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풍경은 이렇다. 쉬는 날 잠을 좀 늦게까지 자고 늦은 오후에 친구를 만난다. 가로수가 보이는 창가 쪽이나 테라스가 있는 펍을 찾아 짜증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헤맨 후 끝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앉는다. 그러고는 맥앤치즈를 시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캬~ 좋다… 내가 이러려고 돈 버는구나’를 새삼 느낀 후 바깥 풍경을 보며 친구와 요즘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는 것이다. 그때(이런 날엔 햇빛이 짱짱하게 내리쬐는 게 중요하다) 마침 리온 브릿지스의 ‘Bad bad news’가 흘러나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요즘처럼 불쾌지수 높은 서울에서도 여유 있는 오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선사하는 행복은 아름답다. 파리지엔도 부럽지 않을 만큼. - 박세진(옥상달빛)일단 모 커피 회사의 “여름엔, 아이스커피” 노래를 입에 달고 산다. 실은 커피보다 홍차를 훨씬 더 자주 마시면서…. 음료는 클린켄틴 텀블러에 담는 걸 좋아한다. 5년 넘게 사용했는데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얼음을 넣으면 세 시간 정도 녹지 않아서 여름철의 긴 산책에 딱이다. 그렇게 산책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 들르곤 한다. 서울에 좋아하는 미술관은 많지만 시립미술관 로비에 들어설 때 온도가 훅 떨어지는 느낌이 특별하다. 에어컨 바람의 차가움과는 다른, 오래된 건물의 서늘함이다. 얼마 전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정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 다른 분야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자극이 되고 힘이 된다. 시립미술관 근처에는 콩국수가 무척 맛있는 진주회관이 있다. 콩국수를 아주 천천히 먹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일행 없이 혼자 찾아가곤 한다. 국물 한 모금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여름이 완연하다. 배 속이 너무 차가워졌다 싶으면 다시 긴 산책을 한다. 어딘가 타일이 깔린 길이 좋다. 타일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가벼운 리넨 옷을 열기구처럼 부풀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뭐니 뭐니 해도 여름의 가장 근사한 덕목은 밤이 늦게 온다는 점 아닐까? 여덟 시가 되어도 지지 않는 해에게서 어쩐지 응원을 받는 듯한 기분이 되곤 한다. “괜찮아, 지금부터 시작해도 좋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 정세랑(소설가)올해 나의 여름은 타지에서 시작됐다. 일을 그만두고 홧김에 유럽행 비행기를 끊어버린 탓이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한시도 빠짐없이 여름이었다. 유럽의 여름은 내가 아는 계절과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해변에 널브러져 시간을 보냈다. 세이탄 리마니아, 니스, 바르셀로네타…. 태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쉽게 갔다. 이들은 그을림과 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환한 얼굴로 여기저기에 퍼져 있었다. 다양한 나이, 각자 다른 굴곡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어떤 부정 없이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에 크게 매혹을 느꼈다. 어느 날엔가 벌겋게 탄 얼굴로 숙소에 돌아와서 잠들었다가 깼다. 나는 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 있었는데, 타임라인을 훑어보니 장마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내가 있는 곳까지 눅눅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기는 참 촉감을 닮아서 그 안에서 나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박을 깍둑썰기 하던 엄마, 젖은 머리칼로 선풍기 앞에 앉아 있던 언니, 뜨거운 손을 내 목에 갖다 대던 장난스러운 연인, 맥주를 들이키며 함께 춤을 췄던 친구들까지.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겪은 낯선 여름의 잔상을 전하고 그리운 사람들과 여름을 즐기고 싶다. 나는 두 개의 여름을 모았다. 이 조각은 잔열처럼 내게 오래갈 것이다. - 황예지(사진가)WATCH긴 밤을 위한 정주행 리스트  <빨간머리 앤 시즌 2> 작은 마을 에번리가 좀 더 분주해졌다. 시즌 2 마지막화의 제목 ‘우리 세상, 선의와 함께’처럼 드라마는 이방인, 성소수자, 독신녀, 다른 인종을 향한 편견을 앤과 친구들이 포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 또한 조금 더 세상을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 넷플릭스  <랜선라이프> 대도서관, 윰댕, 벤쯔, 씬님. 그야말로 ‘레전드급’ 유튜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인 크리에이터들의 일상은 어떨까? 무난하게 흘러갈 뻔했던 이 관찰 예능은 유튜브 세상에 궁금한 것투성이인 두 언니 MC 이영자, 김숙의 입담과 만나 경쾌해졌다. JTBC <언내추럴> 자연스럽지 않은 시신에는 분명 이유가 있기 마련.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법의학자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여성 캐릭터들 때문이다. 주인공 미스미 역의 이시하라 사토미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젠더 문제 등 사회 부조리를 지적할 때의 쾌감이란! 왓챠플레이<파티셰를 잡아라>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보는 게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면 ‘망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 영국 예능 프로그램은 어떨까? 서바이벌 참가자들에게 요구되는 건 근사한 파티셰 경력이 아닌 베이킹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각기 다른 수준과 실력으로 미션에 임하는 성실함과 대비되는 결과물에 포복절도하게 된다. 시즌 2까지 방영. 넷플릭스WALK8월에 걷기 좋은 길석촌호수 잠실역 한복판의 고요한 공간. 동호와 서호, 두 호수를 둘러싼 녹음을 만끽할 것. 송리단길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거나 잠실롯데타워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나와 걸어도 안전하다. 잣절공원 이 낯선 이름의 공원은 1호선 오류동역과 가깝다. 공원 중앙에 습지 형태의 생태연못이 있어, 잘 가꿔진 수생식물과 생태계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6월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는 행사를 할 정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800m 길이의 나무 데크 산책로는 매봉산 자락길과도 이어진다.토정로 상수역 사거리에서 시작해 양화진 지하차도를 지나, 절두산 순교성지까지 걷는 코스. 주택가 사이 무성하게 자란 느티나무와 벚나무길을 걸으며 번화한 합정역 인근에서 고요를 만끽하길. 언덕 높이인 순교성지의 잔디에서 피크닉을 즐겨도 좋다. 길 하나만 건너면 망원동이다.BOOK뜨거운 계절을 읽다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한 소녀의 원죄가 탄생하는 순간’을 넘어 ‘우리가 어른이 되는 순간’의 끔찍한 아픔을 표현한 소설. 타인에 대한 뼈아픈 죄책감이 탄생할 때, 우리는 가슴속에 깊은 그림자를 안은 채 진짜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 내 행동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기에.안드레 에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 영화로도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영원히 잊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는 첫사랑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세상의 수많은 댈러웨이 부인들이여, 클라리사들이여, 우리가 서로의 보이지 않는 벗임을 잊지 말자.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직업이 있든 없든, 나는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고뇌하는 모든 외로운 이들은 어딘가 조금씩은 부서진 댈러웨이 부인의 후예이니까. - 정여울(작가, 여름이면 더더욱 뜨거운 내면의 불꽃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