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스토어의 진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지금 애플 스토어가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라고 말하는 공간. 애플 스토어를 '타운 스퀘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애플,아이폰,애플스토어,엘르,elle.co.kr:: | 애플,아이폰,애플스토어,엘르,elle.co.kr

시카고 강변 지형을 그대로 살려 디자인한 애플의 첫 번째 타운 스퀘어, 애플 미시간 애버뉴.주변 경관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오프닝 이벤트에 등장한 팀 쿡.시카고 강변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애플 미시간 애버뉴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지난 9월 12일, 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파크의 스티브 잡스 시어터에 앉아 있었다. 애플 신사옥에서 열린 첫 번째 키노트 이벤트 현장 말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키노트 초반은 우리나라와는 별 관계없는 뉴스라 대충 흘려듣기 마련이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첫 주제가 애플 스토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애플 스토어가 오픈한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애플 리테일 부문 수석부사장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스토어를 더 이상 스토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매년 5억 명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곳이니만큼 ‘타운 스퀘어’라는 명칭이 적합합니다.” 의심스러웠다. ‘스토어’와 ‘마을 광장’은 거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웹 매거진 <버즈피드>에서 ‘애플이 스토어를 타운 스퀘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과연 상업 매장이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방법은? 공유 사무실 ‘위 워크(We Work)’ 같은 접근 혹은 공익 프로그램 몇 가지를 연출할 셈일까? 그런 의문을 가득 품고 시카고로 떠났다. 10월 20일에 오픈하는 첫 번째 타운 스퀘어, ‘애플 미시간 애버뉴’ 오프닝을 보기 위해서다. 시카고의 첫인상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건축의 도시’였다. 시카고 강변 양쪽으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AMA 플라자, 버트런드 골드버그가 설계한 마리나 시티, 일간신문 <시카고 트리뷴>의 본사이자 랜드마크인 트리뷴 타워 등이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새로운 애플 스토어는 트리뷴 타워 앞, 파이어니어 광장과 시카고 강변에 걸쳐 있었다. 유리로 된 파빌리온에 맥북 프로를 연상시키는 얇은 은색 지붕이 얹힌 구조. 분명 아름다웠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일단 잘 보이지 않았다. 주변 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것도 모자라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 멀리서 보면 투명인간처럼 보였다. 맞은편에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트럼프 타워와 비교하면 더더욱. 오픈 하루 전 열린 미디어 투어 시간, 애플 미시간 애버뉴를 설계한 포스터 & 파트너스의 건축가 스테판 베링(Stefan Behling)은 오히려 그것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을 내 강 건너편으로 가보세요. 강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전체 경관을 봐야 해요. 보통 빌딩은 킹콩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데 바쁘지만 애플 미시간 애버뉴는 ‘빌딩이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확실히 그렇다. 강 건너편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애플 미시간 애버뉴가 숨은 그림처럼 나왔으니 말이다. 쿠퍼티노의 애플 파크가 너무나 거대하고 미래적이라 실리콘 밸리와는 차별화된 소도시 느낌을 준다면, 애플 미시간 애버뉴는 시카고 강변의 품속에 쏙 안긴 인상이다. 강변 언덕의 지형을 고스란히 살린 외관 디자인도 그랬다. 하물며 주변 강변의 계단과 벤치, 나무까지 스토어와 동일한 뉘앙스로 조성해 완벽한 일체감을 자랑한다. 매장 내부에서도 아이폰, 애플 워치 등의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2층 정문으로 들어서면 유리 너머로 시카고 강 전경이 펼쳐지고 아래를 내려다봐도 비디오 월이 우뚝 선 무대 같은 공간이 있을 뿐이다. 상품이 전시된 지니어스 갤러리는 1층 안쪽, 동굴 같은 구조로 숨겨놓아 전체적으로 매장이라기보다 극장 같은 인상을 준다. “고급스러운 상점에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잖아요? 그런 불쾌함 없이 누구라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의도했어요. 도심 광장과 강을 단절시켰던 벽을 허물고 건물을 만든 것도 스토어를 방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강가를 찾게 하기 위해서죠.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경계를 허물고 싶었습니다.” 스테판 베링의 말처럼 나를 비롯한 기자들은 지니어스 갤러리에서 제품을 구경하고 주변을 산책했다. ‘주변 경관을 내부로 끌어들이는’이라는 건축계의 상투적 표현을 이토록 실감한 건 처음이었다. 