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권리는 지켜질까
얼마 전 ‘현재를 살아가는 주체인 우리 세대의 관점으로 일을 재조명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리워크 컨퍼런스에 연설자로 참여했다. ‘로봇이 몰려온다’까지는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밀레니얼 세대의 일자리 고민은 N잡과 디지털 노마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 모든 고민은 일자리가 아니라 일 자체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기성 세대는 대체로 기술 진보로 인한 변화를 오직 일자리의 개수로만 바라보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균 89명의 직원이 필요하던 대형 마트를 기준으로, 아마존고가 상용화되면 필요한 직원은 6명이라고 단순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83명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2030년까지 8억 명의 노동자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는데, 내가 일하는 직군은 로봇에게 대체될 수 있는 직군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새로운 세대에 걸맞은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19세기 초 노동자들은 러다이트라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 기계를 부수며 산업혁명에 저항했다. “기계들이 우리의 일을 대신해 버린다”는 주장은 다음 문장과 흡사하다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가서 실업자로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200년 전처럼 로봇을 부술 것인가? 아마존과 알리바바를 위시한 글로벌 기업들이 무인 상점을 실험하는 시기를 넘어 이를 상용화하고, 파파고의 수준이 보여주듯 인공지능과 정보력이나 지능을 겨룰 수 없음이 증명된 지금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일자리 개수 너머에 있다. 로봇으로 인해 인간이 부담해야 할 일의 총량이 줄어들었다면 나머지 일과 소득 배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다가올 미래에서 노동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 돼야 한다. 오직 돈을 버는 수단이거나, 자신의 쓸모를 확인받기 위한 노동의 시대는 지났다. 밥벌이를 위한, 때로는 자아실현과 삶의 한 축으로서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돼 온 ‘정규직-주 5일 노동’을 중심으로 한눈에 보이는 일의 범주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미래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과로하며 소득을 유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일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굶고 있는 현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8억 명은 대체로 자동화되기 쉬운 저임금 단순 노동이나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결국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사회 전반의 복지와 맞닿아 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무인 상점이 된 가게에서 일하던 계산원, 파파고로 인해 번역하지 않게 된 번역가의 일이 줄어들어도 이들이 기본적인 복지와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사회안전망 안에 있을 수 있다면, 이들은 로봇을 증오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유엔의 미래보고서는 2050년까지 인간은 99% 이상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줄 거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노동 없이 인간이 어떻게 생존하고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게 오히려 미래에 제대로 연착륙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일할 권리만큼이나 일하지 않을 권리도 중요함을 인식하고, 다른 노동이 가능하기에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로봇 셰프 ‘몰리’.
주방용 AI 로봇 ‘마이키’.
살림 해방의 시대
비약하면 가사노동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가사노동 해방으로 향할 뿐이다. 희망적으로 예상하건대 집안일이 완전히 없어진 채 오직 집에서 쉬기만 할 수 있다. 집을 어지럽히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언제? 로봇 전문가들은 2020년 도쿄올림픽쯤 ‘1가구 1로봇’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가사노동을 완벽히 대체할 가사 로봇의 등장은 2045~2050년의 먼 미래의 일로 미뤄놓고 있다. 하지만 로봇을 아주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 청소기의 형태로 우리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2002년 아이로봇의 룸바가 등장한 이래, 로봇청소기는 15년 동안 인류 청소의 한 단면을 담당하고 있다. 청소를 매일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로봇청소기는 ‘눈에 보이는 먼지’만큼은 바로바로 해결해 주며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지난 20여 년 동안 가사 중에서 로봇이 대체한 곳이 청소에 국한됐다면, 새해부터는 요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류 고유의 창조적인 부분까지 로봇이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바둑도 이기는데, 요리쯤이야!). 몰리 로보틱스와 섀도 로보틱스가 개발한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 ‘몰리(Moley)’는 그 서막이다. 2015년 4월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메세 산업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하며 2018년에는 로봇 셰프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몰리 로보틱 키친은 소금 통이나 후추 통을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로 정교한 로봇 팔 2개를 지니고 있는데, 칼을 공중에서 돌릴 정도로 사람과 유사하다. 로봇 셰프가 여러모로 부담이라면 작고 앙증맞은 요리 선생님을 모실 수 있다. 보쉬와 지멘스가 합작하여 만든 ‘마이키(Mykie)’는 주방용 인공지능(AI) 로봇이다. 동그란 얼굴에 원뿔 몸통을 한 이 로봇은 ‘부엌의 요정(My Kitchen Elf)’이란 줄임말에서 알 수 있듯 주방에 최적화됐다. 만약 지금 냉장고 재료로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물어보면 냉장고의 현황과 요리법 내용을 빔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쏴서 곧바로 알려준다. 빨래는 어떨까? 빨래야 세탁기가 하고, 건조야 건조기가 하니 이제 인류에게 빨래와 관련해서 남은 일은 단 하나, 빨래를 개는 것이다. 미국 폴디메이트 사는 빨래 개는 로봇을 개발했다. 셔츠와 바지를 선반에 걸쳐놓으면 자동으로 옷을 갠다. 1개당 10초 정도 소요되며 한꺼번에 15~20개의 옷을 처리할 수 있다.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마지막 단계에서 스팀 기능으로 구김을 펴준다. 현재 가격은 700~850달러 수준. 이와 비슷하게 일본 로봇 제조사 세븐드리머 또한 파나소닉, 다이와 건축과 함께 ‘런드로이드(Laundroid)’라는 빨래 개는 로봇을 개발,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며, 2020년에는 붙박이 형태로 제공할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과연 집안일이 사라지면 우리는 얼마나 더 게을러질 수 있을까? 하필 한 잡지에 실린 대학생이 쓴 글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꺼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귀찮고 누군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부모나 배우자에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집(家)’에서 살면 마땅히 생기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어른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가사노동이 사라진다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됐다고 느낄 수 있을까?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좋은 미래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좀 심한 사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