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을 준비하던 중 뷰파인더에 담긴 카이의 그윽한 눈빛.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룩을 점검하는 모습. 의상 후보 중 하나였던 그레이 수트 역시 그의 시크한 분위기와 근사하게 어울렸다. 장난스럽다가도 금세 진지한 눈빛으로 바뀌는 그의 반전 매력의 순간이 촬영 내내 포착됐다.최근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이 이렇게 분주했던 적이 있을까. 뉴욕, 런던, 플로렌스에 이어 프랑스 남부 아를로 항해한 구찌의 2019 크루즈 쇼를 위해 각국에서 모여든 패션 인사와 셀러브리티, 프레스들의 연이은 도착으로 어느 때보다 북적거렸다는 후문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VIP예요.” 말끔한 블랙 수트 차림의 구찌 하우스 담당자들이 프랑스 남부에 입성할 코리언 특급 셀럽을 맞기 위해 공항을 바쁘게 오갔다. 이번 구찌 크루즈 쇼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엑소 카이가 그 주인공. 데뷔 이래 첫 해외 컬렉션 참석이자 동시대 가장 ‘핫’한 브랜드인 구찌의 크루즈 쇼를 찾게 될 카이의 특별한 하루에 동행하게 될 <엘르> 역시 함께 그의 도착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모두가 기다리던 카이의 모습이 보이자 일찍이 공항에 모여든 팬들의 함성이 울렸다. 며칠간 공항의 인산인해를 목격한 구찌 하우스는 카이를 만나기 위해 늦은 밤 공항을 찾은 팬들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기다려준 팬에게 고마운 인사로 화답한 카이는 내일 열릴 쇼를 위해 곧장 공항을 빠져나왔다.이튿날 오후, 카이를 만나기 위해 빌라 라 코스트로 향했다. 쇼 게스트들의 최대 이슈는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굵은 빗줄기가 ‘과연 그칠 것인가’였다(늦은 밤까지 소나기가 예고됐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서서히 잦아들더니 반가운 햇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그의 룸에 들어서자 루스한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카이가 특유의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할 법도 하지만 카이는 여느 때처럼 스태프들과 수다를 떨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한국과 밀란에서 공수해 온 여러 벌의 의상과 존재감 넘치는 액세서리들이 세팅된 옷장을 살핀 후, 분위기를 고조시킬 음악을 고르던 <엘르> 촬영 팀을 향해 헤어 손질을 마친 카이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악 틀까요?”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찬찬히 살피던 카이의 첫 선곡은 대니얼 시저(Daniel Caesar)의 ‘재패니스 데님’.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자연스럽게 준비가 시작되자 카메라 셔터에도 리듬이 실렸다. 먼저 피팅한 의상은 구찌 2018 F/W 쇼의 오프닝 룩이기도 한 그레이 컬러의 헤링본 수트. 뉴욕 양키스 팀의 엠블럼인 NY 로고에 그의 시선이 꽂혔다. 뒤이어 버건디 컬러의 오버사이즈 니트와 플레이드 패턴 팬츠로 갈아입은 그는 볼드한 링과 네크리스, 헤드피스를 대보길 반복했다(지난 <엘르> 스타일 어워즈에서 슈퍼 K팝 그룹상을 대표로 수상했던 카이이기에 이리저리 재킷 디테일을 살피며 의상을 체크하는 모습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박시한 핏의 재킷까지 더해지니 빈티지 무드가 그의 차분하면서도 시크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뤘다. 오늘 쇼를 위한 룩이 낙점되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까지 최종 점검을 마친 카이는 마침 흘러나온 바지(Bazzi)의 ‘마이셀프’ 후렴구를 흥얼거리더니 스웨그 넘치는 댄스까지 선보였다. 곧 쇼장으로 향할 그의 표정에 설렘이 번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의 손엔 어느새 구찌 크루즈 쇼 게스트들에게 전달된 기프트인 플로럴 패턴의 퀼팅 백이 들려 있었다. ‘구찌 아를, 알리스캉에서의 산책(Gucci Arles Promenade des Alyscamps)’이란 문구가 새겨진 백에 다시 한 번 호기심 발동! 플라워 자수 스트랩을 관찰하던 카이는 백을 이리 들고 저리 메어보더니 아이 같은 미소로 가방을 뒤집어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들면 어때요? 색다르지 않아요?” 생오노라 예배당 안뜰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를 즐기던 한때. 신비로운 알리스캉과 어우러지며 그를 향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오후 7시 30분, 진짜 ‘알리스캉에서의 산책’을 즐기기 위해 쇼장으로 갈 채비를 서둘렀다. 차로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쇼장. 카이의 도착을 직감한 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크리스털 프린지가 장식된 헤드피스로 화룡점정을 이룬 카이의 모습은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를 향한 취재 열기는 고대의 석관이 줄지어 선 오솔길 끝에 마련된 포토 월에서 고조됐다. 주얼 프린지 사이로 드러나는 그의 눈빛과 얼굴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바쁘게 움직이던 취재진은 헤드피스를 벗은 카이의 모습에 다시 한 번 플래시 세례를 터뜨렸다. 오늘 쇼에는 카이를 비롯해 엘턴 존, 에이셉 라키, 시얼샤 로넌, 소코, 루 드와이옹 등 구찌가 사랑하는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참석했다. “정말 기대돼요.” 패션 셀럽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미러 박스로 된 프런트 로에 착석한 카이는 시작될 쇼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쇼장이 조금 어두울 거라는 구찌 하우스 홍보 담당자의 예고대로 최소한의 조명과 수백여 개의 촛불이 쇼장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미켈레가 인도한 아를의 유서 깊은 명소인 알리스캉은 4세기부터 유명인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사용된 고대 로마시대의 공동묘지로 17세기에 산책로가 됐다. 무덤인 동시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휴식처이기도 한, 상이한 의미가 공존하는 장소인 것. 