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차분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연애를 할 때만큼은 제법 과감해지곤 했다. 은혜가 프랑스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남자와 연애를 했을 때 친구들 모임에서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준 적이 있다. 침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찍힌 은혜의 모습이었다. 쇄골 선까지만 드러나 있었지만 나체 상태에서 찍힌 사진일거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사진은 동적인 어느 순간을 잡은 듯 했고 은혜의 얼굴 옆모습이었지만 절반의 표정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는 게 느껴졌다. 은밀한 사생활의 한 장면이었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누가 찍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누가 찍자고 제안을 했을지는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궁금하더라구.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나는 내 표정을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부탁을 했어. 나를 찍어달라고.”
은혜는 애인이 사진을 전공했으니 그 재능을 활용해도 좋을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지만 그런 부탁을 하면 이상한 욕구를 가진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진 않았냐고 뒤이어 물었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내 폰을 달라고 하더라. 자신의 카메라나 폰으로 담아선 안 될 장면이니까. 나만 소장하라고 말야. 그런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흥미로웠던 건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더라구요. 그가 만났었던 다른 여자들도 그가 자신의 표정을, 몸짓을, 나체를, 서로 사랑하는 순간을 촬영해주길 바랐었대.”
은혜나 그가 만난 여자들이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알고, 선명하게 요구했다는 점이 멋있었다. 일종의 자기애가 섞여있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순간을 기록해두는 일이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찍어준 자신의 은밀한 순간을 남기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선택한 일이었다. 서로 동의 하에 하게 되는 일이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 그 자체로도 색다른 전희가 될 일이었다.
또 하나 부러웠던 것은 사진에 드러난 태도였다. 사진을 찍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서 피사체가 되는 여성을 박제시켜 어떤 콜렉션을 만들어 불건전한 욕구를 채우려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 자체가 산뜻했다. 자기 욕망이 아니라 여자들이 바라는 걸 담백하게 담아내고 끝끝내 자신의 소유로 묶어두려 하지 않으려는 게 느껴졌다.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그게 느껴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남기는 것에 초점에 맞춰진 것이지 끈적하고 음습한 욕망의 기록물이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사진을 전공했던 남자들은 나보다 내 고양이 사진을 더 많이 찍어갔다. 나는 왜 사진 찍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도 그런 사진을 한 장 남겨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다. 요즘처럼 몰래 카메라 쵤영과 리벤지 포르노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시기에 너무 위험한 시도가 아니냐고, 애초에 그런 것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엄숙하고 도덕적이고 일면 옳은 얘기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이고 은밀하고 외설적인 사진을 찍는다고 그 자체가 사회 규범적으로 문제될 일은 아니다. 말 그대로 사적인 영역에서의 일이니까. 그걸 문제로 만드는 건 다른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진을 찍고 남기고 싶어하는 여자의 욕망이 아니라, 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남기고 혹은 그렇게 둘이서 간직하기로 했던 사진을 빌미로 이별 후에 여자에게 복수를 할 목적으로 공개를 하거나, 공개를 빌미로 협박을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길 원했던 여자의 행실은 따질 문제가 아니다. 쟁점은 거기게 있지 않다. 여자가 원했던 일이다라는 말은 물을 흐리고 남 탓을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명백히 범죄가 되는 행위에만 집중해야 할 일이다. 어떤 연유로 협박에 이르게 되었다 할지라도 성적 잣대가 기울어져 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생활이 담긴 사진으로 협박하는 것의 불손한 의도에 집중해야 한다. 그걸 마치 정당한 권리 행사라도 되는 것마냥 구는 상대 남성이 문제라는 것에 쓸데없는 토를 달 필요가 없다.
은혜는 2년을 더 그 남자와 연애를 했고 결국에는 헤어졌다. 그 둘 사이에 남은 사진이 그때 보았던 그 한 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은혜는 둘 사이에 찍었던 사진 때문에 곤란할 일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은혜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동안 매달렸던 그 남자가 사진을 빌미로 은혜를 괴롭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추억은 그대로였다. 그를 사랑했던 침대 위의 은혜의 모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추억을 악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사진의 존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