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결혼이 이런 걸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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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조심하라고 했다. 과연, 친구 눈에 저렇게까지 습기가 올라올 수 있다는 걸 5년 만에 처음 봤다. 내가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날 저녁에 처음 알았다. 이 얘기는 그대로 입장을 바꿔서 해도 무방했다. 친구가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하는 것도 처음 봤고, 내 눈이 그렇게까지 울적해질 수 있다는 것도 낯선 체험이었다. 시작은 사소한 얘기였다. 그냥 섭섭했던 얘기 몇 토막을 늘어놓던 중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단골 바에서 칵테일 몇 잔을 마시던 참이었다.“……”그날 우리가 했던 말과 하지 않았던 말을 모조리 모아서 글로 쓰면 아마 말줄임표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침묵이 너무 많아서, 소설이라면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라면 무성영화, 만화라면 표정만 바뀌는 사각형이 몇 개나 나왔을까? 노려보다가, 약간 글썽이다가, 소리를 지른 건지 기합을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토로하거나 주장하던 순간이 너무 많아서 당혹스러웠던 저녁이었다. 13년차 일러스트레이터와 13년차 기자의 여가는 적당한 술, 아주 많은 우스개와 웃음이었다. 그걸 다 모았다가 돈으로 바꿔주는 은행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아마 우리가 제일 부자였을 것이다. 나누고 나눠도 하고 싶은 얘기가 또 있었다. 같이 있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운 사이, 마감이 없을 땐 1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사이였다.“아유, 두 분 참 보기 좋게 어울리네. 한 명은 남자 답고 크고, 이 분은 나긋하고 부드럽고.”친구네 동네에서 순대국을 먹고 맞은편 가게에서 야채빵 하나를 샀던 날엔 이런 얘기도 듣는 사이였다. 나는 배가 좀 불러서, 친구가 먹고 있던 야채빵을 딱 한 입만 나눠 먹은 순간이었다. 특별히 다정할 것도 없던 대화였다. “나 한 입만 먹어봐도 돼?”“아유, 그럼. 얼마나 맛있게?”“오, 이거 맛있네. 역시 빵은 클래식이…”이 대화를 듣던 빵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했던 말이었다. 쿨한 아주머니, 좋은 말씀. 우린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도 좀 머쓱하고 그래서 그냥 시장 골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고 말았다. 다 먹고 돌아가는 길엔 내가 친구 팔짱을 끼는 시늉을 했었나, 안 했었나? 어떤 오해는 풀지 않고 두는 편이 더 아름답기도 하니까. “너희는 한 번도 싸운 적 없어? 그렇게 붙어 다니는데?”누가 물어보면 꽤나 진지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해. 우린 서로 되게 조심스러워. 편해지는 순간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면 실수하는 게 관계니까. 친구사이야말로 진짜 조심스러워야 하는 거잖아. 우리가 그런 가봐.”모르고 했던 소리였다. 친구와 내가 지금까지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우리는 지금까지 ‘놀기만 하는 사이’였다. 즐거운 얘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행복했던 사이. 어쨌든 둘 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니까 괜히 신경을 거스르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랑 회사를 차려버렸다.하지만 같은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둘 뿐인 회사의 대표이사와 이사로 활동하면서 온갖 사회 활동까지 같이 한다는 건 아주 다른 장면의 시작이었다.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사람 같았다. 그게 사소하게 쌓였다가 저녁 즈음 고기를 구울 땐 그동안 발견할 수 없었던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시시각각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우린 다신 연인이 될 수 없는 부부 같았다. 연애는 끝난 거였다. 놀기만 하던 그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헤어지기엔 감가상각이 만만치 않았다.없던 기대가 생겼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좋게 취하기만 하면 되는 사이에 기대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같이 마련한 사무실에서, 한 통장으로 살림을 꾸리며 매일 마주보고 일하는 건 아주 다른 차원이었다. 사소한 기대가 생겼다. 실망이 늘었다. ‘저 자식이 진공청소기를 언제 돌리나 보자’ 하는 마음부터, ‘이렇게 맑은데 블라인드를 좀 올려도 될까? 냉온풍기를 언제 끄자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까지.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에서 그랬나? 치약 짜는 방법이 달라서 싸우는 게 부부라고. 그렇게 사소한 게 쌓이면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됐다. 그 에너지로 싸우는 거였다. 어쩌면 싸움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토로? 투정? 다툼? 어쨌든 본질은 실망의 결정이었다. 그때 누구랑 미팅할 때 그 말이 섭섭했다느니,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느니, 그때 네 표정이 무서웠는데 화 좀 그만 내라느니, 나는 화를 낸 게 아니라고 얘기하면서 또 화를 내고 있는 그런 장면들. 둘 다 마음은 약해서 모진 소리 한 번 못했지만, 둘 다 달변이라 허점을 찾아 공수전환 해가면서 치고 받고 하는 장면이야말로 지루하고 격렬한 스트레스였다. 한 잔 할 때마다 고양이처럼 투닥거렸다. “결혼하면 딱 그래. 정말 숨쉬는 것도 미워 죽겠는 시기가 와. 그런데 어떻게 해? 그렇다고 헤어져? 가족인데? 애기도 있는데? 그렇게 잘 지내다보면 또 좋아져. 괜찮아.”그렇게 한 달을 보낼 즈음, 결혼 5년차 친구의 조언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질 수 없는 사이, 술을 마셔도 마냥 놀 수 없는 사이, 기대가 켜져서 실망이 쌓이니까 전보다 오만 배는 조심해야 하는 사이가 됐다. 관계는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걸까? 이 시기를 잘 버텨내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월요일 새벽 2시 반, 나는 원고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친구는 맞은편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왜 그림을 그리면서 혼잣말을 하는 걸까? 내가 헤드폰을 끼고 있으니까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출출할 시간인데, 배는 안 고플까?글쓴이 정우성 <레이디 경향>과 <GQ>, <에스콰이어>에서 일했습니다.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씁니다. 요가 수련하는 사람. 일러스트레이터 이크종과 같이 차린 미디어 스타트업, (주) 더파크(www.the-park.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