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혹시, 결혼이 이런 걸까?

회사를 차려버렸다. 친구랑

BYELLE2018.04.20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조심하라고 했다. 과연, 친구 눈에 저렇게까지 습기가 올라올 수 있다는 걸 5년 만에 처음 봤다. 내가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날 저녁에 처음 알았다. 이 얘기는 그대로 입장을 바꿔서 해도 무방했다. 친구가 그렇게까지 무섭게 말하는 것도 처음 봤고, 내 눈이 그렇게까지 울적해질 수 있다는 것도 낯선 체험이었다. 시작은 사소한 얘기였다. 그냥 섭섭했던 얘기 몇 토막을 늘어놓던 중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단골 바에서 칵테일 몇 잔을 마시던 참이었다.
“……”
그날 우리가 했던 말과 하지 않았던 말을 모조리 모아서 글로 쓰면 아마 말줄임표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침묵이 너무 많아서, 소설이라면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라면 무성영화, 만화라면 표정만 바뀌는 사각형이 몇 개나 나왔을까? 노려보다가, 약간 글썽이다가, 소리를 지른 건지 기합을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토로하거나 주장하던 순간이 너무 많아서 당혹스러웠던 저녁이었다.
13년차 일러스트레이터와 13년차 기자의 여가는 적당한 술, 아주 많은 우스개와 웃음이었다. 그걸 다 모았다가 돈으로 바꿔주는 은행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아마 우리가 제일 부자였을 것이다. 나누고 나눠도 하고 싶은 얘기가 또 있었다. 같이 있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운 사이, 마감이 없을 땐 1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사이였다.
“아유, 두 분 참 보기 좋게 어울리네. 한 명은 남자 답고 크고, 이 분은 나긋하고 부드럽고.”
친구네 동네에서 순대국을 먹고 맞은편 가게에서 야채빵 하나를 샀던 날엔 이런 얘기도 듣는 사이였다. 나는 배가 좀 불러서, 친구가 먹고 있던 야채빵을 딱 한 입만 나눠 먹은 순간이었다. 특별히 다정할 것도 없던 대화였다.
“나 한 입만 먹어봐도 돼?”
“아유, 그럼. 얼마나 맛있게?”
“오, 이거 맛있네. 역시 빵은 클래식이…”
이 대화를 듣던 빵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했던 말이었다. 쿨한 아주머니, 좋은 말씀. 우린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도 좀 머쓱하고 그래서 그냥 시장 골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고 말았다. 다 먹고 돌아가는 길엔 내가 친구 팔짱을 끼는 시늉을 했었나, 안 했었나? 어떤 오해는 풀지 않고 두는 편이 더 아름답기도 하니까.
“너희는 한 번도 싸운 적 없어? 그렇게 붙어 다니는데?”
누가 물어보면 꽤나 진지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해. 우린 서로 되게 조심스러워. 편해지는 순간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면 실수하는 게 관계니까. 친구사이야말로 진짜 조심스러워야 하는 거잖아. 우리가 그런 가봐.”
모르고 했던 소리였다. 친구와 내가 지금까지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우리는 지금까지 ‘놀기만 하는 사이’였다. 즐거운 얘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행복했던 사이. 어쨌든 둘 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니까 괜히 신경을 거스르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랑 회사를 차려버렸다.
하지만 같은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둘 뿐인 회사의 대표이사와 이사로 활동하면서 온갖 사회 활동까지 같이 한다는 건 아주 다른 장면의 시작이었다.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사람 같았다. 그게 사소하게 쌓였다가 저녁 즈음 고기를 구울 땐 그동안 발견할 수 없었던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시시각각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우린 다신 연인이 될 수 없는 부부 같았다. 연애는 끝난 거였다. 놀기만 하던 그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헤어지기엔 감가상각이 만만치 않았다.
없던 기대가 생겼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좋게 취하기만 하면 되는 사이에 기대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같이 마련한 사무실에서, 한 통장으로 살림을 꾸리며 매일 마주보고 일하는 건 아주 다른 차원이었다. 사소한 기대가 생겼다. 실망이 늘었다. ‘저 자식이 진공청소기를 언제 돌리나 보자’ 하는 마음부터, ‘이렇게 맑은데 블라인드를 좀 올려도 될까? 냉온풍기를 언제 끄자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까지.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에서 그랬나? 치약 짜는 방법이 달라서 싸우는 게 부부라고. 그렇게 사소한 게 쌓이면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됐다. 그 에너지로 싸우는 거였다. 어쩌면 싸움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토로? 투정? 다툼? 어쨌든 본질은 실망의 결정이었다. 그때 누구랑 미팅할 때 그 말이 섭섭했다느니,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느니, 그때 네 표정이 무서웠는데 화 좀 그만 내라느니, 나는 화를 낸 게 아니라고 얘기하면서 또 화를 내고 있는 그런 장면들. 둘 다 마음은 약해서 모진 소리 한 번 못했지만, 둘 다 달변이라 허점을 찾아 공수전환 해가면서 치고 받고 하는 장면이야말로 지루하고 격렬한 스트레스였다. 한 잔 할 때마다 고양이처럼 투닥거렸다.
“결혼하면 딱 그래. 정말 숨쉬는 것도 미워 죽겠는 시기가 와. 그런데 어떻게 해? 그렇다고 헤어져? 가족인데? 애기도 있는데? 그렇게 잘 지내다보면 또 좋아져. 괜찮아.”
그렇게 한 달을 보낼 즈음, 결혼 5년차 친구의 조언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질 수 없는 사이, 술을 마셔도 마냥 놀 수 없는 사이, 기대가 켜져서 실망이 쌓이니까 전보다 오만 배는 조심해야 하는 사이가 됐다. 관계는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걸까? 이 시기를 잘 버텨내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월요일 새벽 2시 반, 나는 원고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친구는 맞은편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왜 그림을 그리면서 혼잣말을 하는 걸까? 내가 헤드폰을 끼고 있으니까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출출할 시간인데, 배는 안 고플까?


글쓴이 정우성 <레이디 경향>과 <GQ>, <에스콰이어>에서 일했습니다.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씁니다. 요가 수련하는 사람. 일러스트레이터 이크종과 같이 차린 미디어 스타트업, (주) 더파크(www.the-park.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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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은정
  • 글과 사진 정우성
  • 디자인 황동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