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맥고완의 고백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하비 와인스타인의 실체를 밝힌 폭로자 중에서 가장 거침없는 증언으로 주목받은 로즈 맥고완::로즈 맥고완,하비 와인스타인,미투,폭로,증언,성추행,미투,metoo,여성,엘르,elle.co.kr:: | 로즈 맥고완,하비 와인스타인,미투,폭로,증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 1주년이 되던 날, 로즈 맥고완은 ‘아무 데나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콜로라도 시골길을 달리다가 과속 단속을 하는 경찰에 걸려 차를 세웠다. 맥고완에게는 심장박동이 빨라질 만큼 긴장된 순간이었다. 1월에 워싱턴 DC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두고 내린 물건에 마약류가 들어 있어 체포영장이 발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맥고완이 특유의 낮고 끈적한 목소리로 들려준 영장의 사연은 경찰이 들어본 제일 황당한 얘기였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한물간 마약중독자로 몰려고 혈안이 된 사립탐정들이 일 년 넘게 쫓아다니고 있으며, 이 음침한 작전의 물주가 하비 와인스타인이라고 믿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프로듀서였던 그 하비 와인스타인 말이다. 딱지만 떼고 그냥 보내준 경찰에게 맥고완은 치즈버거가 맛있는 식당을 물어보았다. “배가 고팠거든요.” 영화나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배우이자 예술가인 로즈 맥고완의 실제 삶이다. 지난 10월 하룻밤 만에 도끼를 들고 덤비는 미친 아웃사이더에서 페미니스트 슈퍼히어로로 평판이 바뀐 그녀 말이다. 와인스타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80명 이상의 여성 중에서도 맥고완의 증언은 단연코 거침없었다. 한 번도 주역을 맡아본 적 없고 기존 할리우드의 페미니스트 체제에서 대접받은 적도 없는 44세의 맥고완에게는 놀라운 변화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이용당한 처녀였다. 연달아 당하다 못해 결국 화가 나고 말았다. 어디 잡지에 알량한 글 하나 써서 던지고 잊을 수 있는 간단한 분노가 아니었다. 급기야 자신의 머리를 밀고 트위터 계정을 열고 전쟁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이 머저리들을 상대로 주먹을 날렸어요.” 맥고완은 말한다. “내 인생을 산다든가, 뭐 그런 더 나은 할 일이 많은데 말이에요. 하지만 어떡해요?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이 이 일을 대신 해주길 기다리며 살았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내가 하자, 이렇게 된 거죠. 내가 아는 걸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아니면 내가 아는 걸 알면서도, 전부 태생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체질이 아니었든가요.” 로즈 맥고완은 1998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의 레드 카펫에서 유명해졌고, 2001년에는 ‘돈이 없어서’ TV 시리즈 <참드 Charmed>에서 현대판 마녀로 출연했다. 펑크 난 재정을 메우려 시작한 드라마는 6년 동안 이어졌다. 그녀는 일주일에 100시간 동안 일했던 때를 회상하며 “정말로, 정말로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 만한 시간이 없었어요.” 2006년 <참드> 출연이 끝나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로드리게즈는 독립영화 작가였으나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사람들 덕분에 주류로 진입한 감독이었다(와인스타인은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신시티>를 비롯해 로드리게즈의 영화 네 편의 자금을 댔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커플이었으나 현실에서는 어렸을 때 그토록 혐오했던 굴종적 여성의 패러다임에 빠졌던, 평생 단 한 번의 연애였다. “아주 강한 남자예요. 위압적인 사람이죠. 저도 위압당했어요.” 맥고완이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건 2007년 영화 <그라인드하우스> 홍보 차 <롤링 스톤>의 커버 화보를 찍던 중의 일이다. 세트장에서 의상을 입으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옷걸이에 탄띠 두 줄밖에 없었어요. 옷은 어디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커버에는 로즈 맥고완과 로자리오 도슨이 가슴에 탄띠만 멘 채 엉덩이를 마주 대고 있는 벌거벗은 화보가 실렸다. ‘아주 나쁜 여자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칙 플릭 <그라인드하우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그 순간 뚜렷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화보를 보는 여자들한테 열등감을 자극하고 남자친구를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죠. 공중파와 여타 미디어를 총동원해 젊은 여자들에게 퍼지는 몹쓸 메시지의 일부가 된 거예요. 난 화가 났어요.” 그때부터 맥고완은 자기만의 길을 가기로 했다. 신흥 종교 ‘하나님의 자녀파’로 성장한 경험을 배경으로 TV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썼고, 오랜 친구 조슈아 존 밀러와 함께 단편영화 <새벽>을 감독해 선댄스 심사위원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풍문은 맥고완의 자발적 탈출을 훨씬 음침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녀는 갈수록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폭탄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결국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프로젝트를 믿고 맡기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저는 로즈가 대서사시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수년에 걸쳐 맥고완의 활동을 지원한 온라인 매거진  ‘리파이너리29(Refinery29)’의 콘텐츠 총책임자 에이미 에머리히는 말한다. 그러나 맥고완을 다른 여자들과 엮어 창조적 협업을 해보려 할 때마다 에머리히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옹고집”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다른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서! “로즈가 하는 얘기가 워낙 혹독해서 사람들은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았죠.” 그러나 맥고완은 쉽게 밀려나지 않고 자기만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로즈의 군대(Rose Army)’라는 커뮤니티는 맥고완처럼 참다 참다 질려버린 여자들이 온라인에서 ‘가시가 되자. 모여라(Be a Thorn. Enlist)!’라는 태그라인으로 함께 뭉친 곳이다. 그들은 힘을 합쳐 기정사실이 된 성차별주의를 만천하에 폭로했다. 2015년 6월, 맥고완은 애덤 샌들러가 출연하는 영화의 캐스팅 노트를 캡처해 공개했다. 오디션을 보는 여배우들은 ‘가슴골을 드러내는 몸에 딱 맞는 탱크톱 차림으로’ 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이런 유치한 멍청이한테 미칠 듯한 매력을 느낀다는 생각이 말이 돼요?” 