킨 뱀을 형상화한 우로보로스(Ouroboros)가 프린트된 르벨 핸드백,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몸에 염소 뿔과 다리를 지닌 파우누스 프린트로 장식된 핸드백, 샤토 마르몽(Chateau Marmont) 호텔의 세탁물 가방에서 영감을 받은 숄더백, 더블 G 장식의 오스트리치 핸드백, 스터드 디테일의 뉴 셰이프 핸드백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빅토리언풍의 카메오 주얼리, 깃털 장식 패시네이터, 조개 모양 귀고리와 목걸이 등은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제의 스타일의 자수 코트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즈비그니에프 프레이스네르가 작곡한 추모곡 ‘라크리모사’의 선율과 불꽃 속에 펼쳐진 피날레가 쇼의 클라이맥스! 그러나 쇼의 절정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붉게 타오르던 런웨이의 불이 꺼진 후, 무대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의 푸른빛을 연상시키는 조명으로 바뀌었다. 푸른 밤이 찾아온 생토노레 교회 뒷마당에서 펼쳐진 애프터 파티 무대 위에 엘턴 존이 오른 것! <엘르> 코리아와 함께 크루즈 쇼를 감상한 카이를 비롯해 400여 명의 관객은 거장 뮤지션 엘턴 존의 깜짝 공연으로 한 차례 더 뜨거운 열기 속에 빠져들었다. 미켈레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아티스트’로 절친 엘턴 존을 소개하면서 잊을 수 없는 공연이 펼쳐졌다. 크루즈 쇼가 있기 바로 얼마 전, 마지막 투어 공연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를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직후라 그의 공연은 보는 이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Rocket man’ ‘Your song’ ‘I’m still standing’ 등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부르는 동안 미켈레는 맞은편에 앉아 이를 지켜봤고, 간혹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두 사람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알리스캉에서의 산책’이라고 적힌 초대장을 들고 미켈레의 안내를 따라 석관이 줄지어 선 오솔길에서 시작된 한밤의 무덤가 산책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겼다. 삶과 죽음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산책로 위에 고대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영감이 과감한 믹스매치 속에 얽히고설킨 패션 축제. 미켈레의 크루즈 룩 속에서 잊힌 패션 판타지가 그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