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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를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들과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한국,코리아,한국사람,글로벌,컬럼,남북정상회담,문재인대통령,남한특집,편견,엘르,elle.co.kr:: | 한국,코리아,한국사람,글로벌,컬럼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 어쩌다 보니 해외 출장지의 리조트에서 그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게 됐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정상을 보는 것만큼이나 놀라웠던 건 CNN, BBC, CNTV, 심지어 알자지라까지, 세계 각국의 뉴스 채널들이 모두 남북정상회담을 중계하는 데 여념 없었다는 사실이다. 출장이나 여행에서 만난 외국 사람들이 내게 ‘노스 코리아’와 ‘뉴클리어 봄브’에 대해 물을 때마다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했는데... 아니, 진짜로 그게 이렇게나 궁금해할 일이었어? 반성하는 마음으로 TV 속 회담 중계 장면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자 태국인 ‘페친’이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 “Are you happy?” 나도 답했다. “Yes, I am!”최근 몇 달간 일어난 드라마틱한 정치적 장면을 제외하더라도, 확실히 세계 지도 위 한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한류는 이제 더 이상 드라마와 K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핀란드의 세 친구가 바라본 한국은 게임 강국이다. 그들은 PC방 시설과 DMC에서 열리는 e-스포츠 경기에 환호한다. 아이돌의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는 ‘Unnie’ ‘Oppa’ 혹은 ‘Maknae’ 같은 단어가 흔하게 보인다. 한편, 어떤 이들은 한글 디자인과 한국의 풍경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충격의 ‘상주곶감’ 운동화에 이어 한글로 ‘아메리카’ 네 글자를 티셔츠에 새겨 넣은 라프 시몬스 이야기다. 전라도 광주에서 촬영했다는 혼네의 ‘Me & You’ 뮤직비디오나 해외 매거진 화보 속 한국 거리의 풍경은 얼마나 컬러플한지! 그래, 저 커다랗게 반짝이는 글자들이 꽤 알록달록한 캘리그래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준 한국적인 감성에 사람들이 환호했던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로 엘린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청하다가 ‘빵’ 터졌다. 중국계 베트남사람인 엘린 웡이, 자신은 일본계 필리핀인 남편과 둘만 있을 때면 한국인을 욕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고백하는 대목이었다. “아시아 사람끼리 결혼하면 좋은 게 뭔지 아세요? 맘껏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불편한 진실이지만 호의적인 한류 열풍과는 별도로 아시아 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별개의 시각이 존재한다. 우리가 중국와 일본에 대해 평가하기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던 시절 이 시선을 또렷이 느꼈다.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홍콩 등 영어권 사용 국가의 아시아계가 대다수였던 내 손님 중 일부는 어느 정도 나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나름 진솔한 태도로 ‘한국인’을 평가하곤 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예뻐. 그런데 의존적이야’ ‘남자도 화장하더라? 이상해’ ‘가부장적이야’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자기들끼리 서로 욕해’ 등등. 개중에는 엘린 웡의 개그를 볼 때처럼 웃어 넘기기 어려운 평도 있었지만, 딱히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봤자 ‘한국인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해’라는 편견이나 하나 더 추가됐겠지...  자기 경험에 비춰 다른 문화를 평가하는 사람이 얼마나 ‘구려’ 보이는지 깨달은 이후, 나는 나름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 믿었던 내 안의 모든 인종적 데이터를 지우기로 했다. 반대로 손님들을 통해 내 편견이 깨질 때도 있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싱가포르인 아시리안은 전형적인 ‘동남아 사람(이 또한 얼마나 폭력적인 표현인지)’처럼 생긴 게스트였다. 혹시나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했던 내 우려와 달리 그는 한국 아주머니(Old Ladies)들의 친절함을 칭찬하며 떠났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꼭 한류 팬인 것도 아니었다. 하와이에서 왔던 제이미가 한국 여행을 택한 이유는 무려 ‘코리아’라는 먼 나라까지 가는 비행기 표 가격이 60만원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 중 안경다리가 부러진 제이미를 나는 집 근처 안경원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30분 만에 새 안경이 탄생하는 한국의 안경원 시스템에 매우 행복해 했다. 요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한국을 찾고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싫어할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거다. 현실은 치맥과 불닭볶음면을 맛본 외국인의 격렬한 반응만을 편집한 유튜브 채널과는 다르니까.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해서 화제가 됐던 영국 잡지 <모노클>의 ‘남한 특집’ 편은 항상 다른 나라의 평가가 궁금한 한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사전예약까지 해서 책을 받아 본 내 얘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눈길을 잡아당긴 건 한국에서의 매너에 대한 묘사였다. ‘한국인은 매우 애국적(Patriotic)이라서, 중국 또는 일본과 함께 언급되기보다 특유의 독창성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이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가? 문득 얼마 전 가졌던 외교부 공공외교 관계자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공공외교는 국민이 하는 외교다. 외국 사람은 결국 자기가 만난 한국인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인식한다.’ 그의 말을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삐딱한 의문이 솟았다. 그럼 나는 항상 내 국적을 의식하고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야 하나? 왜? 한국이 작고 낯선 동양의 나라여서? 한강의 기적과 88올림픽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제 사회의 평가가 개인적인 만남에서도 그렇게 중요한 걸까?우리는 ‘두유 라이크 김치?’를 묻는 한국인이 될 수도 있고, 강남스타일이나 BTS의 성취에 대해 자랑할 수도 있다. 타임스퀘어에 걸린 한국 기업의 광고를 보고 눈물을 글썽일 수도 있으며, ‘탈조선’을 꿈꾸며 맘껏 한국 정부를 욕할 수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 온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한국인의 표본 중 하나로 상대방에게 평가당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내가 만난 누군가에게 하나의 국적을 투영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게 바로 국경이 희미해져 가는 21세기 지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 아닐까? 혹은 편견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