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A Sempe힘을 쫙 빼고도 감각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잉가 상페. 그녀는 패브릭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여성 디자이너이자 모든 디자인에서 매우 공학적인 접근에 능하며, 어떤 경우에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귀중한 감각을 선보인다.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 내내 당신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나는 늘 복잡한 시스템이나 기계적인 시스템에 흥미가 있었고, 작가 미상인 모든 지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었다. 나의 잦은 벼룩시장 방문으로 인해 디자인계 내부에서는 내가 교양이 낮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반면, 일반 사물 세계에서는 내가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 비춰진다. 어떤 물건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이 물건이 옛날에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일상용품들이 사람들에게 점점 잊히다가 결국 사라져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늘 흥미로웠다. 생활 속 소품에 대한 관심은 나를 이끄는 힘이기에, 기념비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하지는 않는다.만약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에 종사했을까 드라마를 쓰는 극작가나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가 됐을 것 같다. 아니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됐을 수도 있다. 개인의 사적인 부분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여성 디자이너로 살면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요즘 같은 세상에도 여자들은 기술적인 면에 식견이 없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런 편견 때문에 여성 디자이너에게 제안조차 하지 않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물론 정치권에도, 의료계에도 여성들은 있다. 하지만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는 그나마 운이 좋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변화의 의지가 있으니. 그러나 나머지 국가들은 실망스럽게도 진전의 조짐조차 없다.당신이 디자인을 시작한 이래로 여성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프랑스만 놓고 보면 80년대 이후로 변화가 그리 많지 않았다. 디자인계의 여성 이슈에 관한 한, 현재는 이탈리아가 프랑스보다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협업 기회도 열려 있고, 중요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성에게 맡긴다는 측면에서 앞서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큰 회사들은 제품 생산보다 광고 작업을 위해 디자이너들을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관점이 캐리커처화된 면이 없지 않다.디자인이 이 사회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업들의 생산방식을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힘이 내게 있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품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선 그 어떤 큰 변화도 보지 못했다 현재 열중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현재 이탈리아 타일 브랜드 무티나(Mutina)와 함께 새로운 타일 컬렉션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해이(Hay)와 함께 소파 등을 작업하고 있다. 마지스와 함께 파이프 라인 프로젝트도 하고 있고,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마티아치(Mattiazzi)와 협업한 컬렉션은 최종 단계에서 마지막 손질을 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건 후크, 자물쇠, 빗장 볼트 같은 철물점에서 주로 판매하는 공구나 하드웨어 제품 디자인을 시도해 보고 싶다.PATRICIA URQUIOLA다른 여성 디자이너에 비해 규모가 큰 작업을 많이 했지만, 누구보다 섬세하고 우아한 터치를 가미한 디자인도 다수 발표했다. 가장 성공한 여성 디자이너로 꼽히면서도 여전히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고 치열하게 배워서 늘 새롭고 짜릿한 뭔가를 내놓는다.많은 직업 중에서 디자이너를 택한 이유는 나는 늘 창의적이면서도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10대 시절에 기술적 추론과 창의성을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건축가라는 것을 알았다. 디자인이라는 직업은 훨씬 나중에 고려하게 됐는데, 그때가 바로 밀란에 도착한 시기였다. 밀란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만약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에 종사했을 것 같나 나는 항상 손으로 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왔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쉽게 끝마칠 수 있다. 순수미술을 했을 수도 있고, 미술이 나를 지치게 했다면 아마도 헤어 디자이너가 됐을지도(웃음).커리어 면에서 롤모델 혹은 영감의 원천이 된 사람이 있다면 처음에는 가족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삼촌들과 사촌들이 건축가였고,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다. 고모 중 한 명은 아티스트였다. 고모는 바틱 염색부터 납 세공까지, 내가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 기법을 탐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머니는 또 인테리어 디자인에 심취해 있었다. 어머니는 직접 가구를 만들곤 했는데, 아직까지 그 가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진짜 원동력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암울했던 프랑코 독재정권이 붕괴된 이후 포스트-프랑코 시대를 살아온 의욕적인 세대이다. 당시 스페인은 엄청난 자유와 해방의 시간을 경험했다.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게 안락한 스페인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다. 나를 부추겨 관심사와 열정을 따르도록 용기를 준 것도 내 호기심이고, 나를 밀란으로 데려온 것도 바로 그 호기심이다.오늘날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디자인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여성들이 이전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위치에 오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소수 집단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여성으로서, 이탈리아에 사는 스페인 사람으로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소수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강한 신념과 확신도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도 많이 높아졌고, 이 세계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중이다. #미투 운동이 번진 올해에는 변화의 바람이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많은 소녀들이 어린 나이에 받았던 격려와 칭찬을 통해 스스로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학생 시절에 기술 과목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이 내가 건축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이유였다.여자라는 사실이 당신의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내 경우 개인 스튜디오를 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해결해야 할 일이란 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오히려 내가 가졌던 편견, 다른 사람들의 편견과 씨름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동일한 양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성별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을 발전시키는 데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남녀를 구분 짓는 것부터 생각이 시작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모든 소수 집단을 배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현재 열중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현재 몇몇 호텔 프로젝트와 다수의 프라이빗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카시나 본점의 아트 디렉션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데, 내게 이 작업은 새로우면서도 한층 이타적인 경험이다. 모든 이들의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한 집단에 전적으로 봉사하는 일이다. 나는 주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 일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