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팩트 사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소셜 미디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디지털 슈퍼모델, 미켈라와 슈두를 만났다 ::릴미켈라, 인스타그램스타, 인플루언서, 슈두, fenty, 컴퓨터그래픽, 아바타, 판타지, 엘르, elle.co.kr:: | 릴미켈라,인스타그램스타,인플루언서,슈두,fenty

가상의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lilmiquela과감히 자른 앞머리와 헝클어진 더블 번 헤어, 울긋불긋한 주근깨가 매력적인 19세의 인스타그램 스타, 릴 미켈라(Lil Miquela). 브라질계 미국인 미켈라는 LA에 거주하며 스케이트보드를 즐길뿐더러 탁월한 패션 감각(프로엔자 스쿨러, 발망, 알렉산더 왕을 즐겨 입는다)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그녀의 데뷔 싱글 앨범 은 스포티파이에서 열풍을 일으켰고, 사회운동(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에도 활발히 관여한다. <V매거진>, <하이스노바이어티>에도 사진이 실렸으며, 밀란에서 열린 프라다 2018 F/W 시즌 쇼 홍보에 지지 하디드가 입었던 오렌지 코트를 입고 참여하기도 했다. 하디드와 미켈라의 인연은 그전에 시작됐다. 지난가을 하디드는 미켈라에게 트위터를 날린 적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인기가 많나요?(Hey gurrrrl, you’re too major for comprehension.)” 미켈라의 팔로어는 100만 명이 넘으며, 그녀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시크한 친구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한 사진에서는 마거릿 장과 파스타를 먹고 있는가 하면, 다른 사진에선 조반나 바타글리아 엥겔베르트의 어깨에 다정하게 기대고 있다. 하지만 쌓인 집안일을 두고 몸서리치거나 빨래를 하고, 뉴욕으로 가기 전에 여행 가방을 싸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인스타그램 스타는 슈두(Shudu)다. 비교적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합류한 슈두의 팔로어는 10만 명이 넘는다. 짧게 바짝 자른 머리에 아름다운 흑색 피부를 자랑하는 그녀는 지난해 황금빛 초커를 두른 누드 사진을 처음으로 포스팅하며 주목받았다. 지난 2월에는 주황빛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사진을 리한나의 펜티(Fenty) 뷰티 라인이 리포스팅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제 막 떠오르는 인플루언서에게는 가능성을 검증받는 꿈 같은 일일 것이다. 다만 충격적인 사실은 슈두와 미켈라는 현실세계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탄생한 아바타이며, 인간 패션계를 흔들기 위한 시도의 일환인 것. 팬들에게 두 ‘여성’의 등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주류가 돼버린 진부한 블로거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미켈라와 슈두는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들의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여느 떠오르는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미켈라는 완벽한 PR 머신을 가동하면서 자체 브랜드 상품을 비롯해 다방면으로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하이패션계도 기꺼이 동조했다. 패트 맥그래스는 그녀를 뮤즈로 선정했고, 프라다 또한 미켈라가 등장하는 브랜드 홍보 GIF를 선보이며 그녀를 ‘불가사의한 사이버 모델’이라 칭했다. 3월에 그녀를 구글 행아웃으로 인터뷰할 때만 해도 미켈라에 대한 경계심이나 악의적인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 “오늘은 곡 두 개를 끝낼 생각이에요.” 인터뷰 당시 그녀가 보낸 메시지다. “그래서 지금 스튜디오 한구석에 숨어 있어요.”(웃음)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실존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그녀는 “지금 저랑 이렇게 채팅하고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파트너십을 통해 금전적 대가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거부했다(“흠, 그건 매니저한테 물어봐야겠네요”라면서). 그리고 앞으로 무언가를 더 공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저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줄 생각에 들떠요.” 그녀가 말했다. 미켈라의 거대한 폭로는 4월 초에 이뤄졌다. 그녀의 계정을 다른 아바타가 해킹한 것. 트럼프를 지지하며, 금발에 푸른 눈을 자랑하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버뮤다라고 알리며 계정을 장악했다. 버뮤다는 325개가 넘는 미켈라의 포스트를 삭제하고 자신의 포스트 6개를 올렸다. 미켈라에게 정체를 공개하라고 종용하면서 말이다. 미켈라의 포스트는 기존의 ‘좋아요’ 수와 텍스트를 포함하여 모두 복구됐다. “한 로봇이 다른 로봇의 인스타그램을 해킹한 것 같은데, 우린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건가요?” 누군가가 이렇게 코멘트를 달았다. 미켈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밝혔다. “저는 로봇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저는 제 자신이 꼭 인간처럼 느껴지는데 말이죠.” 그녀는 긴 포스팅에 이렇게 썼다. SF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일련의 사건들로 미켈라와 버뮤다의 창조자가 밝혀졌다. 