맥고완은 말한다. “더러운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자기네들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10점 만점을 받아 마땅하다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이 트윗은 폭발했다. “와우, 이 정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런 느낌이었죠. 어디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말해주지….” 그 시점부터 맥고완의 포커스는 행동주의로 옮겨갔다. 거의 24시간 내내 권력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트위터는 이제 90만 명을 웃도는 열렬한 팔로어들을 자랑한다. 2015년 11월 19일에는 관습적인 미의 기준에 저항하는 행위로 머리를 깎는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회고록 <브레이브>의 집필에 착수했고 앨범을 레코딩하고 이모와 함께 스킨케어 라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대선에 에너지를 집중해 가족계획과 여성인권을 옹호하고 나섰다. 11월 트럼프가 승리한 다음 날, 맥고완과 에머리히는 ‘리파이너리29’가 주최하는 회담을 위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났다. “우리는 모두 얼어붙어 있었어요. 하지만 로즈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죠. 정신을 차려보면 길거리에 나치 문양이 붙어 있을 거라고요. 이미 앞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와인스타인 문제에 관한 한, 맥고완도 빵 부스러기 이상을 던져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1997년 그와의 계약 조건에 비밀 유지 조항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착각이었지만, 아무튼 맥고완은 처음에는 단서들만 흘렸다. 2016년 10월 해시태그 ‘#WhyWomenDon’tReport’를 달고 폭풍 트윗을 하면서 ‘그건 할리우드/미디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은 내 강간범에게 아첨했다’라고 쓰고 ‘나의 전 남친이 우리 영화의 배급권을 내 강간범한테 팔았기 때문에’라고 덧붙였다.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맥고완은 마침내 ‘괴물의 정체’에 관심을 갖는 기자들과 연락이 닿았다. 2017년 10월 4일 <타임>이 와인스타인의 30년에 걸친 성추행과 성폭행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루는 첫 기사를 냈다. 그 기사의 주된 정보원이 자신이었다고 맥고완은 고백한다. <뉴요커>가 낸 후속 기사에는 와인스타인을 비난하는 여성들의 명단이 더 추가되었으며, 와인스타인이 피해자들을 협박한 정황을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중 맥고완의 진술은 이렇다. 그녀의 지인과 전 애인들을 뒷조사하고, 여성인권 운동가로 가장하고 맥고완에게 접근하도록 돈을 줬으며, 회고록의 미출간 원고를 미리 사려 했고,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소속이었던 요원들에게 맥고완을 미행하게 했다. 지난 1월 워싱턴행 비행기에 두고 내린 그녀의 지갑에 든 마약은 다른 사람이 심어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맥고완 측 변호사의 주장도 실렸다.  맥고완은 <타임>이 사건을 폭로하던 그 주에, 과거 와인스타인의 회사 대표가 침묵을 사는 대가로 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당시 계약에 비밀 유지 조항이 없었던 것을 최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맥고완은 자신이 오랫동안 불을 붙이려 노력했던 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일주일 만에 ‘#MeToo’ 캠페인이 온라인을 휩쓸었고, 미국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연대해 학대하고 추행한 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되는 순간, 두려움과 수치심, 삶의 가장 어둡고 괴로운 비밀이 무너집니다. 로즈는 내게 그럴 힘을 주었어요.” 와인스타인의 또 다른 피해자인 이탈리아 배우 겸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의 말이다. “우리는 남자의 세상에서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로즈와 함께 하면서 철저히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고, 로즈를 위해서는 총알도 대신 맞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맥고완을 만난 것은 와인스타인 스캔들이 터지고 난 뒤 몇 주일 후였다. 대혼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자 하와이로 날아가 스마트폰을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냥 재충전했어요.” 지금은 잠시 볼일이 있어 LA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 아침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여성 컨벤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야 한단다. 협곡에 있는 맥고완의 집은 주인만큼 다채롭고 미묘하며 괴상하다(현관 옆에 형광색 우리 속에 묶인 여자가 펄쩍펄쩍 뛰는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맥고완은 아담한 체구에 원피스 대신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털이 달린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제 머리카락도 자라서 진 세버그 같은 ‘픽시 컷’ 스타일이 되었다. “평생 처음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슬플 정도예요.” 맥고완이 유리 잔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주며 미소를 짓는다. “대부분의 남자와 나쁜 여자들이 나를 미워하지만 자기 손해예요. 내가 한 일은 여자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화를 내도 좋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해요. 화를 내는 사람이 겁나는 거죠. 왜 그런지 알아요? 자기도 화가 나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 들어 맥고완은 그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의 부름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순순히 응해줄 생각은 없다. “내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기 원한다고 생각하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해요.” 심지어 옛 약혼자 로드리게즈 감독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주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맥고완은 킬킬 웃으며 말한다. “나는, 제기랄, 내가 퓨리오사야.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 실제 삶에서 다 박살내고 있으니까, 그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