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런던의 신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예측 불가능한 아이디어와 확고한 패션 철학으로 런던의 라이징 디자이너로 떠오른 찰스 제프리와 새뮤얼 로스::찰스제프리,새뮤얼로스,디자이너,런던,라이징디자이너,패션디자이너,패션계,패션,엘르,elle.co.kr:: | 찰스제프리,새뮤얼로스,디자이너,런던,라이징디자이너

CHARLES JEFFREY LOVERBOY찰스 제프리런던의 아파트에서 포착한 찰스 제프리.시몬 로샤, 몰리 고다드, 버질 아블로,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와 마린 세르,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공통점은? 모두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것. 이쯤 되면 LVMH 프라이즈는 누가 봐도 명백한 ‘차세대 스타 디자이너 양성소’로 불릴 만하다. 올해의 후보에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Charles Jeffrey Loverboy)의 찰스 제프리와 어콜드월(A-Cold-Wall)의 새뮤얼 로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에게 ‘성공적인 비즈니스’란 단지 훌륭한 컬렉션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신중하게 빚어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고 디지털 고객까지 끌어들이는 마케팅 방식으로 통한다. 찰스 제프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는 이스트 런던의 근사하게 꾸민 아파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장 난 식기세척기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그는 가전제품 수리보다 자기표현에 더 집중하는 듯했다. “셀카를 찍고 있었어요.” 데님 재킷과 플라워 프린트 스커트로 멋을 낸 제프리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런던을 베이스로 활약 중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 라이징 스타는 기상천외하다 싶을 만큼 독보적인 스타일로 패션 월드의 초특급 신예로 떠올랐다. 스스로 자신의 컬렉션을 ‘판타지의 악취(A Stench of Fantasy)’라 부를 만큼 성별이 확실치 않은 논 바이너리 정신과 범상치 않은 형태의 옷, 퍼포먼스로 채워진 무대는 런던 패션위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며, 꼭 봐야 할 쇼로 거듭났다. 또한 이번 F/W 시즌, 제프리는 원시적인 페이스 페인팅을 한 모델들이 관객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쇼의 스토리와 연극성, 퍼포먼스는 옷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하죠.” 일부 비평가들은 원시예술과 유사했던 새 시즌 컬렉션을 소싯적 알렉산더 맥퀸의 강렬함에 비유하기도 했다. 쇼 시작 직전, 모델들의 상태를 최종 점검하는 모습.독특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2018 f/w, 2019 s/S 컬렉션.제프리는 또래 아이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10대 때 <아레나 옴므 플러스>를 수집하고, 드라마 <윌 앤 그레이스> 스타일을 흡수하면서 패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퀴어로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옷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옷은 나만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만들었죠. ‘이게 바로 나예요. 나랑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렇게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데 옷만큼 용기를 준 존재도 없었어요.” 그는 18세에 런던으로 건너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입학해 전설적인 교수 루이스 윌슨(Louise Wilson) 밑에서 8년 동안 패션을 공부했다. 그 후 잭 윌스와 디올의 인턴십을 경험한 후 리테일 패션계에 발을 들였고,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를 론칭해 거침없이 솔직한 런웨이를 선보이고 있다. 일부는 패션을 향한 그의 진심이 깃털처럼 가벼울 것이라 오해하지만, 실은 그가 패션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만만치 않다. 2015년 런던의 게이 클럽 ‘보그 패브릭스(Vogue Fabrics)’에서 러버보이를 선보인 후 레이블 자금을 모으기 위해 파트타임을 4개나 병행했을 정도.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매치스패션에 이름을 올릴 만큼 브랜드를 키우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 이어졌지만, 2017년 패션 어워즈를 통해 그간의 노력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다. 베르사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독특한 메이크업을 한 채 존 갈리아노가 수여하는 남성복 부문 신인상을 거머쥐었으니까. “부기 댄스를 추러 갈 거예요!” 수상 소감에서 그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는데, 이 점이 바로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가 탄생하는 에너지이자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한편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을 땐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고. “우리의 논 바이너리 정신이 최종 후보에 오르는 데 큰 영향을 줬어요. LVMH와 같은 회사들은 우리를 지원할 책임을 갖고 있지요.” 