애플 미시간 애버뉴 오픈 이틀 전까지 건물은 거대한 흰 천으로 가려진 상태에서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이디어가 노래하는 곳(Where Ideas Sing)’. 가림막이 벗겨진 미디어 투어 날, 애플 리테일 부문 수석부사장 앤젤라 아렌츠가 강조한 것도 아이디어를 노래하는 방법이었다. “아이폰이 우리의 작은 상품인 것처럼 스토어는 애플의 가장 큰 상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파빌리온 건물이 스토어의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는 ‘투데이 앳 애플(Today at Apple)’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투데이 앳 애플은 사진과 영상, 코딩, 아트,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교육 세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이미 지난 5월부터 전 세계 애플 스토어에서 활발히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과연 이곳에선 무엇이 더 새로울까? 앤젤라 아렌츠는 자신 있게 덧붙였다. “누가 애플보다 코딩에 대해 더 잘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는 애플보다 음악에 대해 잘 말할 수 있겠어요? 그중에서도 시카고 미시간 애버뉴의 투데이 앳 애플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다섯 개의 로컬 NGO 단체와 협업한 ‘시카고 시리즈’를 4주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커뮤니티 특성에 맞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의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시카고 시리즈는 다분히 공익적이다. 시카고 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스타트업 비즈니스 컨셉트나 앱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프로그램, 시카고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시와 그래피티, 랩을 통해 만드는 스토리텔링 수업(앤젤라 아렌츠는 “자신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지역 아티스트 그룹과의 협업과 인문학 프로그램 등등. 글로만 읽으면 약간 지루해 보이지만 실제 시카고 건축을 주제로 한 ‘투데이 앳 애플 스트리트 포토 세션’에 참여해 본 소감을 말하면 꽤 유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카고의 랜드마크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 이를 참고해 도시 풍경을 촬영했고 수업 마지막 즈음엔 서로 찍은 사진을 공유했다. 본래 건축 보트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날 수업을 듣고 예약을 취소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처럼 각각의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와 IT 전문가, 일반 시민 등으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프로’가 이끌게 된다. 외국의 애플 스토어를 방문해 본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사실 애플 스토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소비자와 1:1 상담을 해주는 ‘지니어스’다. 투데이 앳 애플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도 산뜻한 소통 방식 덕이 컸다. 뭘 물어도 척척 대답이 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적절하게 명랑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놀랄 정도로 기분 좋게 일하는 그들을 보면 덩달아 즐거워진다. 파이어니어 광장을 가득 채울 만큼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오픈 이벤트에서 고객들과 셀카를 찍던 애플의 CEO 팀 쿡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입구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을 열렬히 환영하던 지니어스들이었다. 단순히 인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살면서 언제 이런 환대를 받아보겠나 싶을 정도로 거의 열광에 가까웠다. 사실 애플이 타운 스퀘어로의 변화를 도모하게 된 이유 역시 소비자와의 만남과 소통에 있다. “우리는 도시의 미래와 리테일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매년 4000만 명 이상의 지니어스 사용자 중 절반 이상이 단순히 질문하기 위해 이곳에 옵니다. 이건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이뤄지는 기계적 커뮤니케이션 이상의 관계를 원한다는 뜻이지요.” 앤젤라 아렌츠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인간적 교감이 디지털과 리테일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애플 미시간 애버뉴 오픈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과도 이어진다. 그는 2001년 제1대 애플 스토어를 열 당시 미국의 경제 잡지 <비즈니스 위크>로부터 ‘애플 스토어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비난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애플 리테일 스토어의 목적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그대로 그 말이 성공적인 현실이 된 지금, 스토어의 비전이 더욱 진화됐다.