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너무 외로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취업 준비에 분주한 실업녀와 먹은 건 나이밖에 없는 삼류 깡패가 이웃집 사촌이 된다. 이들이 이 험란한 세상에서 무심코 사랑에 빠지다니 뭔가 사고 좀 치지 않을까?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촬영 현장에서 주연배우 박중훈과 정유미를 만났다.::내 깡패 같은 애인, 김광식, JK필름, 박중훈, 정유미, 동철, 세진, 엘르, 엣진, elle.co.kr:: |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JK필름,박중훈,정유미

"다 나가 주세요!"정유미가 사진을 열심히 찍는 포토그래퍼에게 외쳤다. 하지만 "왜 그러지?"라고 반문할 필요는 없었다. 애교에다 장난끼 넘치는 목소리였다. "내 방 노출은 안 돼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곳은 양수리 세트장이다. JK필름이 제작하는 촬영 현장이다. 정유미가 연기하는 세진의 방에 슬쩍 들어가자 그녀가 장난을 친 것이다. 아담한 세트장을 구경하다가 세진의 반지하 방에서 오순도순 마주 앉아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물어보았다. 바로 코 앞에서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서 그런지, 무척 쑥스러워하며 머뭇거리다가 "세진은 나와 성격이나 주변 상황이 다르다. 보통 여자라고 하는데 사실 초반에는 감이 안 왔다."라고 말했다. 최근 시사회에서 정유미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말 현장에서 만난 그녀는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길이 있으니 갈 뿐이다. 시나리오가 있으면 연기한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떻게 좋은지 고민 중이다"라고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기자 앞에서 능숙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자신의 연기를 자랑하는 것이 농축도 높은 연기자들의 기본 기술이다. 그러나 정유미는 아직 자신의 모습과 연기에 대해 꾸밀 생각이 없어보였다. 후배가 힘들게 답변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그녀와의 호흡을 맞추는 대선배 박중훈이 그녀를 변호하고 나섰다. "정유미는 이런 배우입니다!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 없는 스타일의 배우죠"라며, 그녀의 이런 솔직한 면이 장점이라고 칭찬을 했다. 박중훈이 뽑은 정유미의 장점은 역시 뭘 해도 신선하다는 점이었다. 신선도! 그건 박중훈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일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박중훈은 안 해 본 역할이 없다. 24년 동안 연기하며 임권택 감독의 까지 40편의 영화를 찍었다. 대한민국 배우 중에 박중훈만큼 깡패 역할을 많이 소화한 배우도 없다. 그가 보여준 최고의 깡패 연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1994)이었다. 비린내 나는 청춘의 욕망과 처절한 죽음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에선 옆집 사는 백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깡패 동철로 나온다. 이젠 중년의 나이에 다시 깡패로 돌아온 것이다. 제작팀이 촬영 내내 박중훈이 날이 서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기본 좋게 날카로움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랫만에 깡패로 변하는 박중훈에게 그런 긴장이 필요했다. 현장 분위기를 듣다 보니 박중훈에게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변화도 자기복제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난 친숙하나 신선도가 떨어진다. 신선함을 얻으려하면 부자연스러워진다. 예전 내 모습에 신경쓸 것은 없다.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영화가 새로우면 내가 신선해진다." 에서 왕년의 명가수 최곤 역을 연기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기에, 연기에 대한 고민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엔 삼류 깡패를 연기하기 위해 6킬로그램 정도를 감량했다. 물론 김명민에 비할 수 없는 감량이지만, 단순히 외형적인 차이를 주는 게 아니라 멘탈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착실한 마음이었다. "배고플 때 연기가 좋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몸이 훈제된 느낌을 받고 싶었다"는 말에서 박중훈의 철저한 준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한동안 내 에너지를 죽이는 연기를 했다. 내 스스로의 검열이었다. 에너지를 절제를 위한 무의식이 작동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넘치는 영화에 대한 갈증도 있다. 아무래도 발산하는 연기가 편하다"라고 털어놓는 모습에서 영화를 좀 더 편하게 즐기고 싶은 심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취업준비생과 옆집 깡패의 이야기를 그린 은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일까? 김광식 감독에 따르면, 놀랍게도 느와르도 코미디도 아니다. "드라마 톤으로 진행을 했다. 일상적으로 보면 된다. 를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영화는 드라마와 사람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웃긴 부분조차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관객에게 맡긴다. 안 웃어도 상관 없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색채를 보이지만 결국에는 밑바닥 인생의 아픔을 담아내는 드라마로 수렴한다. 시나리오는 만화책처럼 가볍게 휙휙 넘겨지지만, 로맨틱 코미디라고 치부하기에는 진중하고 무거운 맛이 있다. 김 감독은 "세태 고발은 아니고,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들어갔다"고 말하지만, 은 소외된 비주류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깡패인 동철(박중훈)은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살지만, 정작 싸움 실력은 형편없는 깡패다.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갔다 오면 키워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이렇다할 대가도 받지 못한다. 지방대 출신의 세진(정유미)은 이력서를 넣어봤자 속전속결로 떨어지기만 하는 백수다. 간신히 취직한 회사도 3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런 두 사람이 연인이 된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두 배우의 화학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두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는 "그건 기운이다"라고 박중훈이 딱 잘라 말했다. "유미는 자기 기운이 있는 배우다. 그래서 호흡이 잘 맞는다"면서 스스로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로 현장에서 확인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날 공개된 영화 현장은, 면접을 보고 온 세진에게 동철이 화를 내는 장면(#59)이었다. 박중훈이 "취직시켜 준다고 자고 왔냐?",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자든지!"라고 까칠하게 잔소리하며 정유미에게 화를 버럭 낸다. 인터뷰 중에는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이 실제로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열일곱 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막 시작하는 커플처럼 아기자기해 보였다. 알콩달콩, 유치한 투정마저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건 어떤 연유인지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촬영이 끝났다. "컷, 오케이!" 사족 하나. 그렇게 촬영장을 떠나면서 뜬금없이 감독에게 부탁하고 싶어졌다. "시나리오 읽다가 동철이 죽는 줄 알고 가슴이 아파었어요! 죽이면 안 돼요." 다행히 감독 역시 그를 죽이기는 싫단다. "그깟 취직이 뭐라고? 사람까지 죽여!"라고 웃으며 반문한다. 자신도 동철이 끝까지 세진의 성공을 지켜봐 주길 원한다니, 관객 또한 동철의 마음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