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패션 선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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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 뒤통수를 가격하던 고함소리. 때는 지난 9월, 2018 S/S 런던 컬렉션 현장이었다. 쇼장 입구에서 동물보호단체가 모피 패션의 도구로 학살되는 동물들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던 것. 순간, 나는 입고 있던 옷을 확인했다. 모직 코트였다. 하지만 등 뒤에서 들리던 선명한 목소리는 지나치는 나를 저격하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얼마 전, 구찌가 2017 케어링 토크(Kering Talk)에서 새로운 지속가능성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모피반대연합(Fur Free Alliance)’에 가입하고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물의 존엄성과 윤리의식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신념 있는 공표. 구찌의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 회장은 “구찌의 지속가능성 계획은 환경과 인류, 신모델 세 가지 원칙에 초점을 둔다”고 언급하며 “모피 사용은 더 이상 현대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호사스러운 패션으로 군림했으나 현대적이지 못한 패션으로 재평가받은 퍼. 인기몰이를 했던 구찌의 시그너처 아이템, 캥거루 퍼가 장식된 블로퍼는 이제 매장에서 볼 수 없고 그 자리를 양털로 제작한 블로퍼가 대신한다. 2018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모피 룩은 새로운 소재로 대체되고 매장에 남아 있는 모피 제품은 경매를 통해 소진한 뒤, 동물보호단체에 수익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라는 브랜드의 새로운 지표가 확립된 순간이다. 착한 패션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성숙한 의식에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과 셀프리지 백화점도 동조하며 모피 판매 중단을 알렸으니 탈모피 움직임을 촉진시키는 기폭제가 더해진 셈이다. 물론, 윤리적으로 얻은 거위 털을 사용함으로써 인도적인 공정 과정을 고수하는 파타고니아나 컬렉션을 위해 동물가죽을 쓰지 않겠다는 신념을 공고히 실천하고 있는 스텔라 맥카트니(이번 시즌, 가죽을 대체하는 얼터 카프와 얼터 스웨이드, 재생가능한 고무 소재 등을 사용해서 만든 ‘이클립스’ 스니커즈로 ‘어글리 슈즈’ 트렌드에 합류했다), 염소를 빗질해서 얻은 털로 캐시미어 원단을 만드는 로로피아나처럼 패션에 친환경적인 접근을 고수하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패션 피라미드 구조에서 꼭짓점에 가까운 구찌가 확립한 에코 패션 정체성과 전통적인 유통 방식을 위협할 만큼 덩치가 커진 럭셔리 전자상거래(육스는 올해 전년대비 19% 성장해 15억 유로의 매출을 달성했고, 매치스 패션은 매출 성장 속에 기업가치가 9000억원을 넘어섰다)의 변화된 기업 의식은 에코 무드에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소비자나 경쟁 브랜드에게 모피 소비에 따른 행동이 비윤리적인 행위임을 설파하며 차별화된 영향력을 행사할 테니까. “모피는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고객 요청에 따라 감수하기로 했다.”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 CEO 페데리코 마르케티(Federico Marchetti)는 고객 대상 설문조사에서 과반수의 고객이 모피 판매 중단을 원한다는 피드백을 받아 이 같은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공장 같은 농장에서 동물들이 대량 사육되고 잔인한 도살 위협에 놓여 있다는,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모른 척한 채 모피를 고집해도 되는 걸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NOFUR’를 입력해 보았다. 계속 보기 힘들 정도로 동물 학대 장면들이 이어졌다. 대형 모피를 얻기 위해 북극 여우를 눈이 살에 파묻힐 정도로 살 찌운다는 기사도 읽었다. 이런 사진들을 ‘자극적인 장면’이라고 치부하며 지나칠 수 있을까? 모피 패션의 대안으로 등장한 페이크 퍼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짜는 시크하지 않다. 하지만 페이크 퍼로 당신은 시크해질 수 있다”는 칼 라거펠트의 말처럼 페이크 퍼를 직역해 그저 ‘가짜 퍼’라고만 분류하는 건 시대착오적 생각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미우미우가 선보인 에코 퍼만 보더라도 리얼 퍼처럼 고급스럽고 호화로우며 글래머러스하지 않나! 페이크 퍼를 내세운 시림프를 필두로 2017 PETA 패션 어워드에서 ‘베스트 페이크 퍼 브랜드’ 부문을 수상한 자케(Jakke)나 컬러플한 페이크 퍼 머플러로 패션 피플들의 러브 콜을 받은 샬럿 시몬(Charlotte Simone)처럼 페이크 퍼를 트렌디하게 재해석한 브랜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페이크 퍼는 특별한 소재예요. 원하는 컬러와 텍스처를 구현할 수 있고 프린트를 더하거나 자카르처럼 연출할 수 있죠. 구불거리는 형태와 직선 모양도 만들 수 있고요. 왜 리얼 퍼를 고집해야 하죠?” 시림프 디자이너 한나 웨일랜드의 말처럼 페이크 퍼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패션 영역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공생관계를 촉구하는 윤리적 철학이 담긴 메시지다. 모피 생산의 어두운 부분을 인지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자는 행보. 에코 패션이 멀게 느껴지더라도 동물이 지구공동체 안에서 안전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는 더욱 밝아진다. 단순한 소비에서 벗어나 의식 있는 소비를 하려는 자세부터 시작해 보자.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수록 동물의 존엄성을 짓밟는 폐해는 줄어들고 친환경적인 패션 사고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의 노력으로 다음 세대는 변화된 세상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