바로 이곳에서 미켈레가 크루즈 쇼를 열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쇼를 기다리며 쇼장을 찬찬히 살피던 카이. 애프터 파티에서 조우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카이. 마침내 짙은 어둠 속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고 성스러운 종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쇼 직전까지 가드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에워싸던 런웨이 길목에 차례대로 피어오른 작은 불꽃들이 산책로 끝에 있는 생오노라 예배당까지 장엄한 불길을 만들며 뜨겁게 타올랐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뚫고 나온 모델들은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런웨이를 가로질렀다. 단테의 장편 서사시를 금빛 자수로 수놓은 벨벳 드레스를 입은 19세기 미망인부터 펑크의 대명사 빌리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미켈레가 확장시킨 그로테스크한 미학의 시간이 흘렀다. 중후한 고딕 룩과 빅토리언 의상, 순백의 웨딩드레스에 스터드 백, 네온 레이스 타이츠, 플랫폼 부츠를 매치하는 식의 경계가 모호한 스타일링은 더욱 파워플해졌다. 화려한 액세서리도 빼놓을 수 없다. 홀스빗 슬라이드를 꽂은 빅 토트백, 투명한 트랜스페어런트 백, 호텔 샤토 마몽의 세탁물 가방에서 영감받은 패브릭 숄더백, 스터디드 스포티 샌들 그리고 빅토리언풍의 카메오 주얼리까지. 카이가 이날 신은 로퍼에 새겨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팀들의 엠블럼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캣워킹을 감상하는 카이의 표정에도 진지함이 묻어났다. 114벌에 달하는 의상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동자와 고개를 바쁘게 움직였다. 즈비그니에프 프라이스너가 작곡한 추모곡 ‘라크리모사’의 애잔한 선율에 맞춰 피날레가 시작되자 400여 명의 게스트들은 뜨거운 박수로 응답했다.엘턴 존의 공연은 아를의 밤을 더욱 환상적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프라이빗하게 이뤄진 엘턴 존과 카이의 스페셜한 만남.새하얀 드레스가 피날레를 장식하며 미켈레가 그려낸 다크 로맨스는 절정으로 치달았다.쇼의 감흥은 생오노라 예배당 가든에 열린 애프터 파티로 이어졌다. 뜨겁게 타올랐던 새빨간 런웨이와 달리 푸른 조명이 드리운 애프터 파티 현장은 반 고흐의 작품 속 아를의 파란 밤하늘을 재현한 듯 했다. 엘턴 존의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무대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오늘만큼은 무대 밖에서 대선배인 엘턴 존의 공연을 감상하게 될 카이의 시선이 무대로 집중됐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미켈레.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그를 몇 마디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아티스트!” 이윽고 글리터 선글라스와 엠브로이더리 블랙 턱시도로 갈아입은 엘턴 존이 바통 터치를 받아 무대에 올랐다(크루즈 쇼가 열리기 불과 며칠 전, 마지막 투어 공연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를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그이기에 오늘의 퍼포먼스는 모두에게 남달랐다). “오늘은 라나 델 레이가 되기로 했어요.” 미켈레의 절친 중 한 명인 팝 가수 라나 델 레이를 언급한 엘턴 존의 유쾌한 농담으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프랑스 아를에서, 그것도 유서 깊은 묘지에서 더없이 특별한 공연이 시작됐다. ‘Rocket Man’, ‘Your Song’, ‘I’m still standing’ 등 팝 거장의 라이브 연주가 이어지는 내내 카이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열정적으로 무대를 마친 엘턴 존은 자신의 맞은편에서 공연을 바라보던 미켈레에게 허그를 제안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잠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던 미켈레는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고 두 사람은 진한 포옹을 나눴다. 뜨거워진 열기 속에 아를의 밤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삼삼오오 모인 게스트들은 방금 끝난 공연과 쇼를 주제로 대화하는가 하면 서로 셀피를 찍으며 파티를 즐겼다. 카이 역시 와인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파티 모멘트에 녹아들었다. 그를 알아본 해외 모델들이 수줍게 촬영을 요청했다. 뒤이어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 힙합 뮤지션 에이셉 라키와의 만남도 이어졌다. 특히 아이코닉한 스타일의 소유자 에이셉 라키는 카이와 사진 촬영 후, 다시 한 번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오늘 의상이 너무 멋졌다’는 멘트를 남겼다. 잠시 뒤, 공연 후 휴식을 취하던 엘턴 존과 카이의 프라이빗한 만남이 성사됐다. 구찌의 뮤즈들답게 오늘의 관심사는 의상. 엘턴 존의 배우자인 데이비드 퍼니시가 카이가 신은 NY 로고의 로퍼를 먼저 알아봤다. 슈즈 얘기로 하나가 된 세 사람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쇼를 진두지휘한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와의 조우까지. 카이에게 ‘오늘’은 기록하고 싶은,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했다. 그와 하루를 함께한 <엘르> 팀에게 벅찬 소감을 전했다. 말을 이어가던 그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지나간 시간을 찬찬히 되감는 듯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기억에 남는 하루인 것 같아요.” 한여름 밤에 쓴 서사시 같았던 쇼에서 유니크한 존재감을 입증한 그는 다음 날, 엑소 콘서트를 위해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며칠 후, 카이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첫 포스팅은 런웨이를 바라보는 ‘오늘’의 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