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이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고, 다양성의 가치가 살아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패션계에서 고질적으로 불거지는 문제 중 하나가 성과 인종, 장애우 그리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논란이다. 최근 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파리를 방문한 패션 사업가이자 인플루언서 미로슬라바 듀마가 도마에  올랐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녀의 친구인 러시아 디자이너 율리아나 세르젠코가 보낸 꽃다발과 카드를 공개했는데, ‘To My N*ggas’라고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쓴 것. 이어 2012년 동영상에서 여성 옷을 입는 브라이언 보이와 트랜스젠더 모델 안드레아 페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장면이 공개되며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사건이 불거졌다. 논란 후 미로슬라바는 공동대표로 있던 아동복 브랜드의 임원진 명단에서 삭제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H&M 역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흑인 아동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멋진 원숭이(Coolest Monkey in the Jungle)’라는 문구가 쓰인 후디드 티셔츠를 입힌 광고 사진을 온라인 쇼핑몰에 활용한 것. 원숭이는 오랫동안 백인이 아닌 인종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됐는데, 논란이 일자 사진을 삭제하고 제품을 전량 폐기했다. 설전과 사과로 시끄럽던 지난 2월,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전개하는 버버리 마지막 쇼가 런던 패션위크 기간에 열렸다. 패션쇼 전반에 레인보 체크를 활용했는데, 무지개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과 포용의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LGBTQ+)를 뜻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창의력의 기본이다. 이를 말하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고 생각했다. 버버리에서 내 마지막 컬렉션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포함한 전 세계의 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미로슬라바와 H&M 논란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알고 보면 패션계는 그 어떤 분야보다 개인이 지닌 장애뿐 아니라 인종이나 성별로 인해 특정 사회나 모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포괄성(Inclusivity)’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었다. 리카르도 티시가 전개했던 지방시는 2010 F/W 캠페인 모델로 트랜스젠더 모델 레아 티를 최초로 발탁했고, IMG 모델은 해리 네프와 계약하며 트랜스젠더 모델을 전격적으로 채용한 에이전시였다. 또 남자 모델로 활동하던 안드레아 페직이 성전환 수술 후 돌아왔을 때 패션계는 변함없는 지지를 밝혔고, 그는 자일스 디컨 2016 S/S 쇼에서 당당히 여자 모델로 런웨이를 걸었다. 또 라프 시몬스는 2017 S/S 쇼에서 흑인 남성의 누드와 동성애, 에이즈를 주제로 사진활동을 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베트멍의 2017 S/S 컬렉션도 버버리보다 한 발 앞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무지개색의 티셔츠를 등장시켰다. 장애우를 위한 타미 힐피거의 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0월부터 판매하고 있는 이 컬렉션은 벨크로 잠금과 마그네틱 단추를 활용한 셔츠, 조절이 가능한 다리 트임 등을 접목해 편의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 한편 지난 2월 말에 열린 타미 힐피거의 밀란 패션쇼에는 백반증을 앓고 있는 모델 위니 할로가 메인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한동안 패션계는 모델 캐스팅이나 옷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다양한 인종의 모델이 런웨이에 등장하고 남녀 컬렉션을 합치거나 크로스섹슈얼을 부르짖는 젠더리스 룩이 등장하는 등 디자인 자체의 구분이 모호한 다양성의 광풍이 불어오고 있다. 더불어 성 유동적인 베이식한 스타일의 레이블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는 “패션의 사회적 포괄성과 민주화는 중요하다. 패션을 통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한 패션계의 노력은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르고, 힘차게 진행되고 있다.흑인 비하 논란을 일으킨 H&M 후디드 티셔츠. 장애우를 위한 타미 힐피거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