물론 우승 여부에 상관없이 게이 클럽 ‘챕터 10’은 언제나 그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꾸밈없이 솔직하고 유쾌한 그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전 항상 마지막엔 스피커 위에서 춤을 추죠!”피날레 인사를 건네는 찰스 제프리.A-COLD-WALL*새뮤얼 로스컬렉션의 영감이 되어준 인스퍼레이션 보드 앞에서 모델과 포즈를 취했다.새뮤얼 로스는 때때로 이 세상 어디쯤에 자신이 있는지 생각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은 피팅을 점검하기 위해 런던에 머무르고 내일은 밀란, 그다음 날엔 리테일 매장 설치를 마무리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할 예정. 그야말로 48시간 안에 수천 마일 떨어진 3개국을 오가야 하는 상황. “진짜 바쁘지만” 하고 그가 침착하게 운을 뗐다. “이 상황이 부담스럽거나 싫지 않아요. 오히려 무척 즐거워요.” 런던 기반의 레이블 어콜드월(A-Cold-Wall)을 이끄는 26세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복잡한 스케줄과 시차 적응은 중요하지 않다. 패션을 통해 런던에서 자라온 경험, 디자인과 순수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까. 일명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그는 단순히 의류 레이블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프로젝트를 타이틀로 내세우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엄격한 예술가 정신을 바탕으로 요즘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서브컬처 요소를 더한 앵글러 후디드 티셔츠와 멀티포켓 코트, 테크니컬 패브릭 팬츠 등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인데,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강인하게 접목한 그의 옷들은 틀에 박히지 않은 매력이 특징이다. “런던의 노동 계층과 상류층의 삶에서 ‘교집합’을 포착해 내고 싶었어요. 콘크리트 자갈로 이뤄진 건물과 이즐링턴의 대리석 바닥으로 덮인 빅토리아 시대의 주택들은 모두 ‘차가운 벽’을 가지고 있어요. 이 둘은 계층과 상황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런던을 대변하죠.” 새뮤얼 로스는 자신이 콘트리트 건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브릭스턴에서 태어난 후 어릴 적에 런던을 떠난 그에게 패션은 언제나 지위와 위치 그리고 자기표현과 연결돼 있다. 열두 살 때 나이키나 아디다스 운동화를 살 수 없어 울었던 일, 불법 음반을 사고팔았던 열다섯 살의 경험은 여전히 그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유틸리티 룩을 아티스틱하게 재해석한 ‘어콜드월’ 컬렉션. 로스는 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기 전인 18세에 이미 첫 티셔츠 레이블을 시작했는데, 그의 옷을 보고 버질 아블로가 직접 연락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제 옷을 본 모양이에요.” 로스가 차분하게 말한다. 그 후 그의 팀에 합류해 3년간 버질 아블로의 첫 브랜드인 파이렉스 비전부터 이지, 후드 바이 에어, A. P. C, 스투시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런 경험들은 독자적인 레이블을 선보이는 데 진정한 토대가 됐죠. 버질과 함께하며 배운 건 팀워크의 중요성이었어요. 그에게 팀워크는 ‘잘 만들어진 옷’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죠.” 버질에게서 독립한 후에도 로스는 그를 ‘형제’라 부르며 서로를 멘토이자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 이들의 브랜드는 현대적이고 대담한 그래픽과 놀라운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로스는 두 브랜드를 비교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와 전 스트리트 웨어와 하이패션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고민해 온 세대예요.” 더불어 로스는 “창의적인 표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다”고 강조한다. 셀프리지스와 바니스 뉴욕 입점을 포함해 실제로 어콜드월을 구매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걸 보면 확실히 그 효과는 입증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안정적인 디자인은 전혀 관심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런 옷을 만들었으니까요.” 로스는 자신을 패션계의 ‘이단아’로 생각한다. 런던에서 흑인이자 영국인으로 자라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았기에, LVMH 프라이즈 최종 결선에 오른 일은 의외의 결과였으니까. “제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저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죠. 요즘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좋아요.” 그는 마지막 답변을 건넨 후, 밀란으로 향하는 짐을 꾸리기 위해 약혼녀 제니퍼와 딸 제네시스가 있는 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