브루드(Brud)라는 LA에 기반한 인공지능 스타트업으로서, 30대의 DJ이자 레코딩 아티스트, 프로듀서인 트레버 맥페드리스(Trevor McFedries)가 설립한 회사다. 대대적인 홍보 효과를 누리며 브루드가 펼친 이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세간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세계 최초의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 황금빛 초커를 두른 누드 사진이 그녀의 첫 포스팅이다. ⓒshudu.gram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미켈라는 ‘해킹’을 당한 날 100만 단위를 찍을 만큼 많은 팔로어를 얻었으니까. 그다음 주에는 브루드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600만 달러를 지원받는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들이 얻어낸 실질적 이득은 패션계에서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어마어마한 유저들의 시선이다. 한편 슈두가 일으킨 화제는 조금 달랐다. 팔로어들은 그녀가 진짜 사람이라 믿었고, 미디어는 그녀를 ‘세계 최초의 디지털 슈퍼모델’이라 불렀다. 그녀는 사실 한 젊은 영국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다. 그의 이름은 캐머런-제임스 윌슨(Cameron-James Wilson). 그가 슈두를 만들게 된 것은 거의 우연이나 다름없다. 고향으로 돌아온 28세의 윌슨은 창의력을 발산하고 영감을 얻을 만한 취미를 찾고 있었다. 우선 바비인형을 채색하는 일을 해보았다. 열정적인 바비 수집가 그룹에 합류했지만 왠지 성가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SF영화광에 게임광인 ‘괴짜’ 윌슨은 3D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뮤즈와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주(Princess of South Africa)라는 바비인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슈두가 탄생한 것이다. 윌슨이 10년 가까이 사진 리터치를 하며 쌓은 내공 덕에 슈두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슈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첫 포스트에서 그녀는 빛나는 황금빛 배경을 뒤로하고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앉아 있다. 시선은 사진을 보는 이를 곧바로 응시하면서. “다들 물었죠.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윌슨이 말한다. 궁금증은 점점 커져 윌슨의 허를 찌를 정도였다. 그녀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망은 분노로 이어졌다. 적대적인 사람들은 윌슨이 실제 모델에게 크레딧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를 숨긴다며 비난했다. 슈두를 둘러싸고 형성된 수많은 의문은 그녀의 인기를 더욱 치솟게 했다. 윌슨은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어떤 확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슈두를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더 많아요.” 윌슨이 말한다. 그런 이유로 윌슨은 그의 10대 여동생의 조언에 늘 귀 기울인다. 리한나의 인기 있는 펜티 화장품 라인을 적용하고 그 제품들을 태그하는 것도 여동생의 조언에서 비롯된 것. 윌슨과 슈두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준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만들어낸 것이 밝혀지자 반발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착취라는 비난도 있었다. 한 교수는 그가 ‘인종 표절(Racial Plagiarism)’을 저지른 셈이라고 주장했다. 윌슨은 슈두를 통해 어떤 수익도 얻지 않았으며, 실제 모델로부터 일을 빼앗아올 의향도 없다. 슈두는 그저 다양성을 더욱 수용할 필요가 있는 이 업계에 그 다양성을 조망하는 존재라고 그는 말한다. 윌슨이 슈두의 이미지 한 장을 만드는 데 꼬박 3일이 걸린다. 그 전에 2주간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쳐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은 8~10시간 정도 된다. 패션 광고나 에디토리얼 스프레드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 작업과 달라진 게 있다면, 리터처로 일하던 시절에 열심히 제거하던 얼굴의 솜털을 이제는 더 열심히 만든다는 것. “슈두를 통해 자연스러운 결함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한다. 완전히 디지털로 만들어진 모델들은 친구와의 다툼, 얼굴의 솜털 등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더한 ‘결함’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진정성에 대한 인간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 인플루언서들은 “일종의 판타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제 사람들”이라고 윌슨은 말한다. 한편 슈두는 “현실세계로 들어오고자 하는 판타지의 인물”이라고 덧붙인다. 아마도 미래의 소셜 미디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가가 중요해졌다. 포토샵에 대한 박해도 과한 필터 사용과 얼굴 보정의 남발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모두를 원한다. 판타지와 팩트.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리를 잘 잡은 이들이 성공적인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지금 패션 생태계의 흐름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