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덞 명의 고백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 자신의 일상 역시 달라졌음을 털어놓은 여자들의 고백 ::페미니즘, 육아휴직, 맞벌이, 노키즈존, 성소수자, metoo, 엘르, elle.co.kr:: | 페미니즘,육아,맞벌이,노키즈존,성소수자

비서나 사무직이 아닌 증권 애널리스트로 여자를 뽑은 것은 우리 기수가 처음이었다. 상사들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출장, 회식 등 여자라는 이유로 배려한다는 게 배제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가 마치 여성 직원을 대표하는 입장이라도 된 양 미친 듯 일하며 임신도 미뤘지만,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여성 임원 비율, 같은 직종 남녀의 임금 격차 등 고용 불평등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이 구조적 문제에 내 죄책감까지 얹을 필요는 없다는 걸. 미루던 아이를 갖고 출산일을 앞둔 요즘, 출산휴가도 당당하게 누리려 한다. 내가 내리는 선택이 여자 후배들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32세, 증권사 애널리스트노키즈 존은 업주의 선택 사항이라고 여겼다. 내 뒤에 앉은 아이가 내 좌석을 발로 차거나 식당에서 떠드는 아이를 제대로 제지하지 않는 엄마에게 눈을 흘긴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여성 혐오와 같은 맥락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라는 걸 깨달은 이후 나 또한 좀 더 관대해졌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아이들은 앞 좌석을 차기 쉽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미혼모라는 단어는 있지만 아이와 여자를 두고 떠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은 없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은 없으나 ‘맘충’이라는 말은 너무 빨리 퍼졌다. 난 여전히 미혼이지만 누군가 내 친구를 ‘맘충’이라고 부른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싸울 거다. 30세, 출판 편집자도저히 결혼 준비를 병행할 수 없는 근무 환경 때문에 결혼을 계획하며 5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양가의 크고 작은 집안일이 다 내 차지가 되더라. 몸이 불편한 집안 어른을 챙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카가 서울에 시험을 보러 가니 며칠 잘 챙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비록 똑같이 직장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내가 남자였다면 이런 일을 쉽게 부탁했을까? 세상은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가 없는 성인 여성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여성 또한 불필요한 희생 정신이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28세, 주부젠더 이슈에 관심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성적 지향성과 성소수자 인권에 눈을 뜨게 됐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많은 것이 이성애자 남성 중심 구조로 편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덩달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소수자 코드를 개그 코드로 사용하거나 커밍아웃한 남자 연예인을 희화화하는 농담에도 웃기 힘들어졌다. 왜 ‘여성스럽다’고 분류되는 매력과 취미를 가진 남자 연예인은 굳이 “저 여자 좋아합니다”라면서 변명하듯 성 정체성을 밝히는 걸까? 여성성이 오직 게이의 특징이며, 그게 부정해야 할 단점도 아닌데 말이다. 예전에는 싱글인 주변 사람에게 연애 좀 하라고 타박했는데, 최근엔 아예 연애 여부를 묻는 것을 삼가거나 남친, 여친 대신 “애인 있느냐”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34세, 주류 회사 홍보직원이전 직장의 남자 직원들은 30대 미혼인 여자 선배 이야기를 할 때면 “그거 노처녀 히스테리 아니야?” “00 씨는 빨리 결혼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다. 당시 20대 중반 여자이던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예전에는 불편해도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제는 그 또한 암묵적인 동조임을 안다. “몇 년 뒤면 저도 서른인데 그럼 그때 저한테도 노처녀 히스테리냐고 하실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당황하던 선배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28세, 대학원생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있다. 술자리가 끝난 후 갑자기 내가 탄 택시 문을 열고 따라 타 집 앞까지 왔던 선배, 카드를 건네던 내 손을 갑자기 잡던 택시 아저씨, 원치 않는 관계를 시도했던 전 남자친구 등. 머리로는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스스로를 탓하며 몸서리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년 사이 일련의 흐름과 최근의 ‘#MeToo’ 운동을 보며 비로소 진정으로 과거의 나와 화해하게 된 기분이다. 여자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제는 피해 여성의 옷차림이나 음주 여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는 것쯤은 상식이 된 것 같다. 26세, 유학생월경 전 증후군으로 항상 고생하면서도 굳이 생리 이야기를 남에게 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들과 있는 술자리에서 ‘생리통’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개인 메신저로 충고 아닌 충고를 한 적도 있으니까. 그 생각이 바뀐 건 생리대 파문 이후다. 출산에 대해서는 그토록 강조하던 사회가 정작 여자의 몸과 건강에는 너무나 관심이 없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순수하고 새하얀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생리대 CF조차 기만적으로 느껴질 지경. 생리컵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망설여지지만 15년째 팬티형 생리대만 쓰던 내가 탐폰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31세, 홍보대행사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