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희망의 시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72년생 서지현 검사의 고백과 대한민국에 점차 확산되는 '#MeToo' 운동, 우리에게 당도한 혼란과 희망의 시대에 관하여 ::성폭력, 뉴스룸, #metoo, 미투, 페미니스트, 엘르, elle.co.kr:: | 성폭력, 뉴스룸,,metoo, 미투, 성차별, 인종차별, 페미니스트, 엘르, elle.co.kr

그는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는 무언가를 삼키듯 종종 숨을 고르며, 8년 전 어느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던 남성 검찰 간부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가해자의 사과만을 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인사 불이익이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지 못하고, 아이를 유산하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이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자신의 경험을 올렸다. ‘미투(#MeToo)’ 해시태그와 함께.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최고 법 집행기관에서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이 자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뿌리 깊은 불의를 온 세상에 드러낸 서지현 검사의 용기였다. Me too. ‘나도 겪었다’는 의미의 이 짧은 한마디를 캠페인으로 만든 것은 10년 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다. 그녀는 성폭력 피해를 겪고도 인종차별로 외면받고 소외되는 유색인종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이 운동을 창안했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30여 년간 저질러왔던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뒤 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트위터를 통해 뜨겁게 확산되었다. 한국 SNS에서 ‘나도 겪었다’는 목소리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0월이었다.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서브컬처 영역에서의 성폭력 피해 경험들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뒤이어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등 문화예술계에서 자행되던 무수한 성폭력들이 폭로되었다. ‘나도’라는 말에서 예외인 여성이 지구상에, 특히 한국에 있기는 할까. 나도 겪었다. ?#방송계_내_성폭력’이었다. 2006년 초, 첫 직장이었던 방송사를 그만두었다. 그 당시 남성 PD들은 노래방에서 여성 작가들을 끌어안고 블루스를 추었다. 틈만 나면 ‘막내’인 나를 옆에 앉혀두고 헛소리를 일삼던 보도국 S부장이 담배 자판기 앞에서 손목을 잡아끌었을 때 손을 힘껏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그 일을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가끔 나처럼 무작정 그만둘 수 없는 누군가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게 조용히 빠져나온 것을 후회했다. 최영미 시인이 겪은 것은 ?#문단_내_성폭력’이었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시 ‘괴물’은 이렇게 시작한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한국에서 살아온 여성이라면 이 한 줄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남자와 가까이 앉는 것을, 단둘이 있는 상황을, 강제로 내미는 술잔을, 집요하게 지분대는 손길을 피하느라 어쩔 줄 몰랐던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말이다. 최영미 시인 역시 <뉴스룸>에 나와 증언했다. 젊은 여성 문인이 권력을 쥔 남성 문인들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이루어지는 집요한 ‘복수’에 대해. 아무도 모르게 그 여성의 작품이 ‘문단’에서 사라져가는 과정에 대해. 그러자 시인 이승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 시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비난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시시콜콜 다 드러내고 폭로하고 비난하면 세상이 좀 살벌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러웠다. 성범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그 여유가. 성폭력을 겪는다는 것, 다음을 두려워하며 산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리 없는, 성폭력 가해자를 비난하기 위해 ‘네 딸, 네 부인이 당해봐야 알겠냐’며 또 다른 여성을 끌어오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아마도 가해자들을 포함한 많은 남성들은 의아할 것이다.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왜 ‘이제’야 말하지? 무슨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저러는 거지?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내가 저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수없이 곱씹게 되는 경험과 기억들,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시간에 대해. 얼마 전 20대 여성 뮤지션 A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성희롱, 무리한 다이어트를 비롯한 꾸밈 노동 강요, 자신의 문제 제기를 ‘유난’으로 치부하는 주변인들은 오랫동안 그를 지치고 외롭게 만든 터였다. 모든 것을 바꿔놓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하다는 그에게 내가 한 말은 “저도 매일매일 화를 내고 있어요”였다. 2015년 초,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무서워요”라는 한 남성 칼럼니스트의 글로 인해 시작된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옹달샘 팟캐스트 여성혐오 발언 논란,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등장은 기자이자 여성으로서 내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까지 재미있다고, 멋지다고, 기발하다고 여겼던 대중문화 콘텐츠 속의 여성혐오를 깨닫는 과정은 괴롭고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써온 글은 대부분 부끄러운 기록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화를 내지 않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내게 알려준 것은 분노에서 출발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다. 물론 거의 매일 여성혐오 범죄와 마주하게 되는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여성들이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에 시달리고,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한 초등교사가 공격당하고, 성범죄에 연루되었던 남성 연예인들이 은근슬쩍 커리어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분노는 무기력과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와 여성 단체들이 공론화한 ‘소라넷’ 폐쇄가 실현되고 불법촬영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것처럼, 성범죄를 소재로 한 KBS <마녀의 법정>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정려원이 연말 시상식에서 피해자들을 지지하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 것처럼, 큰 흐름 안에서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2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은 2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의’로 마감되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은 어디선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힘이 될 수 있다. A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반가웠다고, 이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자리를 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 구절을 종종 떠올린다. 지금 세상은 쉴 새 없이 터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다 터져버리고 나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새롭게 생겨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후’의 세상을 조금은 기대하고 있다. 무엇이든 쉽게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기대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최지은 작가 대중문화 웹진 <아이즈>에서 기자로 일했고 책 <괜찮지 않습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