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 하우스 아트 컬렉션에 전시된 캐서린 번하르트의 ‘Oaxaca’(2017) 앞에서. 색스가 입은 핑크 드레스는 Bottega Veneta. 번하르트가 입은 셔츠는 Gucci. 이어링은 Vita Fede. 네크리스는 Charlotte Chesnais. 오른손에 착용한 커프는 Lizzie Fortunato. 왼손의 골드 커프는 Elsa Peretti For Tiffany & Co. 핑크 링은 Tiffany & Co. 골드 링은 Pomellato.로야 색스(Roya Sachs) & 캐서린 번하르트(Katherine Bernhardt)독립 큐레이터 로야 색스는 12세 때 올라퍼 엘리아슨의 ‘웨더 프로젝트’(2003)를 보고 느꼈던 경외심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홀은 노란빛으로 작열하는 커다란 인공 태양과 신비스러운 안개가 드리워졌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 것 같았어요.” 색스가 말한다. 런던에서 자란 그녀는 뉴욕대에서 공부했고 엘리아슨의 인공 태양을 만난 시점으로부터 14년 후 뉴욕 미술계의 주요 기획자가 됐다. 뉴욕 현대미술관과 소더비에서 일했고, 디아 비콘 이사회의 창립 멤버이자 퍼포먼스 아트 그룹 ‘퍼포르마(Performa)’에 속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해, 레버 하우스 아트 컬렉션(Lever House Art Collection)의 큐레이터가 됐다. 뉴욕 맨해튼 파크 애버뉴 53가와 54가 사이에 있는 레버 하우스는 1952년 완공됐다.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유리와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이 24층 오피스 빌딩은 일반인에게 공공 공간을 선사했고, 뉴욕 건축법 제정에 영향을 준 역사적인 건물이다. 1998년 건물 관리 권한을 넘겨받은 한 부동산 회사는 1층 로비의 유리 커튼 월을 복원하면서 거리를 오가는 시민에게 오픈된 현대미술 전시공간을 탄생시켰다. 이후 20여 년 동안 알렉산더 칼더,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레버 하우스 아트 컬렉션은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결합해 비관습적이고 몰입적인 체험 예술을 대중에 선보이길 원한 색스에게는 더없이 알맞은 자리인 셈이다. 지난해 4월, 색스는 첫 전시회를 선보였다. 브루클린에서 활동 중인 화가 캐서린 번하르트의 거대한 캔버스는 화면에 등장하는 오브젝트의 불협화음을 묘사한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큰 부리새들 사이로 수박 조각이 떠다니고, 윈덱스 세정제 옆에는 바나나가 있으며, 열대 식물을 따라 알록달록 벌레 같은 쿠션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대담한 페인팅은 다양한 소재에서 영감을 얻었다. 베르사체 광고, 모로코 러그, 스와치 시계, 담배, 파파야 등등.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갤러리 캐나다(Canada)의 디렉터 필 그라우어는 번하르트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녀는 보편적 필터를 거부한 채 자유로운 페인팅을 만들어갑니다.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학술적인 연습이 아닙니다. 그림들은 활짝 열려 있고, 양날의 해석을 지니고 있어요.” 뉴욕 상점들의 셔터에 그림을 그리는 ‘100 Gates’ Project’(2017)의 일환으로 작업한 벽화 앞에서.샨텔 마틴(Shantell Martin)“전 넋 놓고 있었어요.” 아론 오트는 샨텔 마틴의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말한다. 뉴욕 주 버펄로에 있는 올브라이트-녹스(Albright-Knox) 아트 갤러리의 공공미술 큐레이터 오트는 마틴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드로잉이 상징성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마틴은 늘 자신이 보는 방식대로 사물을 표현할 뿐이지만, 매번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쉽지 않은 일이고 전 언제나 같은 강도로 놀라죠.” 스튜디오 방문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올브라이트-녹스 조각 코트에서 열린 개인전 <Someday We Can>으로 이어졌다. 이 전시에는 3일간 번개처럼 그려서 완성한 70m의 벽화도 포함됐다. 아티스트가 미술관과 공동체를 위해 동시에 진행한 최초의 작업이었다. “그녀의 작품에는 놀랄 정도로 관대함이 담겨 있어요.” 오트가 말한다. “마틴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발견의 행위라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발견을 격려하죠.” 마틴은 오래전부터 캔버스를 구성하는 데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브루클린 집의 침실 벽면과 천장, 침대 프레임부터 <엘르> 촬영장에 입고 온 옷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시그너처인 검은색 선으로 그린 인물과 동물, 단어 등 모든 것이 초현실적인 의식 흐름과 함께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습관이 있었던 마틴은 스스로를 아티스트로 여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틴은 런던 남동부의 노동자 계층에서 자랐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전을 선택했고, 세인트 마틴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3년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클럽에서 실시간으로 드로잉을 영사하는 실험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6년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이후 마틴은 뉴저지 주의 저지 시티에 거주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미술계의 문을 두드렸다. 마틴의 작품은 브루클린 미술관에서의 전시뿐 아니라 렉서스, 막스마라, 베스파 등의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오트는 “샨텔 마틴의 작업은 아트와 디자인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말해준다”고 역설했다. “그녀처럼 자유롭게 미술계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나들 수 있는 아티스트는 드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